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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Sep 09. 2021

내가 유산이라니

누구의 잘못도 아닌 불행


올해 2월 임신 사실을 알았고, 3월에 계류유산 판정을 받았다.

임신 5주가 되었을 때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로 작은 아기집을 확인했다. 2주 후에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 다녀온 지 나흘쯤 지나자 소량의 갈색 혈이 속옷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아서 급하게 연차를 쓰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나는 바로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담당 선생님이 안 계셔서 다른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았다. 조그마한 아기집은 그대로였으나 아기집 주변으로 피고임이 보인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착상혈일 수도 있으나 유산이 진행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  유산 방지 주사와 질정을 처방하겠다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 진찰 일이 다가올 때까지 지난하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소량의 갈색 혈은 일주일간 계속 보였고 결국 묽은 붉은색 혈까지 보고 말았다. 그쯤 나는 이미 유산에 대한 많은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섭렵해가고 있었다. 설마,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불안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7주 차 진찰 일이 왔을 때 나는 사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라면 좋겠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 해도 받아들이기로 그렇게 말이다. 남편은 끝까지 괜찮을 거라고 나를 그리고 자신을 위로했지만 나는 그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담당 선생님은 모양이 일그러진 텅 빈 아기집을 확인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기집의 모양이 일그러진 데다가 안에 아기도 난황도 보이지 않는다고 계류유산이 확실하다고. 가능하면 바로 수술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했었지만 당장 수술을 한다는 건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워하는 나와 남편에게 담당 선생님은 수술은 빨리 할수록 산모의 몸에 부담이 덜한다고 말했다.

나와 남편은 낙담이나 안타까움, 슬픔조차도 느낄 경황이 없었다. 나는 바로 자궁수축 주사를 맞고 수술대에 누워야 했고 남편은 그런 나를 걱정하며 기다려야 했으니까. 자궁수축제가 몸에 안 맞았는지 당시 내 몸이 좋지 않았는지 나는 극심한 추위와 미세한 경련을 느끼며 수술대에 누워야 했다. 혈관이 잡히지 않아 간호사가 주삿바늘은 몇 번이나 넣었다 빼고 핏줄이 터져 보라색 멍이 들었다. 눈물이 나는 이유가 심장조차 생기지 못한 아이 때문이었는지 아픈 몸 때문이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정신이 들었을 때 몽롱함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배가 아팠다. 생리통이 심한 편이었는데 그런 통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다시 눈물이 났는데 그건 분명 아픔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잃었기 때문에 이렇게 아픈 것인지. 왜 잃었는데 이렇게 아프기까지 해야 하는지 누가 설명해주었으면 했다.

회사에는 무급휴직 신청을 하고 3주 정도 쉬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몸의 회복은 빨랐다. 따라가지 못하는 건 마음이었다. 남편은 스스로 낙담하지 않으려고 담담하게 내 옆을 지켰다. 전보다 더 자주 안아주곤 했는데 그건 나를 위해서였고 동시에 자신을 위해서였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품을 나눠주는 것 외에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사실 없었다.

유산을 경험하면서 나는 내가 꽤 오만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행은 나를 비켜갈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속단을 하며 불행이 찾아오면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다니 불공평하다는 태도 말이다. 유산은 전체 임산부에 10-20% 정도가 겪는 일로 꽤 많은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조차 나를 비껴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단지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길 리 없어.’라는 얄팍한 단정으로.

사람은 행운에 대해서는 언제든 나를 찾아올 것이라 희망하지만 불행은 언제든 나를 비껴갈 것이라 속단한다. 그래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며 살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 속단에 배신당하게 되면 충격은 배가 되고 벗어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만다. 요즘의 나는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났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흘려보낼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흘려보내야 다시 일상을 찾을 수 있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았다고 해야 할까.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도 그랬다. 초기 유산은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으며 그냥 그렇게 진행되면 어쩔 수가 없다고.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명확한 말이었다. 유산의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데 받아들일 만한 이유는 명확했다. 심장조차 생기지 못한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다행이라고, 나 자신을 책망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조용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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