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는 수영으로 산다

물 속에서 배운 삶의 리듬

by 맛있는 하루

나는 수영으로 산다.

처음 물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분명했다.


살기 위해서였다.

고질병 퇴행성변형디스크.


허리 통증, 종아리와 발까지 내려오는 방사통, 저리고 화끈거림. 통증은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했다. 오래도록 맞은 신경주사는 몸을 더 약하게 했고, 각종 약물은 위장을 헐게 만들었다. 통증 없는 하루가 없었던 시절, 권유받은 재활 필라테스 대신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영은 일대일 위주로 진행되는 재활필라테스보다 훨씬 저렴했고, 필라테스 기구보다 수영장이 더 정이갔다.




그때는 몰랐다.

그때의 나의 선택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도, 이렇게 일상이 될 줄도.


어느 순간부터 수영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늘 몇 미터를 갔는지, 호흡이 얼마나 트여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즐거운 루틴이 생겼다. 오늘 수영장 소독물 맛을 보았는지, 호흡은 일정했는지, 물속에서 잡념은 조금 가라앉았는지. 허리디스크 때문에 평영과 접영은 시작도 못해보고 포기했다.


오로지 자유형과 배영뿐인 나의 수영은

성취의 도구가 아닌, 과정이었다.


링컨은 노예 해방을 선언하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말했다.

나는 허리디스크를 위한 척추위생을 선언하며

‘수영의, 수영에 의한, 수영을 위한’ 하루를 선포했다.




글로 적으니 대단해보이는

‘수영으로 산다’는 말은 사실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현관에 늘 수영 가방이 놓여 있는 삶, 겨울에는 내복을 두 겹, 세겹 입고 수영장 수온으로 날씨를 가늠하는 사고방식. 기분이 좋을 때는 좋아서, 나쁠 때는 우울하니까 “일단 물에 들어가보자”는 수영인의 태도.


수영은 물 속에 있는 순간만이 아니라, 하루를 바라보는 기준이자 하루의 모든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시간이었다.


물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힘을 빼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너무 애쓰면 오히려 가라앉는다는 것, 각자의 속도는 다르지만 같은 레인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말없이도 충분히 배려할 수 있고, 기다림이 때로는 가장 적극적인 선택이라는 사실도. 물속에서의 배움은 수영장을 넘어 땅 위의 삶에도 변화를 주었다.


통증의 빈도와 강도가 줄었고, 무기력했던 하루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AI 생성 이미지 활용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영으로 산다.

오늘의 나로 무사히 살아가기 위해서.


그날그날 주어진 허리 컨디션의 허락 안에서, 종종거리더라도 생기 있게 살아보기 위해.


‘수영의, 수영에 의한, 수영을 위한’ 리듬이 나를 살려내서, 오늘도 나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수영을 오래 하다 보니, 궁금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어떤 날은 물이 잘 잡히고, 어떤 날은 손에서 빠져나갈까. 쉬는 날에도 수영 생각이 나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왜 이렇게 각자의 사연을 안고 같은 수영장에 모여 있을까.


궁금증이 점점 더 쌓여만 갔다.


그래서 다음 브런치북에는, 수영에 대해 묻고 답해보려 한다. 선수들의 전문적인 이야기나, 잘하고 못함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영을 하며 생긴 사소하고도 진지한 질문들. 유쾌하게 묻고, 솔직하게 답하는 수영 궁금증 해결사로 다시 돌아올 생각이다.


이번 브런치북

<수영장, 물속의 일상>은 이렇게 안녕을 고한다.


하지만 수영으로 사는 일은 계속된다.

오늘도 나는 물속으로 들어간다.

궁금증을 하나 더 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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