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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Jan 06. 2020

수정, 수정, 수정

고, 고객님...?



캐리커처 주문을 받다 보면 유난히 수정 사항이 많은 주문자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방식은 정확히 두 가지다.



1. 다 좋아요. 너무 예쁜데 이것만 수정해 주세요.

2. 제가 원했던 느낌이 아니에요ㅜ 수정해주세요.



첫 번째는 괜찮다. 어쨌든 원하는 방향이 분명하니까 그 방향대로 조금만 수정하면 된다. 오히려 수정을 거친 주문자의 경우 만족도가 높거나 미안해서 구매 후기를 남겨주는 일이 많다(구매 후기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두 번째는 조금 난감하다. 일단 스스로도 방향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나는 사진만을 보면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주문자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느낌, 이미지는 캐치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스노우 보정이 들어간 사진인 경우 그림으로 표현하면 거의 본래의 이미지와는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그래서 보정이 들어간 사진은 가급적 받지 않지만 '사진이 이것뿐이에요...'라고 하면 어쩔 수가 없다. 고군분투할 수밖에).



간혹 소 뒷걸음치듯 그 느낌을 맞추는 경우도 있지만 해도 해도 안 되면 두 손 드는 수밖에 없다. 딱 한 번 있었다. 작업을 다 하고도 결국 마지막에 구매 취소를 해준 경우가. 



주문자가 준 사진 이미지에는 아이돌처럼 보이는 어리고 예쁜 남자애가 웃고 있었다. 맹세코 생전 처음 보는 아이돌이었다. 주문자 중에는 자신이 그려달라 요청하는 이에 대한 정보를 묻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일절 묻지 않는다. 그저 사진을 토대로 나의 룰에 맞게 작업을 할 뿐이다. 



그렇게 작업을 끝내고 마지막 컨펌을 위해 주문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온 대답이 2번이었다. 난감했지만 사진들을 다시 뒤적이며 수정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했다. 속상했다. 그럴 땐 정말 속상하다. 나의 이 부족한 자질을 어찌하단 말인가. 이래서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주문자와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아 결국 환불해드리기로 했을 때 주문자 역시 내게 굉장히 미안해했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그에게 나 역시 죄송하다 말하며 구매 취소 완료 버튼을 눌렀다. 



그 일로 꽤나 속상했지만 사실 그건 내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람의 얼굴은 신기해서 같은 사람이라 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니까. 게다가 애정이 있는 상대는 더 그렇지 않은가. 괜히 콩깍지가 씌었니 어쩌니 하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또다시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는 지극히 실망해서(나 자신에게) 일을 그만두고 미술학원에라도 등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문자 복이 있었는지(사실 복이 좀 있는 편이다) 다시 그런 일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말하고 싶지만 나를 생각해서 아무 말 않고 참고 넘어가 준 주문자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학원비 굳게 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덕분에 여전히 밥 잘 먹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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