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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Jan 04. 2020

캐리커처 작가입니다

제가 하는 일은 말이죠

주문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주문 확인했습니다. 


로 시작하는 문구와 함께 고객과의 본격적인 소통이 시작된다. 나는 마른침을 삼킨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어떤 이에게 보내는 선물일까. 어떤 요청 사항을 말할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렇겠지? 그런 호기심과 불안의 경계에서 예민하게 들어오는 메시지를 확인한다.


내가 주문을 받고 있는 캐리커쳐 작품은 총 네 가지이다. 단순하고 귀여운 캐릭터 캐리커쳐, 가늘고 섬세한 선을 쓰는 만화 일러스트 같은 캐리커쳐, 증명사진이나 프로필 이미지로 쓰기 좋은 캐리커쳐, 커플이 나누어갖거나 친구에게 선물하기 좋은 일러스트 엽서 캐리커쳐. 네 가지로 구분이 되지만 내가 그리는 캐리커쳐의 공통점은 기존의 캐리커쳐와는 조금 다르다.




얼굴의 특징을 과장, 왜곡해서 우스꽝스럽거나 재미있게 표현하는 기존의 캐리커쳐가 아니다. 오히려 스노우 보정이나 포토샵 보정을 넣은 정도의 과장과 왜곡을 담으며 좀 더 일러스트 같은 느낌을 내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서 많이 보는 귀여운 캐릭터로 머리카락이나 옷의 특징만을 담기도 한다. 



아이패드로 작업을 하며 주문자가 원하면 액자형태로 선물포장까지 해서 택배로 보내는 게 내가 하는 일의 전부다. 그럭저럭 2년째 일을 지속하고 있다. 작품은 잘 팔릴 때도 있고 안 팔릴 때도 있으며 그에 대한 생활의 불안은 어쩔 수 없이 나의 몫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인 건 확실하다. 누구에게? 주문자들에게. 이 글은 아마도 나의 캐리커쳐 작가로서의 기록이자 주문자들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가장 많이 감사하다, 기쁘다, 감동이다, 라는 말을 했던 기간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 일이란 건 모르는 것이므로 일단의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 본다. 





에피소드 001_뒤바뀐 작품


영화관에 있을 때였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달큼하고 고소한 팝콘 냄새가 신경을 느슨하게 풀어주는 것 같았다. 단 것에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뻣뻣해진 어깨가 스윽 제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영화 시간을 확인하고 팝콘을 사려고 매점 앞에 줄을 섰다.


빠바바밤!


익숙하지만 동시에 날 긴장시키는 알림음이 울렸다. 이건 캐리커쳐 주문자에게서 오는 메시지 알림음이다. 나는 매점 줄에 선 채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머리카락 끝이 쭈뼛서는 걸 경험했다. 급히 매점 줄에서 이탈했다. 눈을 의심했다. 포장해서 보낸 작품이 다른 주인에게 바뀌어서 간 것이다.


송장 라벨을 정리하면서는 항상 긴장한다. 여러 개의 작품을 한꺼번에 보내야 할 때엔 더욱더 주의한다. 주소의 사소한 부분이 틀리진 않았는지 작품과 주문자 정보가 일치하는지 나는 많게는 5번, 적게는 3번 정도 확인에 확인을 한다. 


그러면서 이런 서늘한 상상을 한다. 혹시 작품이 바뀌어서 주문자가 영 다른 작품을 받고 화를 내는 상상. 등골이 오싹하다. 만약 누군가에게 선물해야 하고 이미 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욱 어찔하다. 내가 직접 배달을 하거나 (당장) 퀵으로 작품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전에 그림을 액자에 끼우고 액자를 포장하고 감사 메시지를 적고 송장을 붙이고 하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변명도 우는 소리도 통하지 않는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심장이 아득하게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다행히 1년간 그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 조금 안심하고 방심했던 걸까. 이런 실수를 하다니!!


뒤바뀐 작품은 며칠 전에 3개의 작품을 함께 보낸 것 중 하나였다. 주문자 정보와 작품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는데 언제 바뀌었던 걸까. 나는 허둥지둥 메시지에 죄송하다는 답을 하고 전화를 걸었다. 혹시 시일이 촉박한 건 아닌지 빨리 보내줘야 한다면 내가 직접 가든 퀵으로 보내든 안내를 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주문자는 느긋한 목소리였다. 급하건 아니니까 택배로 다시 보내주면 된다고 말하고 괜찮다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위로까지 보태주었다. 이 사람은 천사인가, 직접 만나면 날개를 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망상을 하며 거듭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세 개의 택배 중 그럼 또 바뀐 게 있다는 말이다. 그중 한 주문자는 구매후기를 올려주어 작품이 제대로 갔음을 인증했으니 괜찮다. 그럼 나머지 한 주문자의 작품이? 나는 다시 주문자의 정보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7시에서 8시 사이로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공적인 전화를 해도 크게 민망한 시간은 아니었다. 


캐리커쳐 작품이 선물용인 경우 대부분의 주문자들은 포장을 뜯어 속의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과 똑같은 그림을 작게 인쇄해 이름표처럼 포장에 택을 붙여둔다. 나 역시 그 택을 보고 작품이 바뀌지 않게 확인하는 건데 이번엔 그 택 자체가 뒤바뀌어서 붙여진 것이다. 아이고, 맙소사.


두 번째 주문자에게 전화를 걸고 첫 번째와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다행히 두 번째 주문자도 급하지 않으니 택배도 다시 보내달라고만 했다. 나는 겨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주문자가 물었다. 


그럼… 이건… 받은 건 어쩌죠?


난감했다. 택배로 다시 보내달라고 하는 것도 번거롭게 만드는 일이 아닌가. 나는 안 돌려주셔도 된다고 말했고 주문자도 납득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의 나의 실수를 크게 탓하지 않고 다정하게 괜찮다고 해주신 그 두 분은 정말 고맙다. 하물며 그럴 수도 있죠, 괜찮습니다.라고 위로까지 해주셔서. 


나는 뉴스를 통해 세상은 무서운 곳이라고 쇄신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부딪히게 되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세상은 괜찮은 곳이라는 안심을 얻는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결국 두 개의 작품을 다시 작업하고 포장해서 택배로 부치고 이번엔 열 번도 넘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번에도 실수하면 그건 어떻게도 구원받을 수 없다. 끝이다. 그런 심정이었다.


다행히 두 번의 실수는 없었고 그 이후 더욱 철저한 검수를 자처하며 같은 실수를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간혹 엇갈려서 잘못된 주인에게 도착했기에 버려져야 했던 그 작품들이 생각난다. 


나는 고객과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만족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도 실수를 해선 안 되지만 나의 실수로 버려지게 될 그 작품들을 위해서도 실수해선 안 되었다. 그리고 실수는 어찌 됐든 긴장이 풀어졌다는 말이다.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는 신호였다. 그나마 좋은 분들께 실수를 저질러(?) 흉한 일을 겪지 않은 거였다. 다시 한번 죄송함과 감사함을 그분들께 전한다. 



결국 영화는 상영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들어갔다. 가슴이 두근거려 영화에 집중하지도 못했다. 이런 새가슴으로 지금도 어떻게 혼자 일을 꾸려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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