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을 무렵이다. 바이럴을 위주로 하는 광고 대행사를 다니며 온갖 다양한 광고주와 상사를 도맡던 나는 다음에는 반드시 광고주가 되어 밤 11시에 제안서 피드백을 받는 이 설움을 떨치리라 결심했고 결국 브랜드 담당자로 이직에 성공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저희 좀 써주십사 하며 요청하지도 않은 브랜드의 SWOT 분석을 하고 바이럴 제안서를 들이밀다가 "마케팅 담당자분 계신가요"하는 전화를 받는 경험은 생경하고도 신선하고도 조금은 기분 좋았다. 물론 그것도 영업 전화에 밀려 곧 시들해졌지만.
그러던 때 일과 중에 왠지 익숙한 느낌이지만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워낙 명함을 뿌리고 다니다 보니 누구인지 몰라도 일단은 전화를 받았는데 "여보세요"하자마다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지난 회사에서 DB 마케팅을 진행해주던 업체의 대표였다.
시답잖은 인사치레와 안부가 지나고 대표는 그 회사가 요새 연락이 안 된다며 폐업 여부를 물었다. 물론 회사가 폐업 할리는 없었다. 계약 기간이 끝났는지 DB 마케팅이 돈이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그 회사의 대표가 연락이 안 될 뿐이었다.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회사는 퇴사를 하고서 서류를 달라는 요청에도 내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내가 이메일과 직통 전화를 통해 재요청을 시도하자 전화는 받았다가 끊으면서도 문자로 불쾌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는 곳이었으니까.
바야흐로 온라인, 디지털 광고가 광고비의 40%을 넘을 정도로 고성장을 하고 있는 시대다. 바이럴 광고는 아무리 기본이고 쉽다고들 하지만 기본인 만큼 소위 말하는 '깔아놓는 콘텐츠'의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네이버 블로그, 카페, 지식인 등 포털 사이트는 아직도 건재하고 영상매체에 피로함을 느낀 소비자들을 다시 한눈에 원하는 정보를 알아볼 수 있는 텍스트로 돌아오고 있으니까. 최적화 네이버 블로그가 없어서 발을 구르는 게 비단 업체만을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나만해도 10년 통한 키운 블로그로 얼마 전 친구 회사의 콘텐츠 상위 노출을 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회사를 옮기고 명함을 바꿔도 좁은 업계에서 소문은 나고 조금씩만 타고 가면 금방 그 사람의 안부를 알 수 있다. 사람의 안부가 이렇게나 알기 쉬울 진데 회사는 어떨까. 얼마 전에는 회사의 임원분이 미팅한 업체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전의 회사에서 같이 작업해본 곳이라 말했더니 연락처를 전달받았다. 내가 일했을 때는 모르던 분이었는데 통화를 하며 전에 일해봤었다 하니 금방 언제 일했는지 아시면서 그때의 이야기를 하시더라. 전의 담당 업체에서 담당자를 기억할 때는 1) 일을 잘하던지 2) 일을 못하던지 3) 아주 까탈스러웠던지 셋 중의 하나일 것인데 아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1)을 밀어 보지만 자신은 없다.
아무튼 사람이 많은 만큼 타고 가다 보면 걸리는 사람도 많고 결국 다 얽혀있는 것이 업계 바닥이다. 적어도 함께 일 했던 사람의 연락은 피하지 말고, 일신상의 관리는 잘 하자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