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누가 내 눈꺼풀 위에 올라앉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누르지 않는 이상 이렇게 눈이 감길 수가 없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꼭 자야 하는 하루치 절대 수면의 양이 있고 그걸 반드시 지켜야 되는 사람이란 것을. 일요일인 어제 볼일이 있어 느지막이 외출을 했고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다. 그러면 그냥 발 씻고 자야 했는데 낮잠을 자기도 했고 애는 잠들었는데 이 시간이 좀 아깝기도 하여 남편과 VOD로 올라온 ‘악인전’을 봤다. 그러니까 나는 평일 아침 기상이 5시 20분인 사람인데 말이다.
2주 전, 회사 사무실 이전을 했다. 이사 온 곳은 선릉역 근처고 집과는 더 멀어져 5시 20분에 일어나 6시 5분쯤에는 집에서 나와야 퇴근 후 평소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가던 시간을 맞출 수 있다. 회사가 멀어졌다고 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더 있게 하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일찍 출근하면 일찍 퇴근이 가능하다) 안 그래도 늦게 데려가는 편이었으니까. 내가 좀 더 고생하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적응 중이다.
예전보다 약 1시간가량을 더 일찍 일어나다 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적정치 수면 양이 중요했다. 나는 하루에 7~8시간은 자야 다음 날 문제없이 일할 수 있다는 걸 몸소 깨닫는 요즘. 그렇게 잠을 충분히 잔 날은 다음 날 컨디션도 좋고 근무시간에도 전혀 졸리지 않았다. 오늘처럼 3시간 30분 정도밖에 자지 못하고 출근한 날은 다음 날 오후 내내 비몽사몽이다. 가까스로 이 글이라도 쓰니까 잠이 조금씩 달아나는 것 같다. 여전히 눈꺼풀은 무겁지만.
6시 10분에 빌라 공동현관을 나와 버스 1번 지하철 2번을 갈아타 회사에 도착하면 7시 35분쯤 된다. 그전에 6시 20분쯤 일어나야 했을 때도 나 자신이 기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1시간을 더 일찍 일어나 보니 오히려 내가 별로 대단하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나는 상상했다. 오전 6시 30분 지하철 상황을.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앉을자리가 텅텅 비어 있겠지. 그렇다면 난 1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를 앉아서 갈 수 있을 거야. 그래, 피곤하면 책은 잠시 덮어두고 지하철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해도 되겠다,라고. 나의 상상과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버스 종점인 우리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6시에 버스를 타고 나가는 사람 수는 7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더불어 지하철도 마찬가지. 앉아서 가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아니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 왜 이렇게 많은 겁니까! 대한민국 사람들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이렇게 일찍부터 일터로, 학교로 나가다니! 난 이사 한 2주 동안 지하철에서 거의 앉아 갈 수 없었다.
일찍 일어나니 이전의 아침과 조금 다른 몇 가지 풍경이 보였다. 일단 지하상가의 에스컬레이터가 운영되지 않았다. 그 시간에도 버스에서 내려 지하상가를 통해 전철역으로 가는 사람은 적지 않았는데도 담당자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인지 에스컬레이터는 늘 멈춘 상태였다. 계단처럼 굳어버린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가면 지하상가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도 없었다. 이것 또한 담당자의 출근 전이기 때문일까? 내 걸음으로 5분 정도 걸어야 전철역에 도착하는데 그때 지하상가 전체에 울려 퍼지는 음악이 주는 경쾌한 매력(출근 시간엔 대부분 씩씩한 노래가 나온다)이 있었는데. 그리고 김밥 파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지역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합정에서 다닐 땐 그나마 하나 있던 김밥 집이 문을 닫고 업종 변경을 하는 바람에 맛없는 편의점 김밥을 가끔 사 먹었는데, 선릉으로 오니 지하철부터 시작해서 역사를 나와도 곳곳에 김밥 파는 아주머니들이 있었고 김밥천국 같은 분식집도 일찍부터 영업 중이었다. 더욱이 신기한 건 그 식당 안에는 이미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 회사 건물 근처에 술집이나 노래방이 많아서 그런지 아침 7시 30분에 간신히 몸을 가누어 집에 가는 차에 몸을 싣는 취객도 자주 목격됐다. 더불어 회사가 별로 없는 합정에는 이른 아침 문을 여는 카페는 스타벅스가 전부였는데 여긴 직장인 밀집 지역이다 보니 이른 시각에 문을 연 카페도 많았다. 분주히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포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침 5시에 일어나는 삶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겪어 보니 정말 그렇다. 전혀 대단한 게 아니었다. 일찍 일어나니 보이는 건, 더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었다. 새벽 5시에 어떻게 일어나지? 지하철을 30분이나 더 타면서 어떻게 일주일을 버티지?라고 걱정했지만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지금 내가 겪은 일과를 먼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자 아이 같은 엄살이 쏙 들어갔다. 내가 겪어보기 전, 과제 같던 일상을 차근차근 대수롭지 않게 해내고 있는 사람들. 오늘도 아침 7시 30분, 이미 깨끗해진 거리를 걸어 한 손에는 테이크 아웃한 차가운 커피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건물을 청소해 주시는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