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아이가 5살이 되면서 집에서 3분 거리(도보)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원래 다니던 곳은 가정 어린이집으로 4살까지 밖에 받질 않아서 겸사겸사 옮겨야 했는데 이참에 규모가 큰 어린이집을 경험해 보기로 한 것이다. 4층짜리 건물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2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니는 큰 규모의 이 어린이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식판을 설거지해서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것. 하하, 이거였다. 처음 어린이집 설명회가 있던 날 모든 설명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 식단 재료나 원 내 공기 청정기 시스템에 대해 궁금해 한 반면 나는 식판을 닦아서 보내야 하나요? 를 질문했고 그렇지 않고 원에서 직접 해결한다는 답을 듣고 (속으로) 뛸 뜻이 기뻤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매일 식판을 설거지해서 보내는 게 왜 그렇게 귀찮던지.
나는 식사에 있어서도 최대한 내가 편한 쪽으로 준비한다. 마트에서 직접 장을 봐서 밥하고 국 끓이고 반찬하고 언제 먹이나. 물론 매일 이렇게 하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빨리 조리해서 아이의 배고픔을 달래준 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빨리 재우기 위해서지만.) 저녁 6시쯤 어린이집에 도착해 아이를 만난다. 3분~5분 정도 걸어 집에 가는 동안 오늘 잘 지냈는지 등을 묻는 내가 빼먹지 않고 챙기는 게 있다.
“서하야 오늘 저녁엔 뭐 먹고 싶어?”
아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그리 다양하진 않다. 자주 먹는 것 위주로 생각해서 답하기 때문. 어쨌거나 나는 아이의 의사가 우선이다. (강제 같은 우선이지만) 그렇게 내 질문에 아이는 골똘히 생각한 후 “음~ 미역국!”이라고 명확하게 답한다. (서하는 미역국과 감잣국을 제일 좋아한다) 그러면 나는 미역국을 해준다. 이 방법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아이의 의견을 엄마가 들어주었다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너의 의견을 엄마는 존중해,라고 받아들이는 거다. 아이가 주로 말하는 저녁 식사 메뉴는 ‘미역국, 떡국, 감잣국, 햄, 스파게티, 짜장면, 계란밥’ 등이다. 뒤에 3개보단 밥을 더 좋아해서 평일 저녁에는 주로 면보다 밥을 먹는다. 밥상에 반드시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하는 나를 닮아 국은 한 가지씩 꼭 말해준다. 보면 알겠지만 내가 주로 끓이는 국이 어려운 게 아니다. 주 재료 하나에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만 맞추면 되는 것들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라서 한 끼 때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국마저도 끓이기 싫을 땐 에어프라이어에 냉동 생선(뼈 없는 고등어나 삼치)을 돌리고 물에 따뜻한 밥을 말아서 생선을 한 점씩 올려 준다. 입맛 없을 때 이렇게 먹으면 맛있지 않나? 난 내 입에 맛있으면 서하에게도 맛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다행히 이 스타일도 아이가 참 좋아한다) 결과적으로 어린이집에는 조리사와 영양사가 따로 있어 내가 못해주는 반찬을 골고루 먹을 수 있을 테니 전문가에게 서하의 영양 섭취를 맡기는 바이다.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릴 때부터 서하에게 밥 먹이는 걸로 스트레스받은 적이 별로 없다. 골고루 먹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뭐든 잘 먹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달걀 프라이에 케첩, 때론 스팸에 케첩, 참치 캔을 줘도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라는 게 내 육아 스타일이다. 최근에는 HMR 식품도 종종 이용한다. 다양한 종류의 국을 붓고 끓이기만 하면 맛볼 수 있다. 맛도 내가 한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난 돈을 내고 사지만 그 음식들은 나에게 시간을 준다. 간단히 끓여서 먹이고 15분이라도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는 것이 서로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내는 나만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