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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17. 2019

그 통화는 집착이 아닌 안부였으면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엄마는 단단히 삐진 모양이다. 하루에도 한 번 이상은 전화를 거는 양반이, 삼 일째 무소식이다. 대놓고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아도 다음 날이면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 전화를 거는 엄마였는데 이번에는 속으로 ‘내가 연락을 하나 봐라’하는 심정인지 내 통화 목록에서 엄마가 한참 뒤로 물러나 있다. 발단은 집이었다. 지난 금요일 나는 모처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구로에 사는 전 직장 동료의 집에 놀러 갔다. 그녀는 육아휴직 중으로 이제 백일이 갓 넘은 아이의 엄마다. 생각보다 우리 집과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엄두도 못 낼 동네였다. 다행히 요즘 운전실력이 늘어 실수하지 않고 단번에 잘 찾아 아파트에 도착했다. 친구는 내가 현관에 들어서기 무섭게 배달앱으로 중국음식을 시켰고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보며 귀여워, 귀여워를 연발했다. 짬뽕과 탕수육을 맛있게 먹고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4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차 막히기 전에 가라는 친구의 말에 나는 서둘러 갈 채비를 했다. 이제 어디인지 알았으니 자주 만나자고, 다음에는 근처 카페로 드라이브 가자고 얘기를 하고 현관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길 애당초 가려고 마음먹었던 아이 미술학원에 들렀다. 태권도에 다니고 있었지만 흥미를 점점 잃기 시작했고 근처에 마땅한 미술학원이 있어 아이와 함께 가보기로 한 거였다. 자그마한 미술학원엔 인자한 표정의 원장 선생님이 우릴 맞아주었고 아이에게 도화지를 내준 뒤 이런저런 상담을 마쳤다. 내친김에 등록까지 마치고 학원을 나서며 하루가 잘 마무리되나 싶었다. 그때 가방 속 휴대폰 진동이 울렸고 나는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는 걸 알고 여느 때처럼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았다.      


“집에 갔어?”

“응. 이제 막 왔어.”


이번 사건 아니래도 내가 요즘 엄마한테 자주 거슬리는 건, 엄마가 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려고 하는 거였다. 내가 10대 20대도 아니고 40대 주부에 아이까지 키우는 모양새인데 엄마는 전화로 일일이 뭐 먹었냐, 어딜 갔냐 코치코치 늘 캐물었다. 그럴 때마다 싫은 티를 내도 전해지지 않는 건지 내 의사 표현을 무시하는 건지 엄마의 간섭은 계속됐다. 그날도 전화가 오기 전 점심에 카톡 메시지로 어디에 갔느냐고 물었던 참이었다. 나는 동료 집에 왔노라고 짤막하게 답장했고 엄마는 곧장 지역이 어디냐고 물었다. 엄마의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 나는 금세 기분이 나빠져서 ‘구로’라고 짧게 써서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엄마의 계산으로 내가 집에 도착했을 것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건 거였는데... 이번에는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걔네 집이야?”

“뭐가?”

“전세 아니고 자기네 집이냐고.”     


나는 당장이라도 전화를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엄마는 그게 왜 궁금한데!? 내 친구가 전세 사는지 월세 사는지가 왜 궁금하냐고!”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대뜸 소릴 질렀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엄마의 질문 레퍼토리 중 하나가 ‘그 사람은 어디에 사는가’이다. 그다음은 ‘만나서 뭘 먹었는지’다. 본인이 만나는 사람은 물론이고 나나 언니가 만나는 사람의 호구조사까지 완벽히 파악하려는 습성이 못마땅하다. 알만한 곳에 살면 대단하게 여기는, 그 사람이 사는 모습을 오로지 얼마짜리 집을 소유했느냐로 따지는 태도가 때로는 우리 엄마라고 하고 싶지 않을 만큼 환멸스럽다. 더 참지 못한 나는 엄마에게 소리치며 분노했다. 결국 엄마에게 돌아온 대답은 서울 그 동네에 살면서 전세 아니고 자가면 꽤 잘 사는 거라는 아는 체였다. 수화기 건너편에 나는 씩씩거렸고 엄마는 내 호통에 알았어!라고 뾰로통해하며 전화를 툭 끊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났고 엄마에겐 전화는 물론 카톡 메시지도 오지 않는다.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살고 있으면서도 왜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해 뭘 먹었는지 묻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정말이지 엄마에게 쏘아대고 싶었다. 나한테 관심 좀 꺼달라고. 엄마는 저녁마다 전화해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었는지 묻는다. 요즘은 반조리식품도 잘 나오고 대충 라면 끓여 먹는 날도 많은데, 그런 걸 엄마에게 일일이 얘기할 때마다 내가 되게 잘 못 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특히나 애 저녁을 그렇게 먹여서야 되겠냐고 하면 내 새끼니까 내 마음대로, 엄마도 우리 라면 끓여준 적 많잖아!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 정도에서 끝이 아니라 가끔 언니네 식구와 우리 식구끼리 간단히 저녁 식사하며 맥주라도 마실 요량으로 만나고 난 뒤 우리가 그 자리에 엄마를 부르지 않았단 걸 알면 왜 자신을 빼놓았는지 캐묻곤 했다. 그게 딱히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젊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건데 엄마는 너무 일일이 우리의 생활에 끼어들려 하는 게 못마땅해 죽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매번 그러는 게 아니라 어쩔 때는 우리 쪽에서 함께 저녁 먹자고 연락을 하면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거절할 때가 태반인데 늘 우리가 당신을 챙기지 않는다고 서운해한다.    

‘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내용을 끝까지 읽은 책은 아니지만 정말 저 제목을 보고 내 이야기다! 하고 냉큼 주문했다. 정말 말 그대로다. 나는 왜 엄마에게 화가 날까?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대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 속에서 열불이 날 뿐이다. 나라고 엄마 마음에 백 퍼센트 들겠는가. 당신이 전화하기 전에 먼저 전화한 적 없고 살갑고 다정하게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무뚝뚝한 딸인걸. 엄마도 엄마 마음에 내가 쏙 들진 않을 게다. 그러면 그럴수록 거리라는 게 필요한 것 아닐까? 나는 그 어떤 관계보다도 가족 간에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뭘 먹는지 뻔하고 어딜 가는지 뻔한데 굳이 그걸 일일이 알아야 하는가? 엄마가 전화해서 매번 묻는 질문에 내 대답 또한 늘 같다. 그 같은 대답을 빼놓지 않고 해야 하니 말이 곱게 나갈 리 없다. 반복에는 장사 없다. 내가 퇴사한 뒤로 엄마의 집착은 더 심해졌다. 내가 집에서 할 일 없이 잠이나 자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때로는 퇴사한 나를 이제 다시 자신이 돌봐야 할 아이(?)가 된 것처럼 여길 때도 있다.      


어딜 갔는지, 저녁은 뭘 먹었는지, 애는 지금 뭐하는지를 묻는 전화가 삼일 째 오지 않으니 퉁명스럽게 말할 일 없어 편하긴 한데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고 조마조마하다. 뭔가가 터지기 직전 같기도 하고, 뭐 며칠 뒤 아무렇지도 않게 “어디 갔어?”라고 묻는 엄마의 전화가 올지도 모르지. 엄마의 관심이 그리울 나이는 지났다. 나는 그 관심을 고스란히 내 아이에게 쏟는다. 엄마와 나눌 여유가 없을지 모른다. 살가운 딸이 못돼서 미안하지만 엄마도 자식들에게 그만 집착했으면 좋겠다. 작년 여름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는데, 내가 엄마 사이의 이런 짜증스러움에 대해 이야길 했더니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학인 중 한 명이 자신의 어머니는 병상에 있어서 그런 집착이 그립다고 했다. 그 얘길 들으며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을 챙기지 못했단 생각에 뜨끔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케이스를 끄러 안을 수는 없다는 것. 난 나대로 짜증이 나는 걸 어쩌란 말이냐.      


전화는 삼일에 한 번 꼴이 좋겠다. 그런 주기라면 어디인지 밥은 뭘 먹었는지가 집착처럼 여겨지기보다는 안부로 들릴 것이다. 자식들 집에 있는 냉장고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까지 체크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 자식들이 가는 곳은 다 따라다니고 싶어 하는 엄마. 아빠 없이 엄마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탈 없이 잘 자라게 해 준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한 일이나 이제 그만 엄마도 엄마만의 인생을 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 살고 있다고 호통 칠지 모르지만 더는 자식들의 식탁이 궁금한 사람이기보다 당신 입으로 들어갈 맛있는 음식 찾는 게 더 재밌고 신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순전히 내 바람이다. 엄마도 이번을 계기로 왜 작은 딸이 늘 그렇게 퉁퉁 거리며 전화를 받는지 생각해 보게 될까? 당신이 다 큰 자식들을 너무 간섭하는 건 아닐지 돌아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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