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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Sep 19. 2016

버티려면 멍 때려야 해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좋은 스피커를 통과한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건축이 된다는 것. 
<김애란 ‘비행운’을 읽다가>



매일 저녁 퇴근 후에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친정에 들러 아이를 데려가는 일은 버겁다면 버거운 일이다. 그렇게 생활한지도 벌써 1년이 다 돼간다. 그러니까 작년 10월, 9개월의 출산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에 복직했다. 느낌 상으로는 마치 2, 3년은 지난 것 같지만 1년에서 한 달이 모자란다. 친정에서 우리 집까지는 차로 20분 남짓. 퇴근 시간이라 차가 좀 밀리면 30분도 걸린다. 반대로 늦은 밤 신호발(?)을 좀 받으면 15분도 찍는다. 나는 아이를 카시트에 앉힌 뒤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에서 팟캐스트 듣는 시간을 무척 좋아한다. 그때 이 버거움을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듣고 싶은 주제를 골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라디오보다 좋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 시간을 기다리기까지 한다. 이 시간이 좋은 이유는(물론 아이가 울지 않고 조용히 잠들거나, 창 밖을 바라보며 사색한다는 조건 하에) 운전을 하고 있지만 모르는 길을 가는 긴장된 여정이 아니고 아이와 함께 있지만 조용하고 몸으로는 운전을 하지만 귀로는 책 이야기를 들어서 그렇다. 그리고 운전할 때 비로소 앉아서 쉰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 소박하지 않은가? 원래 애 엄마들은 이렇게 별거 아니지만 소박한 시간이 간절하다. 그러니까 애 신경 안 쓰고 맘 편히 밥 먹는 시간, 차분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시간, 다만 몇 페이지라도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 크게 돈 드는 거 아니지만 이런 게 절실하단 말이다(남편님아).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또 있다. 일요일 교회 가는 시간이다. 비록 ‘선데이 크리스천’이지만 일요일 예배만큼은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종교적인 신념보다 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때문인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교회도 친정 근처라서 거리는 멀지 않지만 그 시간 동안 생각도 정리하고, 듣고 싶던 팟캐스트도 이어서 듣는다. 출발하기 전엔 늘 동네 슈퍼에서 커피 하나를 산다. 왕복 40분 남짓 운전은 하고 있지만 쉰다는 느낌이 강하다.

제대로 쉬기 위해선 아이 없이 혼자인 상태가 되어야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해진 건 당연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부터다. 나는 결혼 후 4년째 되는 해에 아이가 생겼는데, 뭐 생각해 보면 그간 참 편하게 살았다는 생각도 든다. 지인 중에는 신혼 생활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아이가 덜컥 생겨버린 경우도 허다하니까. 근데 그건 또 그것대로 장점이 있다. 일찍 낳아서 일찍 키우면 그만큼 힘이 덜 든다. 안 든다는 게 아니라 덜 든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으라는 어른들의 말이 틀린 게 아니다. 육아는 무조건 체력 싸움이기 때문에 내 몸이 튼튼하지 않으면 아이를 돌보기가 그만큼 힘들다. 아,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지...


육아휴직 기간 동안 나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중에 육아에 관한 책도 몇 권 있었다. 정보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뭔가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찾아 읽은 책 중에 ‘엄마만 느끼는 육아 감정’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몸은 쉬더라도 머리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태평하게 있으면 왠지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아 일부러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위한 고민거리를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엄마가 소위 멍 때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엄마의 삶은 느릴수록 좋다. 최대한 느리게 행동하고 느리게 말하는 것은 결코 게으른 엄마인 것도 아이를 방치하는 것도 아니다. (중략)
아이 엄마가 몸이 충분히 쉬기 위해서는 아이 없이 혼자인 상태가 되어야 하고, 마음이 충분히 쉬기 위해서는 아이와 상관없는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illust by 윤지민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혼자 노는 걸 즐겼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기도 해서 친구들도 많이 없었을뿐더러 혼자 노는 게 재미있었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한창 연애할 때는 주말 저녁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에서 펼치는 책 한 권이 남자 친구보다 더 반갑기까지 했다. 토요일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주말 밤부터 일요일까지는 읽고 싶던 책도 읽고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남자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발걸음보다 가벼웠던 것 같다. 그러면서 연애는 왜 하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어쩌면 남자 친구가 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허구한 날 혼자 있어야 한다면 그 시간이 값질 리 있겠는가?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잠시의 짬

요즘은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나뿐만 아니라 육아에 찌든 엄마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눈으로는 책을 읽고 있어도 머릿속에는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으며 마음 한 구석에는 냉장고에 버려야 할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거실 바닥에 고양이 털 뭉치가 돌아다니건 말건, 젖병에 우유가 말라붙건 말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 속에 푹 빠져 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집중력이 부족한 건지 타고난 살림꾼인지.) 한 페이지 다 읽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탁기를 들여다 보고 또 한 페이지 읽다가 널어놓은 빨래를 개야 하는, 살림과 휴식이 크로스 되는 삶을 당분간은 받아들여야 한다. 오늘 밤도 어김없이 처음 눕혀 놓은 위치에서 정확히 180도 돌아가 잠들어 있는 아이를 번쩍 안아 다시 제자리에 눕힌다. 무거워진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 일기를 쓰고 휴대폰을 조금 들여다보다가 얼굴 위로 툭 떨어트린다. 아… 엄청 아프다. 내일 또 돌아올 혼자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불을 끄고 잠이 든다. 세상 모든 엄마들이여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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