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에세이] 현실이 시궁창

#005_나만 창피한 거 아니죠?

by 정유미

대학교 다닐 때(벌써 십몇 년 전이다), 종종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도 아직은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 선선했는데 잠은 쉽사리 깨지 않았다. 몽롱한 정신으로 1교시 수업을 위해 언덕을 올랐다. 무슨 부귀영화를 위해서 내가 1교시 오전 9시 수업에 가려고 이 언덕을 오르고 있는지. 수강신청 때 대체 무슨 정신이었을까. 후회가 물밀듯 밀려오는 만큼 내 몸도 알아서 언덕 위로 밀려 올라가 강의실에 도착하면 좋을 텐데.



강의실에 도착해 한숨 돌리며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았다. 한 잔에 250원짜리 다디단 커피를 뽑아 자리에 앉으니 몸이 노곤해진다. 아, 안돼. 몸이 노곤해지는 만큼 정신이 혼미해지려 했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가방에서 책과 노트를 꺼내는데, 맙소사!



오늘까지 내야 하는 과제를 깜빡했다. 강의실엔 어째선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올라오는 도중에도 사람이 없었다. 응? 혹시 오늘 쉬는 날인데 나 혼자 학교 온 건가? 그럴듯한데, 하면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걱정에 잠겨 든다. 아, 맙소사. 과제를 안 가져왔어. 아니, 과제… 를 했던가? 무슨 과제였지? 이상했다. 다시금 정신이 혼곤하게 잠겨 드는데 마치 배수구를 빠져나가는 물에 휩쓸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 몸이 벼랑 아래로 뚝 떨어지는 아찔한 감각이 찾아왔다.



“뜨악!”

파드득!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억눌린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수군거리는 소리. 흐린 시야의 초점이 점차 돌아오면서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가 퍼뜩 떠올랐다.



“학생. 괜찮은가?”

“…아, 예. 죄송합니다.”

“그래. 이제 그만 자고 수업 들을 텐가?”

“… 예. 죄송합니다.”



꿈이었다. 꿈에서 깼는데, 수업 중이었다. 졸다가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다니. 나란 아이의 수치 플레이 스케일이란 어디까지인지 싶어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과제가 없어져서 당황했던 꿈보다야 낫구나, 싶기도 하고. 겨우 꿈을 털어버리고 수업에 집중하려 하니 교수님이 칠판을 지우며 말씀하셨다.



“… 자, 이제 쪽지 시험 보겠습니다. 책 덮으세요.”

“…….”



항상 현실이 시궁창이다.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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