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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Mar 22. 2021

오해

오해가 오예가 되었다


처음 지금의 남편인 J를 만난 건 '아트 토이 컬처'라는 행사에서였다.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행사로 그 유명한 '서울 일러스트 페어'와 비슷한 행사다. 그는 창작자로 참여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부터 sns를 통해 그에 대해 알고 있었다. J가 피드에 올리는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럼에도 실제로 그를 만나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인의 소개로 만나게 된 그날까지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그날 그는 무척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어찌어찌 J를 만나고 나서 유독 눈에 들어온 그의 인상 중 하나는 너무나도 말 그대로인 파마머리. 그림으로 그린 동글동글한 머리가 만화적 표현 같지만 아니다. 정말 그런 머리를 가졌다. 나는 으레 그렇듯 자세한 사정은 모른 채 예술가가 자신의 독특한 기질을 드러내는 인위적인 헤어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피곤으로 인해 초췌한 얼굴도 예민한 성격의 예술가의 일면으로 해석이 되었다. 멋대로 말이다.


또한, J의 그 귀엽고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저렇게 까탈스럽고 예민해 보이는 남자의 손에서 만들어지다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첫 만남에서 나는 분명하게 J를 오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친구가 된 J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순하고 털털했다. 조금도 예민하지 않은 데다 자신의 작품만큼 아니, 그보다 더 귀여운 면도 있는 사람이었다. 작은 동물을 좋아하고, 사물에서 항상 어떤 이미지를 포착해 나를 웃게 만들었다.


파마한 머리라고 생각한 그의 머리는 선천적인 곱슬머리라고 했다. 몇 번이나 정말이냐고 물을 정도로 구불거리는 머리라서 그 말 또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선천적인 머리였다니. 어릴 때 곱슬머리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는 말에는 조금 미안해졌다. 오해해서 미안.


처음 만난 날 J는 행상 준비로 인해 며칠이나 밤샘을 한 상태였고, 그날 봤던 모습 중 그가 평소와 다르게 연출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나만 멋대로 그에게 어떤 괴팍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덧 씌워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는 가끔 첫 만남에 대해 얘기한다. J는 너무 피곤했던 것만 기억난다고 하고 나는 파마머리만 기억난다고 말하며 웃는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부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첫인상으로 인한 편견 혹은 오해는 있었지만(순전히 나 혼자만의) 그 때문에 오히려 상대를 조금 다시 보게 되기도 했다. 그 의외의 면에는 호감을 느꼈던 것 같다.


사람이니까, 편견도 오해도 없이 살 순 없다. 다만 그게 벽이 아니라 상대에게 다가가기 위한 다리가 될 수 있다면 나와 같은 행운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자랑 같지만(응, 맞다) J를 만난 건 내 인생에 있을 아주 큰 행운 중 하나가 분명하니까.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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