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소설
1 콧대 높은 코
나는 코입니다. 인간의 ‘코' 말입니다. 인간의 얼굴 중앙에 위치해 우뚝 솟은 혹은 편편하게 낮은 혹은 높고 끝이 뭉뚝한 혹은 딱히 높지도 편편하지도 끝이 뭉뚝하지도 않은 그런 모양새들을 가진 인체 기관 말입니다. 간혹 무언가에 대한 은유로 짐작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게 빙빙 돌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말하는 대로 나는 코이니까요.
내가 하는 일은 아주 다양합니다. 첫째로 숨을 쉽니다. 둘째로 냄새를 맡고요. 셋째로 세균을 밖으로 배출해내기도 하지요. 재채기로 말입니다. 그 외에도 이러저러한 잔일이 많지만 그걸 일일이 설명한다고 누가 그 고충을 이해하겠습니까. 그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다시 한번 얘기하도록 하죠.
나는 어떤 생물에게든 존재합니다. 아메바나 플라나리아 같은 생물은 예외고요. 뭐 식물 같은 경우도 예외입니다. 정확히 ‘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에만 ‘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거나 유사한 건 치지 않아요. 유사한 건 유사한 것일 뿐 진짜가 아니지요. 그 정도는 아시지요?
나는 요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냐고요? 내가 코라고 말했지요? 그럼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떤 냄새 때문입니다. 내가 돌보고 있는 녀석은 조금 한심하긴 해도(뭐 가끔은 머저리 같은 짓을 하기도 하지만) 나름 멀쩡한 녀석입니다. 가끔 하는 머저리 같은 짓은 아마 녀석이 20대이기 때문일 겁니다. 인간들은 삶의 대부분을 머저리 같은 행동을 하며 살지만, 그것이 응축된 시기가 특히 그쯤이더군요. 인간들은 그 시기를 청춘이라 부르지만 나는 멍충이라 부릅니다. 아, 정말 멍충한 녀석.
그 멍충이가 여자를 만난 건 신입생 환영회에서였습니다. 이 녀석은 한눈에 그 여자에게 반했죠. 왜냐고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나이대의 남자들이 여자의 무엇을 보고 한눈에 반할까요. 친구가 소개팅하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뭔지 아시죠? 예쁘냐?입니다. 예쁩니다. 그 여자는 정말 예쁘답니다. 아니, 사실 나는 잘 몰라요. 그 여자의 코는 사실 끝이 조금 뭉뚝하고 오른쪽으로 휘었습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눈’을 통해 알았죠. 눈과 나는 긴밀한 공조를 유지합니다. 눈만으로 혹은 코만으로 세상을 짚어나가는 건 아주 힘들고 외롭고 위험하거든요. 그리고 눈 외에도 나는 친구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녀석은 한눈에 그 여자에게 모든 정신을 빼앗겼습니다. 하물며 냄새를 날조하기까지 했어요. 여자에게서 나는 흔하디 흔한 향수 냄새를 맡고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특별한 꽃향기인 줄 알더라니까요. 아니, 요즘 인간에게는 사람 냄새조차 나지 않는데 하물며 꽃향기가 나면 그게 인간입니까? 뭐 먼 옛날에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국화꽃 향기가 난다며 수작을 부리는 이도 있었다는데 그런 멍충이가 시대를 거슬러 여기에도 있다는 겁니다.
녀석은 사과꽃 향기를 맡았다고 생각하더군요. 이 녀석은 사과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사과꽃 향기라뇨! 정말 황당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저 그런 향수 냄새를 듬뿍 녀석에게 들이마시게 했습니다. 코를 벌름거려 점막에 있는 모든 세포를 닦달해 예민하게 깨워댔죠. 그런데 그러면 뭐 합니까. 이 녀석은 진실을 받아들일 마음이 아예 없었습니다. 눈앞의 여자를 보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죠. 그 코가 오른쪽으로 휜 여자가 짙은 립스틱을 유리잔에 찍어대며 소맥 7잔을 말아 마시는 걸 보면서도 그녀의 흑기사가 되어주고 싶어 안달을 하더라니까요. 흑기사라니, 요즘에도 그런 한물간 짓거리를 하는 녀석이 있답니까. 네, 여기 있네요.
녀석은 결국 그 여자의 흑기사 노릇을 했답니다. 누가 봐도 여자는 멀쩡했는데 말이죠. 하물며 여자는 흑기사를 원하지도 않았어요. 아마도 그 여자는 그 상황이 오히려 불쾌했던 것 같아요. 마시던 술을 빼앗긴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아니, 왜 어우 저도 취하네요, 하는 겸양을 위해 그냥 해보는 말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술잔을 뺏어 들고 원샷을 하냔 말입니다. 아무래도 나와 녀석은 반대로 돼야 하는 것 같아요. 그 녀석이 코이고 내가 녀석이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세상 창피해서 나도 모르게 코가 벌렁거리네요. 어휴.
그 후 녀석은 완전히 여자의 포로, 아니 노예가 되었습니다. 여자가 들어가는 모든 강의를 따라서 수강 신청하고 매일 학생 식당에서 밥을 사고 끝나면 영화를 보여주고 어떤 날은 여자와 함께 학교에 가고 싶었는지 일찌감치 역 앞 개찰구에서 서성대며 기다리더란 말이죠. 집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신기한 건 그 여자의 흔하디 흔한 향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도(하물며 녀석의 동기들에게도 흔히 맡을 수 있었습니다) 녀석은 여자만은 정확히 식별한다는 겁니다. 그것도 여자의 냄새가 특별하다는 확신을 하고.
내가 못하는 걸 녀석이 해낸다는 건 꽤 생소한 기분이었습니다. 뭐랄까, 기르던 고양이에게 항상 속내를 주절주절 털어놓았는데 알고 보니 그 고양이가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와 비슷했어요. 바보가 된 기분이었죠.
물론 녀석이 유리한 건 사실입니다. 나는 코일뿐이지만 녀석은 인간이니까요. 나는 녀석의 일부이지만 녀석은 우리들의 집합체이니까요. 가끔 나는 내가 코이며 겨우 이런 녀석의 일부일 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지 회의가 듭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생각하죠. 하지만 간혹 내가 보내는 의문이 의심이 되어 녀석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걸 보면 분명 필요한 일이긴 한가 봅니다. 아니, 필요해진 일이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여자는 어땠냐고요? 처음엔 관심 없던 여자도 녀석의 정성에 조금씩 마음이 느슨해지더군요. 뭐, 흔한 이야기 아닙니까. 20대 초반의 남녀에게 흔하게 일어나는 그런 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그런 일. 네, 결국 둘은 사귀게 되었습니다. 여자는 사과꽃 향기가 난다는 녀석의 시대착오적이고 촌스러운 말에 시원스레 웃더니 자신이 쓰는 향수 이름을 말해주었어요. 하지만 녀석은 인정하지 않았죠. 살 냄새라고 여자의 살에서 분명 그런 상큼 달콤한 향기가 난다고 우기더군요. 아니, 그러니까 사과꽃 향기가 상큼 달콤한지 너는 모른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가 여자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여자가 녀석에게 입을 맞춘 겁니다. 아마 이 여자도 국화꽃 향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수작을 부리는 남자 이야기를 아는가 봅니다. 대체 인간들의 사랑이란 그들이 느끼는 그 모든 감각이 사실은 날조와 거짓에 가깝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모든 상황을 뒤로하고 나에게, 오롯이 나에게만 닥친 불행이 있었어요. 뭐냐고요? 나에게 닥친 불행이면 냄새죠. 처음에 얘기한 그 힘든 나날의 시작 말입니다.
여자가 녀석에게 입을 맞추려고 얼굴을 가까이하는 그 찰나 느끼고 말았습니다. 구취를요. 여자는 엄청난 구취를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이를 잘 닦아도 가글을 하루에 다섯 번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냄새. 그것은 정말 오롯이 인간에게 나는 냄새죠. 인간에게 속한 모든 장기와 세포들이 합심해 만들어내는 냄새. 게다가 지울 수도 없는. 이후의 일은 정신이 아득해져 잘 기억나지 않아요. 단 하나 기억나는 것은 일주일은 물에 젖은 채 빨지 않은 행주를 내 안 가득 쑤셔 박아 넣은 것 같았다는 거죠. 나는 비상을 선포했습니다. 나의 모든 세포들에 최대한 오므리고 감각을 둔감하게 만들라고 소리쳤죠. 하지만 소용없었어요. 여자가 입을 떼고 눈꼬리를 접어가며 살짝 웃자 녀석이 주인에게 달려드는 강아지처럼 여자에게 달려들었어요. 아아, 정말 눈뜨고, 아니 코를 열고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그 이후 모든 순간을 여자의 구취를 견디는 일에 할애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지옥 같다는 진부한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견디고 있는 일상은 그 정도로 표현할 수 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녀석은 행복해하더군요. 배은망덕한 녀석 같으니. 내가 이렇게나 괴로워하고 있는데 말이죠. 콧방귀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