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단편 소설
녀석과 여자의 연애는 순조로웠습니다. 스무 살 청춘남녀가 만난 지 이제 겨우 일주일 되었으니 당연하겠지요. 아마도 나는 견뎌온 날보다 더 많은 날을 견뎌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일주일쯤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은 되더군요. 그보다 반복적으로 구취를 외면하는 녀석의 감각에 이상이 생긴 모양입니다. 나에게 프로그래밍되어있던 명령어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더니 이젠 완전히 바뀌어버렸어요. 요즘 나는 어떤 냄새는 포착하지 못하고 어떤 냄새는 전혀 다른 냄새로 느끼기도 합니다. 센서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녀석은 뭐가 잘 못 된 것인지도 모르고 있단 말이죠.
아, 얘기 안 했던가요. 나는 코입니다. 인간의 코의 기능을 이식한 기계 코라는 게 조금 다를 수 있지만요. 요즘 인간들은 다들 나처럼 넘버 부여가 된 코를 이식받아 사용합니다.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코도 있고 나처럼 프로그램 오류를 수정할 순 없지만 스스로 필터링을 거쳐 오류를 잡아내는 조금 낮은 버전의 코도 있습니다. 나보다 더 낮은 버전의 코는 그저 프로그래밍이 된 명령어를 따라 기능을 수행합니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백신을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나나 인공지능을 탑재한 코는 자체 프로그램만을 업데이트해주면 알아서 오류를 해결하거나 오류를 잡아 모체 컴퓨터로 메시지를 보냅니다.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인식하자마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없습니다. 아니, 일단 녀석이 오류 인식을 거부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눈도 답답하다고 호소하네요. 여자와 있을 때 현실감각이 너무 왜곡되어 그걸 일일이 수정하는 게 벅차다고 말입니다. 녀석이 느끼는 감각이 어떻든 간에 들어온 정보는 일단 현실과 왜곡 없이 데이터로 만들어 저장해야 하는 게 눈의 일이라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CPU가 터질 것 같다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일부일 뿐이고 녀석은 멍충이인데요.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과는 상관없이 녀석은 여자에게 푹 빠져 있네요. 오늘도 여자와 만나러 나갈 생각인 모양입니다. 학교 수업은 제대로 듣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 녀석 성적을 유지하지 않으면 이번에 새로 업그레이드된 피부 센서를 부모님에게 선물 받지 못할 텐데요. 아, 정말 인간의 모든 기관이 완벽하게 프로그램된 기계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그 완벽한 기계들의 집합체임에도 왜 인간은 끊임없이 오류를 만들까요.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신기한 족속들입니다.
오늘은 여자가 조금 늦네요. 항상 제시간에 나타나는데 이상합니다. 사실 여자는 아주 성실하더군요. 코가 오른쪽으로 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니, 구취가 심하다는 것도 제외하면 녀석에게는 아주 아까울 정도의 여자였습니다. 남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자신이 한 말도 성의껏 지키는 사람이었어요. 대체 왜 이런 녀석과 사귀는 걸까요. 내가 보기엔 한참 덜 떨어진 스무 살 남자애일 뿐인데 말이죠.
여자가 이십 분쯤 늦었군요. 그래도 녀석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오기만 해도 좋은가 봅니다. 그럴 만하겠죠. 이제 만난 지 일주일 되지 않았던가요. 일주일만 더 지나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여자는 사과하면서 요즘 자주 일어나는 기계 강탈 사건을 얘기합니다.
인간은 신기하게도 자신이 가진 것보다 좋은 걸 가진 인간을 보면 빼앗고 싶어 하더군요. 나는 나보다 고차원적인 인공지능을 탑재한 코라고 해서 그걸 빼앗아 내게 옮겨 붙이고 싶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나를 코가 아닌 다른 존재로 만들어준다면야 얘기가 조금 다르겠지만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닌 이상 코는 코일뿐인데 말이죠. 바꿔서 뭐 하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은 다른가 봅니다. 같은 코라고 해도 내가 가진 것과 남이 가진 것에 차이가 있다면 그걸 또 참지 못합니다.
그런 인간들에 의해 강탈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번에 일어난 사건이 여자의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던 모양입니다. 수사를 위해 길을 통제하고 있어서 돌아 나오느라 늦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녀석은 그런 얘기들을 듣고 있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 여자의 구취를 느끼고 싶은 모양이죠. 나는 콧숨을 내쉽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말했잖아요. 나는 친구가 많다고.
문득 여자의 코는 여자의 구취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혹시 느끼지 못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을까요? 그리고 대체 어떻게 그런 구취를 가질 수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요즘 인간들은 인간 본연이 가진 채취를 거의 잃어버렸으니까요. 인간들에게 거의 비슷비슷한 향수 냄새만이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늙고 주름지고 검버섯이 올라오는 피부도 새로 바꾸니까 말이죠. 그런데 여자에게서는 구취가 납니다. 아니, 나는 여자를 통해서 구취란 걸 처음 알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인터넷에 등록된 수많은 냄새를 검색해 방금 맡은 냄새와 성분을 검색합니다. 그렇게 많은 냄새의 정체를 밝히는 거죠. 나는 더욱더 궁금해집니다. 여자의 코에 대해서. 혹시 나와 비슷한 수준의 프로그램이라면 말이 좀 통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둘을 헤어지게 하는데 말이죠.
나는 코입니다. 기계 코죠. 다양한 네트워크에 동시 접속되어 있고 많은 정보를 검색하고 또 들어온 정보를 내보내기도 합니다. 다른 코들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기만 하면 다른 코와 접속해 정보를 공유하는 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자의 코와 아주 간단하게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2 오른쪽으로 휘어진 코
나는 코입니다. 인간의 ‘코' 말입니다. 인간의 얼굴 중앙에 위치해 우뚝 솟은 혹은 편편하게 낮은 혹은 높고 끝이 뭉뚝한 혹은 딱히 높지도 편편하지도 끝이 뭉뚝하지도 않은 그런 모양새들을 가진 인체 기관 말입니다. 간혹 무언가에 대한 은유로 짐작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게 빙빙 돌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말하는 대로 나는 코이니까요.
나는 끝이 뭉툭하고 오른쪽으로 조금 휘었습니다. 설계 실수예요. 하지만 굳이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희연이는 오히려 특징이 있는 얼굴 같아져서 좋다고 하더군요. 특이한 아이예요. 전부터 그랬지만 커서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런 희연이가 좋습니다. 희연이가 오른쪽으로 휘어진 특이한 코인 나를 좋아해 주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희연이는 조금 못마땅합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얼간이를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곧고 길게 뻗은 얼간이의 코가 싫습니다. 마치 내가 잘못된 모양으로 생겨먹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모양새랄까요. 유난히 높고 곧은 그 코는 분명 나보다 가격이 비싼 상위 버전일 겁니다. 그리고 그걸 자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 자격지심이겠죠. 그냥 나는 그런 콧대 높은 코들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 맙니다.
그런데 그 콧대 높은 코가 나한테 접속 허용을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다음엔 궁금해졌습니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희연에게는 알리지 않고 제한적 접속을 허용했습니다. 알고 보니 콧대 높은 코도 제한적 접속이었더군요.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프로텍트를 언제든 발동시킬 수 있게 준비해놓았으니 괜찮을 겁니다. 명령어만 입력하면 그 콧대 높은 코는 휭 튕겨 나갈 테니까 말이죠.
정말 무례한 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희연의 구취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토해내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라고 할 말이 없는 게 아닌데 말이죠. 그런 어리숙한 녀석의 정수리 냄새라든가 아닌 척하지만, 손끝에 묻어있는 담배 냄새 같은 것들을 모른 척 참아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나는 희연의 의지를 가장 첫 번째로 중요하게 여깁니다. 아무리 참을 수 없는 냄새라고 해도 그걸 희연이 왜곡해서 느낄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면 참습니다. 희연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니까요. 그녀의 구취도 알고는 있었습니다. 내장 기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인간 중 하나니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체취도 뭣도 없는 인간만을 겪어온 저런 콧대 높은 코가 진짜 냄새가 뭔지나 알고 있을까요.
희연은 특별 보호 대상으로 국가에서도 보호, 관리를 받는 인간입니다. 뭘 좀 알고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콧대 높은 코의 빈정 상하는 말을 잠자코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런 코와는 더 이상 상종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얼간이는 더 싫어지게 되었죠. 당연한 거 아닙니까. 감지덕지해도 모자랄 판에 뭐 그런 판단력 모자라는 코가 있는지 기가, 아니 코가 막힙니다.
어쨌든 나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희연의 대단한 점 사랑스러운 점을 저 얼간이들에게 더 알려줄 필요가 없었으니까 말이죠. 온통 개소리만 해대던 그 콧대 높은 코가 그래도 마지막엔 쓸모 있는 말을 하더군요. 둘을 헤어지게 하는데 조력해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습니다. 희연이가 백만 배쯤 아까웠거든요. 지금은 천만 배쯤 아깝게 생각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콧대 높은 코는 이야기가 통한다며 좋아하더군요. 역시 얼간이는 그 부품도 얼간이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희연의 의사를 존중하지만 저런 얼간이는 다신 만나지 못하게 하고 말아야겠습니다. 정말 치가, 아니 코가 떨리네요.
희연은 얼간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걸어갑니다. 늦은 밤은 아니지만, 주택가 골목이라 인적이 드뭅니다. 가까운 곳에서 기계 강탈 사건이 있었던지라 나는 조금 불안합니다. 그 불안이 희연에게도 옮은 걸까요. 아니면 희연이 느낀 불안이 나에게 옮은 걸까요. 나는 예민하게 주위의 냄새를 훑고 희연의 발걸음은 빨라집니다. 그 얼간이는 이럴 때 희연을 집 앞까지 바래다줘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걸까요. 물론 그런 경우 홀로 돌아갈 얼간이도 위험할 수 있겠지만, 알게 뭡니까. 그 콧대 높고 잘난 척하는 코가 알아서 하겠지요.
문득 불길한 냄새가 스칩니다. 그건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 종류의 냄새입니다. 오히려 무취에 가까운데 엄밀하게 말하면 세상에 무취라는 건 없습니다. 특색이 없을 뿐 모든 건 냄새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식의 무취는 오로지 완전한 기계에서만 맡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 가까울수록 다양한 냄새를 가지고 있고 기계에 가까울수록 냄새가 사라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희연은 한없이 인간에 가깝습니다. 나는 그래서 가끔 나 역시 인간에 가까운 코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젖어듭니다. 아,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요.
무취, 라는 건 위험한 냄새라는 이야깁니다. 나는 희연에게 경고를 보냅니다. 희연은 재빠르게 나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뛰기 시작합니다. 가방에 넣어둔 사이렌을 울립니다. 희연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도 혹시 자신이 잘못 안 게 아닐까, 사람들에게 모난 시선을 받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위험을 감지하면 그것에 맞게 망설이지 않고 대처합니다. 그게 아직도 인간에 가까운 희연이 인간에 가까운 몸으로 살아남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나는 조금 안심합니다.
사람들은 기계 강탈 사건을 무서워하지만 희연은 장기 강탈 사건을 더 무서워해야 합니다. 이간의 장기가 기계로 바뀐 지 오래되었음에도 본연의 장기를 유지한 채 살아가는 인간들은 존재하고 또 그런 인간들을 노리는 인간들도 존재합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이상한 생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사이렌이 울리면 희연을 전담하는 경호팀이 바로 출동합니다. 밀착 가드 하지 않는 건 사생활 보호 때문입니다. 목숨이 달린 일에 사생활 보호를 운운하는 게 웃긴다고 생각하지만 희연이 원한 일이기에 나는 수긍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 처하면 역시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경호팀이 빨리 와야 할 텐데요.
희연의 주위로 발소리들이 모여듭니다. 귀가 알려줍니다. 나는 더욱 예민하게 점막 세포들을 깨웁니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작동하지만 그렇기에 믿을만합니다. 무취가 가까워집니다. 주로 납치에 이용되는 기계 사냥꾼들이 분명합니다. 잔인하고 빠른 기계들. 희연은 더 빨리 달립니다. 나는 공기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3 콧대 높은 코
이야기가 잘 통하는 코였습니다. 나는 뿌듯하게 접속을 끊고 다시 녀석에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꽤 고상한 코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엔 나와 의견을 같이하기도 했습니다. 나의 이야기에 감화를 받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선뜻 여자와 녀석을 헤어지게 하자는 말에 동의한 게 아니겠습니까. 살짝 옆으로 휘었지만, 그마저도 조금 특별해 보이더군요. 사실 요즘 저런 모양의 코를 보는 건 쉽지 않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헤어지게 할 수 있을까. 일단 점점 번져가는 오류를 해결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 휘어진 코도 그 일부터 할 거라 생각합니다. 같은 목표를 위해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있다니 신기합니다. 나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은 각자 하는 일이 다르고 목표로 하는 것도 다릅니다. 나는 휘어진 코가 조금 더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여자가 사라졌습니다. 납치라고 하는군요. 녀석은 얼이 나가 버렸습니다. 장기 강탈자들의 납치로 보고 수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기계 부품만을 떼어가는 기계 강탈과는 달리 장기 강탈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그 휘어진 코도 다신 볼 수 없겠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자 화가 났습니다. 받았던 선물을 빼앗긴 기분마저 들더군요.
얼이 나가 있던 녀석도 점점 기운을 차리더니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든 여자를 되찾고야 말겠다고 하는군요. 이 멍충한 녀석이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다니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녀석의 생각에 강하게 동의하고 있는 나에게도 놀라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 휘어진 코를 되찾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도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겠죠.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어떻게든 그 휘어진 코를 찾아야겠습니다. 이제 센서를 원래대로 고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_끝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