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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l 12. 2019

음식 앞에서 흥분하지 않기

쓰고 싶어서 쓰는 글 


일주일 전이었나. 밥을 먹었는데 늘 그렇듯 윗배가 잔뜩 불러있었다. 부른 윗배 때문에 장기가 눌리는 기분이 들었고 더부룩해지기 시작했다. 음식을 맛있게 먹고 꼭 이런 식으로 위에 부담을 느껴 더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윗배가 나오는 이유를 검색해 보았다, 처음도 아니면서. 일단 음식을 급하게 먹는다. 씹지 않고 넘긴다. 인스턴트를 자주 먹는다. 자극적인 걸 먹는다. 탄수화물을 즐긴다. 등등 너무 뻔해서 머리에 각인될 정도지만 새삼스럽게 읽었다. 그날 이후 밥을 반공기만 먹고 음식을 최대한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고 있다. 나는 오래 씹어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음식물은 순식간에 입속에서 사라지기 일쑤지만. 나는 음식물을 이 밤의 끝을 잡고, 처럼 잡는 심정으로 꼭꼭 씹어 먹으려 노력 중이다.      



이른 출근길에 회사 앞 카페에서 커피를 산다. (29센치요,하면 500원 할인된다) 그전에는 바닐라라테! 카페라테! 같은 달고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즐겨 마셨지만 요즘은 아메리카노, 그것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믹스커피 애호가였던 나는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침에 믹스커피를 타서 책상 앞에 앉는 그 순간이 좋아 거의 10년 넘게 빼먹지 않고 마셨다. 어느 순간부터 믹스커피를 마신 뒤 혀에 남는 텁텁함이 싫어졌고 언제까지 20, 30대가 아니기 때문에 건강을 생각해 지금은 거의 마시지 않는다. 정말 정말 당이 필요해! 할 때만 아이스로 타서 꿀꺽꿀꺽 넘긴다. 어쨌거나 요즘 마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제법 익숙해졌다. 가장 좋은 건 우유가 들어간 커피와 달리 깔끔한 뒷맛이랄까. 그리고 살 빼는데도 도움이 된단다. 퇴근 후 집에 가서는 전날 내려서 냉장고에 넣어둔 커피를 꺼내 마신다. 때로는 식사 후 연하게 내려 마신다.      



야심 차게 해외배송까지 해가며 주문했지만 거실에서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워킹패드’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제법 진지하게 하고 있어 양말에 운동화까지 신고 약 40분에서 1시간가량 걷는다. 달력에 워킹패드 한 날을 X표시 하고 있다. 뭔가 흔적을 남겨야 뿌듯함은 배가된다. 주로 아이를 재운 뒤 밤 9시에 시작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놓친 드라마 다시보기를 하면서 걷는데, 어제 불현듯 행복하단 생각을 했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야 하지만 운동을 빼먹지 않는 내가 기특했고 집안이 차분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열어 놓은 거실 창으로 여름밤의 선선한 공기가 시원하고 뛰는 게 아니라 걷는 식이니 너무 힘들지 않아 내일 또 해야지, 하는 다짐이 생긴다. 무엇보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걸으니 시간이 잘 간다. 뱃살 빼는데 걷기가 좋다고 해서 시작한 거다. 부디 꾸준히 오래 할 수 있기를.      



7시 30분쯤 출근하면 점심시간인 12시 30분까지 너무 길다. 그래서 일 시작 전에 샌드위치나 김밥을 사 먹었는데 먹고 나면 배고픔이 사라져 좋지만 점심때까지 배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점심을 굶을 수도 없어서 그 상태로 또 밥을 먹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요즘은 작은 에너지바(닥터 유)를 먹는다. 한 입 크기로 포장된 것이라 먹기 좋고 일단 견과류가 들었는데 달콤해서 아메리카노와 궁합이 잘 맞는다. 긴 바 형태의 에너지 바는 사무실에서 먹기가 불편했는데 이건 정말 크기가 신의 한 수였다. 하나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소리도 나지 않아 먹기 좋다.     

 


밀가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어제 저녁에 먹은 만두는 만두피를 거의 먹지 않았다. 풀무원 김치 만두(강추)를 팔팔 끓인 맹물에 넣고 약 10분 정도 푹 삶은 뒤 건져서 간장, 식초, 고춧가루를 넣은 양념장을 솔솔 뿌려 만두를 조각 내 먹는 걸 좋아한다. 어제도 그렇게 먹었는데 밀가루는 걷어냈다. 사실 밀가루 빼니 속은 별로 먹을 게 없었지만 난 이 간장식초 소스를 너무 좋아해서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밥그릇에 남은 밀가루 껍데기를 보니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먹지 않았어, 참았다고!! 전날에는 신라면, 건면을 끓였는데 면을 한두 젓가락 먹고 남겼다. 일단 이렇게 적당히 먹으면 배가 나오지 않아 기분이 좋다. 배불리 먹는 즐거움은 사라졌지만 밥은 먹어도 나오지 않는 배를 보면 더 뿌듯하니까.      



음식 앞에서 흥분하지 않기, 가 요즘 내 화두다. 식탐이 많아서 항상 허겁지겁 먹었다. 숟가락에 밥을 크게 떠서 빠르게 위로 넘겼다. 맛있는 걸 앞에 두고도 차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잘 차려진 음식을 먹을 생각에 좋은 기분은 만끽하되 숟가락을 빨리 들지 않는 사람. 더 오래 씹고 천천히 먹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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