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을 이어가는 소소한 결심
캐리커쳐 주문을 받으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을 말하라면 단연 재주문을 처음 받았던 순간이다. 그때의 벅참은 이후에 있었던 재주문과도 달랐다. 주문자의 이름에 재주문이라는 글씨가 딱 보이는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심쿵이 이런 거구나, 남자 친구도 못 하는 일을 주문자가 해냈다.
처음엔 주문자가 자신과 남자 친구를 함께 그리는 캐리커쳐를 주문했고 그 이후에 결혼할 친구에게 줄 선물로 친구 커플의 캐리커쳐를 주문했다. 신기하게도 유난히 잘 그려졌던 주문자 커플의 그림은 지금도 내가 상품 이미지 첫 화면으로 허락을 얻어 사용하고 있다. 유독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는데(주문자 커플의 익살맞은 표정이나 얼굴 특징이 잘 표현되었다) 주문자의 만족도도 높아서 뿌듯하고 흐뭇하고 내 머리를 스스로 토닥여주고 싶고 그랬다.
하지만 재주문을 받았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긴장도 되었다. 실망시킬까 봐. 먼젓번의 작품이 어쩌다 잘 그려진 작품이다 라는 평가를 받게 될까 봐. 정말 무서웠다.
나는 지금도 그런 평가를 받을까 두려워한다. 아직도 스스로의 실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한편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데서 오는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작품을 부끄럽게 여긴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실력이나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의 실력이 모자라게 느껴졌다. 교육을 받았더라면 그런 생각이 덜 들었을까 싶지만 실제 미대를 나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그저 개인의 성향이나 마음가짐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부담을 이겨내고 주문을 완료했을 때 ‘감사합니다. 작가님. 고생하셨어요. 친구가 너무 좋아할 것 같아요.’라는 메시지를 보며 조금, 아주 조금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조금이라고 한 이유는 정말 어떤 대단한 결심과 결의를 느끼며 한 생각이 아니어서이다.
그저 그 순간이 행복해서 그 짧은 행복에 기대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 결심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순간순간 찾아오는 그런 작은 결심을 통해 일을 지속해 나간다. 대단한 결의 없이 작은 순간에 집중하면서. 2년 넘게 꾸준히 홀로하는 이 일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