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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Jun 13. 2021

가끔 내가 주인공 같은 날이 있다

그런 날도 있어야지


아침에 눈을 뜨니 누군가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꼭 밖에 나가. 이런 날 나가지 않으면 정말 손해야, 이렇게.


코로나 19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된 지 1년이 넘었고 결혼 후에는 가족뿐 아니라 친구들과도 사는 곳이 멀어졌다. 하물며 일주일에 한 번 다니던 기타 동호회 모임마저도 5인 이상 모임 금지로 인해 몇 달이나 나가지 못했다. 6개월쯤 되었나?


집에만 있는 것도, 남편 하고만 있는 것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종종 참을 수 없는 갑갑증이 일었다. 그럴 땐 누군가가 내 안에서 외치는 것 같다.


제발 밖으로 나가줘.


인간이란 원래 수렵, 사냥하는 족속이다. 끊임없이 걷고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기록해야(피해야 하는 맹수나 독이 든 과일 등은 그림으로라도 그려서 공유해야 했을 테니까요)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족속의 후예가 시멘트로 만들어진 네모난 공간에 갇혀 블루라이트가 발산되는 똑같은 화면을 바라보며 하루의 반을 보낸다. 그래, 말이 안 되지. 사람이 이상해지지 않고 배기겠는가.


남편은 새벽 4-5시쯤 잠들어 12-13시 사이에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자정쯤 잠들어 아침 7시나 8시쯤 일어난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남편이 스스로 눈을 뜨기를.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아? 그러게.


자연스러운 대화였다. 그도 그럴 게 정말 날씨가 좋았거든. 미세먼지마저도 보통이었다. 맑은 하늘이 온 세상의 채도와 명도를 평소보다 두 단계쯤 높여주었다. 일요일에는 어딜 가든 사람이 많다. 우리 부부는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주로 평일에 나가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 남편이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럴 때는 내가 망설여서는 안 된다.


나가자, 나 너무너무너무 나가고 싶어!


평소에 밖에 나가자고 조르는 사람이 아니다. 남편이 나가자고 하면 오히려 귀찮은데?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침대에 드러누워 책을 펼치는 사람이 나다. 그런데 나가자고 방방 뜨다니. 남편은 못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나가자. 부리나케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전망이 좋은 교외의 카페를 찾았다. 저녁도 그 근처에서 해결하고 올 생각이었다. 돈은 좀 쓰겠지만 마음이 들떴다. 대체 무슨 조화였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면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방향으로 돌발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차로 한 시간 드라이브. 산과 호수가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아이패드로 2시간쯤 작업을 하고 근처에 있는 유명한 장작 구이집에서 오리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초여름처럼 뜨거운 날씨였지만 바람은 쾌적했고 남편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이스. 오늘은 마음속의 외침을 따르길 잘했다.


무엇보다 결혼하기 전 연애할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우리는 만나면 밥을 먹고 카페에서 두어 시간쯤 각자 할 일을 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갔다. 결혼하고서, 아니 한집에 살게 되면서 더는 그런 시간이 없었다. 비록 밤에 각자 다른 시간에 잠들고 다른 시간에 눈을 뜨긴 하지만 만났다가 헤어지고 하는 일상은 사라졌다. 그게 좋기도, 아쉽기도 한 건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다른 부부들은 어떠신지)?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정말 마음이 무언가를 외치는 날. 네이버 웹툰의 <유미의 세포들>에서는 미래의 유미가 현재의 유미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그 순간을 놓치지 마, 혹은 그러면 안 돼!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 장면이 떠올랐다. 미래의 내가 그 화창한 하루를 현재의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면서. 신기하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중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더니 도착하자마자 뇌우가 번쩍거리고 비가 쏟아졌다. 우리는 그 기막힌 타이밍에 놀라고 말았다.


밖에 있을 때는 다시 보기 힘든 맑은 날씨였는데 집에 오자마자 비가 내리다니. 우리를 위한 날씨의 조화 같았다(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조화였을 수도 있겠네요, 기뻐해서 죄송합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말했다.


완벽한 하루였어!


그래,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우리였던 것처럼.


#소소한행복 #기록 #부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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