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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Aug 23. 2019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서 먹는 김치찌개

매일 읽는 여자의 오늘 사는 이야기 

헐레벌떡 집에 들어온 엄마가 허리에 찬 전대를 풀어 방바닥에 툭 던져놓고 부엌으로 달려간다.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언니와 나는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엄마의 기척에 귀를 쫑긋했다가 다시 드라마 보기에 집중한다. 힘차게 쌀 씻는 소리와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기는 소리도 들린다. 엄마는 그제야 방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두 딸을 바라본다. 


“배고프지? 얼른 밥 해줄게.”


엄마를 말똥히 올려다본 언니와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의 지폐와 동전이 든 전대는 한쪽으로 미뤄두고 엄마는 그제야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본격적으로 저녁밥을 짓기 위해 준비태세를 갖춘다. 멸치와 김치, 두부를 숭덩숭덩 넣어 칼칼하게 매운 기운이 도는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한쪽에선 동그란 프라이팬에 두툼한 달걀말이가 구워지고 있다. 엄마의 식사 준비는 거침이 없고 딱히 힘든 내색도 없다. 그래서였을까? 난 늘 엄마가 일 다녀와서도 아무렇지 않게 부엌으로 가장 먼저 들어가 밥을 짓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저녁 식사가 얼추 다 되면 엄마는 언니의 이름을 부르며 상을 펴라고 지시한다. 시선은 TV에 고정한 채 안방 문 뒤에 세워져 있던 자그마한 나무 상의 다리를 딸깍딸깍 펴는 언니. 그럼 나는 엄마가 물기를 꼭 짜내 건넨 행주를 가져다가 상을 닦는다. 우리만의 분담은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뜨거울 때 먹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팔팔 끓는 찌개를 상 가운데 놓고 직사각형 상의 세 면에 밥그릇을 하나씩 내려놓는다. 찌개 냄비를 기준으로 주변에는 달걀말이, 열무김치, 잔멸치 볶음, 장조림 등이 놓인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의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것보다 멸치만 넣어 맑고 개운하게 끓인 것이 더 맛있었다. 오죽하면 결혼하고 나서 가장 아쉬운 게 엄마표 멸치 김치찌개를 자주 먹을 수 없다는 거였다. 김치찌개와 달걀말이의 조화를 그 어떤 음식이 당해낼까? 밥 두 공기는 비워야 배 두드리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정신없이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차려낸 엄마는 그제야 지친 기색이 역력해진다. 아이고 오늘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라는 표정이다. 엄마가 방 한쪽에 베개를 놓고 누워 휴식을 취하면 언니와 나는 또다시 분담하여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헐레벌떡 현관문을 연 내가 가방을 소파 위에 던져 놓고 주방으로 달려간다. 어린이집 가방을 어깨에 멘 상태로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의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아이에게 우유 한 잔을 건넨다. 


“가방 내려놓고, 조금만 기다려. 금방 밥 줄게.”


냉장고를 열고 뭘 먹일까 잠시 고민한 나는 제일 아래 야채 칸에서 미역국이 든 봉지를 꺼낸다. 냄비를 꺼내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가위로 봉지 입구를 잘라 냄비에 쏟는다. 아이가 먹을 거니까 물을 조금 더 붓고 뚜껑을 닫고 끓인다. 싱크대 선반에서 햇반 하나를 꺼내 입구를 조금 뜯고 전자레인지에 넣고 타이머를 2분에 맞춘다. 그제야 그날 입고 출근한 옷을 갈아입는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밥이 다 데워지고 나는 그걸 아이 밥그릇에 옮겨 담는다. 국을 그릇에 덜어내고 냉장고에서 잔멸치 볶음과 감자조림, 김치 등을 꺼내 식탁에 깐다. 따끈따끈 데워진 밥을 조금 덜어 미역국에 말아 휴대용 선풍기로 식힌다. 후후 불어 아이 입에 한 번 두 번 떠 먹인다. 밥이 뭐길래. 밥과 반찬을 맛있게 받아먹는 아이를 보며 나는 한숨 돌린다. 


고작 봉지에 든 반조리 식품을 뜯어 데워주는 일이 왜 이리 버겁고 힘들게 느껴질까? 불현듯 어릴 적 엄마가 장사를 마치고 날마다 시장에 들러 장 본 것들로 국과 반찬을 만들어 차려주던 그 밥상이 떠오른다. 반조리 식품이 다 뭔가. 무엇 하나 엄마가 직접 만들지 않았던 게 없었다. 당시의 엄마도 40대 초반 나도 그와 비슷한 나이. 일로 따지자면 책상에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는 내 일과 달리 엄마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장사를 해야 하는 육체노동이었는데 어떻게 날마다 손수 짓는 저녁밥이 가능했을까? 직접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워보니 더 이해가 안 된다. 막연하게 엄마 힘들었겠다, 가 아니라 어떻게 그게 가능했지? 가 된다. 새끼들 입에 직접 만든 음식을 넣어주는 일이 엄마에게 사명감처럼 여겨졌을까? 날마다 깨야 하는 미션 같진 않았을까? 내가 좀 일찍 그걸 알았더라면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엄마 오늘은 언니랑 라면 끓여 먹을게요,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먹은 식탁을 물리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엄마표 김치찌개를 끓여본다. 대가리도 따지 않은 큼직한 멸치를 서너 마리 넣고 오로지 김치와 두부만으로 칼큼하고 개운한 맛이 났던 그 찌개. 엄마처럼 달걀말이까진 못했지만 흰쌀밥에 뜨끈한 빨간 국물이면 충분할 밥상을 차려본다. 그 맛이 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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