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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l 10. 2019

툭툭 접은 신문에서 시작한 글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월, 수, 금은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곧장 태권도에 간다. 5시쯤 태권도 차가 어린이집에 와서 그 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을 태워간다. 도장에 다닌 지 두 달이 넘었다. 오늘 아침 등원 길에 아들은 아빠에게 태권도에 가기 싫었다고 했단다. 그 이유를 물으니 사람이 많고 힘들다고. 남편이 메신저로 이 내용을 나에게 전했다. 선생님이 무섭다거나 친구가 괴롭히는 문제라면 몰라도 힘들어서라면 좀 더 다녀도 된다고, 나 혼자 판단했다. 요 며칠 태권도 차에서 내릴 때 아들은 몹시 지친 기색이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엽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 태권도를 배울 자격이 없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도장답게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차에서 내리면 큰 소리로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인사를 시킨다. 태권도 수업을 한 첫날 도장 차에서 내리며 그렇게 인사하는 아들을 본 나는 푸하하 하고 웃었다. 낯설고도 기특한 아들이 감동스러운데 웃긴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거나 월, 수, 금은 6시 40분쯤 아들이 집에 온다. 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6시 25분경. 아들이 도착하기 전 15분은 너무 감질나는 휴식 시간이다. 30분도 아니고 15분. 하아… 나는 그 15분 동안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방을 거실에 내팽개치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스마트폰으로 손이 가지만 그 손을 멈춰 전화기도 확 집어던진다. (인스타그램 그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정말 아~~ 무 것도! 


근데 월요일인 어제는 웬일로 거실 탁자 위에 습관처럼 (늘 펼쳐보지도 않고 접힌 모양 그대로) 던져놓은 신문을 펼쳤다. 1년 동안 공짜로 보고 약속한 1년이 된 지난 6월에 처음으로 15,000원을 내기 시작한 신문. 1년은 공짜로 보고 1년은 무조건 봐야 된다는 조건으로 덥석 신청한 신문. 그렇지만 날마다 오는 그것을 읽은 건 손에 꼽을 만큼이었다. 어딘가에서 털어놓은 바 있지만 신문 말고도 읽어야 할 게 너무 많다 보니 신문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반쯤 눕다시피 한 소파에서 팔랑팔랑 신문을 넘기고 있자니 굉장히 여유로운 지식인 같았지만 눈에 들어오는 기사는 몇 개 없었다. 그 와중에 가장 관심 가는 건 신간 소개. 아 정말, 책 그만 사라고오! 나는 뭔가에 이끌리듯 신간 소개를 읽고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쓴 칼럼을 훑었다. 하지만 조금씩 초조해졌다. 시계를 봤다. 5분 남았다. 태권도 차가 오려면 5분 남았다. 흠… 나는 찝찝한 마음인 채로 다시 신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스마트폰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6시 40분이 되었다. 아이를 마중하러 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 나는 보고 있던 신문을 척척 접어 탁자 위에 휙 던지고 현관으로 내달렸다. (내달렸다고 하니 집이 굉장히 넓은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렁차고 씩씩한 목소리로 차량 사범님께 인사한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올라왔다. 퇴근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아 15분 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는 거실. 아,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이 보인다. 테이블 위에 보다만 신문. 접긴 했지만 누가 봐도 보다가 접었구나를 알 수 있는 신문. 탁자 위에 놓인 신문을 아주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흠… 나쁘지 않은데?’

뭐가 나쁘지 않다는 건지 잘 모를 것이다. 나도 그러니까. 이 뭐랄까, 느낌적인 느낌이, 흡족한 거였는데 일단 신문을 펼쳐봤다는 뿌듯함과 (어쨌든 봤으니) 돈이 아깝지 않다는 경제적 만족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깔끔하게 치워지고 정돈된 공간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지저분한 집에도 흥미를 느낀다. 여기서 지저분함은 먼지가 더께로 쌓이고 물때가 낀 더러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책장에 책이 반듯하게 꽂히지 않고 소파 옆에 무심히 쌓여있거나 카펫 깔린 거실 바닥에 쿠션이 하나쯤 뒹구는 것. 그리고 침실에는 사람이 자고 난 흔적이 남아 있거나 주방에는 자주 쓰는 도구들이 밖으로 좀 나와 있는 것. 너저분함에 반한다. (분명 이해 못하실 겁니다) 사실 이런 모양새는 집이 아주 넓어야 더 멋스럽기라도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그리 넓지 않다. ‘있어빌리티’한 지저분을 추구하지만 현실은 구질구질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어제 탁자에 다급하게 던져놓은 신문은 아주 잠시 내게 그런 기운을 느끼게 해줬나 보다. 혼자 마음껏 어지르고 살던 주인공이 느닷없는 연인 혹은 친구의 방문으로 널려 있는 책 등을 대충 모으지만 그게 또 그렇게 스타일리시 해 보이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이를 마중할 시간이 되어 다급함에 내가 툭툭 접어 놓은 신문 하나가 아주 짧은 시간 내게 그런 분위기를 내게 해줬나 보다. 내가 있는 공간도 아무 때나 그렇게 툭툭 던지고 쌓아놓고 살아도 멋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전에 간밤에 해결하지 않은,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부터 하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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