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이 가르쳐준 사랑의 소리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내 마음 속에 들어갔다왔나 싶은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반가워서 한 번 더 읽고, 블로그에 문장수집을 하며 또 한 번 읽고, 다음 번에 써먹으려고 외우며 다시 한 번 읽는다.
애정하는 에세이 시리즈의 <아무튼, 서핑>을 읽다가 그런 문장을 발견했다.
"처음 서핑을 배우던 날, 어쩌다 서프보드 위에 잠시 올라서서 비틀거리다가 바다에 빠지며 깨달았다. 사랑에 빠지는 소리는 '풍덩'이라는 걸. 서핑이라니, 사랑이라니. 이 좋은 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나는 그날 몹시 분하고 기뻤다."
_ p.23, 안수향 <아무튼, 서핑>
사랑에 빠지는 소리는 '풍덩'이라니. 나뿐 아니라, 수친자라면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까.
수영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소리가 있다. 입수할 때의 짧고 단정한 '첨벙', 레인 끝에서 턴을 할 때 벽을 발로 짚는 '툭'하는 둔탁한 울림, 코로 숨을 내쉬며 물속으로 퍼지는 '보글보글', 그리고 귀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물이 남기는 낮고 먹먹한 여진까지. 많은 소리들이 켜켜이 쌓여, 수영장에서는 땅 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웅웅거린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귀에 물이 들어가 먹먹해질 때면 왠지 기분이 가라앉았고, 숨이 가빠질수록 물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물속에서 길게 내쉬는 호흡과 내 몸이 찰떡같이 맞아떨어지고, 팔로 물을 잡아 던지며 수면을 타고 미끄러질 때, 나는 비로소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수영장에 오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매일 하던대로 나홀로 자유수영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보다 힘들지 않다는 것을. 이번 주는 지난주보다 몸이 물 위에 가볍게 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물속에서 '찰랑'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물이 내 몸을 반겨주는 소리 같았다.
아마도 나에게 사랑에 빠지는 소리는 '풍덩'이 아니라 '찰랑'이다. 과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소리. 요란하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 남는 소리. 물이 내 몸을 스칠 때마다, 나에게만 들리는 그 조용하고 은밀한 '찰랑'이 오늘도 나를 수영장으로 이끈다.
사랑에도 저마다의 소리가 있다. 당신의 소리는 무엇인가.
#수영 #수영일상 # #수영에세이 #일상에세이 #브런치북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