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짧은 소설

by 정유미



종종 그 언니가 생각났다. 미라는 전라남도의 작은 섬에서 막 인천으로 올라왔을 때 지낼 곳이 없어 곤란했다. 그때 그 언니가 미라를 자기 집에서 지내게 해 줬다.


미라가 잠시 마산에 있을 때 알게 된 언니였고 그 당시에는 인천의 단칸방에 혼자 살고 있었다. 그 언니는 인천에서 일을 하고 생활비를 마산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보냈다. 미라는 그 단칸방에서 그 언니와 함께 도시생활을 시작했다. 인천의 수많은 공장 중 하나에 취직했던 미라는 아무것도 없었던 그때를 도시로 상경해서 가장 행복했던 때로 꼽는다.


그 언니는 참 깔끔하고 음식 솜씨가 좋았다. 동시에 미라를 친동생처럼 보살폈다. 미라는 인천으로 상경해 자리를 잡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언니와 지냈던 시절은 예외였지만. 아마 그 언니와 헤어지고 나서 쭉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인천으로 올라오기 전 시골에서의 삶은 전혀 고단하지 않았다. 미라의 아버지는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탕진하는 만큼 많이 벌기도 했다.


그래서 미라의 집은 컬러텔레비전도 제일 먼저 들였었다. 다소 폭력적이고 여자를 무시하는 뱃사람이었던 아버지를 미라는 싫어했지만 누구누구의 딸이라고 하면 마을 사람들이 무엇이든 하나씩 더 챙겨주었기에 누구누구의 딸, 미라라고 하는 동네 사람들의 부름은 싫지 않았다. 미라는 그런 삶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순종적인 어머니의 삶은 보잘것 없이 느껴졌다. 미라는 일찌감치 돈을 벌겠다며 도시로 나왔다.


가만히 집안일이나 배우고 있으면 좋은 곳에 시집보내주겠다는 아버지의 말을 미라는 믿으면서도 믿지 않았다. 그 좋은 곳이라는 데가 아버지와 비슷한 그 어디라면 절대 가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처럼 사는 건 미라가 가장 만들고 싶지 않은 미래였다. 미라는 아버지의 그 말에 항상 진절머리를 냈다. 그래 봤자, 당신 같은 남자나 만나겠지. 절대 싫어, 하고.


도시의 생활은 고단했지만 퇴근하면 그 언니가 손수 밥도 해주고 청소며 빨래도 도맡아 해 주었다. 미라가 청소라도 도와줄라치면 언니는 도리질을 했다. 그냥 둬. 내가 할게. 미라는 언니의 태도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그게 몸은 편하면서도 마음은 불편했다.


미라는 그런 삶을 보고 싶지 않아서 도시로 왔었다. 그러나 마음의 불편함 같은 건 생각보다 금세 익숙해졌다. 하루 종일 공장에서 스스로가 기계라는 착각에 빠져 일하고 나면 저녁에는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하고 싶지 않았다. 미라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그게 편하다면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것도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라는 그런 생활(다른 누군가가 밥도 빨래도 알아서 해주는)에 이미 익숙한 사람이었으니 마음 한 편의 불편함을 안 보이게 살짝 접어두기만 한다면 괜찮았다. 하지만 도망치고 싶은 대상이 어머니에서 언니로 치환되었는데 어머니에게서는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 언니에게는 아니었다. 미라는 스스로가 혐오스럽다고 느꼈다.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의 역할을 자신이 떠맡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동시에 어머니는 혈육이라 더 안타깝고 그 언니는 혈육이 아니라 덜 안타까운 것일까, 싶기도 했다.


그 언니는 삶은 완두콩을 좋아했다. 계절이 바뀌면 철에 따라 나물반찬을 하고,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을 가득 주워와 홀로 손질해 구워주기도 했다. 미라는 철에 따라 바뀌는 생선 반찬을 먹으며 자랐고, 잔칫날엔 누린내가 나는 염소 고기를 먹었던 사람이다. 언니는 부지런했고 미라에게 헌신적이었지만(왜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상황에 고맙지는 않았다. 미라는 언니에게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하던 불평을 하고, 어리광을 부렸다.


그 언니와 헤어진 건 미라가 결혼을 하면서였다. 미라는 공장에 다니면서 어떤 남자를 만났고 남자는 제법 멀끔하게 생긴 데다 부모가 땅도 가지고 있었다. 조금 혹했을지 모른다. 지금과는 다른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가 짠, 하고 나타난 것 같기도 했다. 임신은 예상치 못했지만 그래도 그 덕에 그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 미라의 집에서도 남자의 집에서도 반대가 심했지만 둘은 개의치 않았다. 미라는 자신만 믿으라고 말하는 남자의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가 뭐든 해줄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그에 의지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미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오래전에 어머니에서 그 언니로 치환된 삶이 자신에게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때 자신의 삶은 모든 푸르고 싱싱했던 시절을 잃어버린 후였다. 돌아갈 수 없었고, 스스로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미라는 어쩐지 자신의 어머니보다 그 언니를 생각하며 더 많이 울었다. 그 언니가 불쌍했다. 너무 미안했고,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과 태도와 말들을 바로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에 대한 연민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었을지 모른다고 나중에는 생각했다.


미라는 종종 딸에게 얘기한다. 그 언니에 대해서. 콩나물을 다듬을 때 옆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딸에게. 다 마른빨래를 갤 때 옆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딸에게, 딸과 영화를 한 편 보고 집에 가는 길, 멀리서 보이는 고속터미널을 보면서 얘기한다. 마산에 가려면 저기서 타고 가야겠지? 딸은 그럴 걸, 하고 대답하고 스마트폰을 본다. 그럴 때면 미라는 (언제 딸이 자신과 눈을 맞추며 대화를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우울했다. 딸이 조금 더 물어주었으면 했는데 딸은 이제 미라가 묻는 질문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미라는 부탁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종종 그런 방법을 쓴다. 질문하는 방법. 이거 이러면 될까? 하고 물으면 딸은 방법을 찾아 미라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딸이 그 일련의 과정을 귀찮아한다는 걸 느꼈다. 좀 알아서 해 봐 하는 무자비한 말을 할 때도 있었다. 미라는 그럴 수 있었으면 진즉 그렇게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방으로 들어간다. 미라는 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할까 두려웠다.


그래도 어느 날은 딸이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미라에게 물었다. 그 언니, 사는 곳과 이름 알아? 미라의 대답 여하에 따라 정말 찾을 수 있다면 찾아줄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미라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아니, 오히려 당황하고 말았다. 길을 걷다 머리 위로 밤송이라도 떨어져 얼떨떨해하는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몰라. 기억이 안 나.


미라는 싱겁게 말했다. 그 언니는 그저 언니라고만 불렀기에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고향집도 마산에 있을 때 몇 번 가본 것뿐이라 주소는 모른다고. 버스를 타고 터미널 역에서 내리면 기억날 것 같다고.


딸은 기함했다. 아니, 벌써 30년도 더 지났는데 거기가 그대로 일리가 없잖아!! 주소 없이 어떻게 찾아가!!


미라는 그런가,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딸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미라가 그 언니를 다시 만나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생각한 것이다.


미라는 그 언니를 생각했다. 미라에겐 다시 만나고 싶은 고맙고, 중요한 존재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그 언니. 그런 존재들이 있다. 엄마가 그냥 엄마로만 기억되는 것처럼 이름보다는 그냥 그가 되었던 역할로만 남는 존재들. 그 언니도 ‘그 언니’인 채로만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은 것이다.


미라는 뒤늦게 딸을 보며 생각했다. 그 언니가 주었던 행복은 미라의 엄마가 미라에게 주었던 안정과도 비슷했고 미라가 자신의 딸에게 주고 싶은 안정과 행복, 편안함과도 같았다. 미라는 겨우 비참하다 생각했던 엄마의 삶을 그렇게 비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언니에게 고마울지언정 미안함에 눈물을 삼키며 불쌍하다 여길 필요도 없으며 자신의 딸도 그 어떤 부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다. 단지 그 언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만은 아쉬웠다.


미라는 마산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거 뭐 어렵다고. 고속터미널에서 표만 끊으면 되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아주 간단한 일인 것만 같았다. 미라는 비로소 그 언니가 정말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