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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May 14. 2019

아플수록 그냥 두어야 한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_커피 한 잔, 힘들 땐 부드러운 우유 퐁퐁




시간은 생성되는 만물로 이루어진 강, 아니 급류이다. 무엇이든 눈에 띄자마자 휩쓸려가고, 다른 것이 떠내려오면 그것도 곧 휩쓸려 갈 것이다.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서른몇 평생 처음으로 다래끼가 났다. 다래끼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경험해본 적은 없었기에 전조가 있었음에도 상상조차 못 했다.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왔다, 다래끼가.



통증은 갑작스러우면서도 살짝 무시할 수 있을 것도, 아닐 것도 같을 정도로 뭉근했다. 왼쪽 눈밑과 그 아래 광대를 걸친 부분이 묵직하게 아팠다. 손으로 누르면 더욱 아팠고 가만히 있어도 살살 아팠다. 나는 오래전 앓았던 안면마비를 떠올렸다. 그때는 왼쪽 얼굴 한 면이 통째로 껍질을 뒤집어쓴 듯 무감 감해졌다. 감각 자체는 다르지만 신경을 거스르는 감각을 안겨준다는 점이 비슷했다. 안면마비의 또 다른 전조인가, 덜컥 겁이 났다.



잠들기 전 눈밑과 광대를 계속 만지면서 마사지를 했다. 혹시 안면마비라면 그렇게 풀어지지 않을까, 하는 간절하고 속절없는 바람을 담아서. 꾹꾹.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솥뚜껑을 보고 자라인 줄 알고 놀란 이유는 아마 자라라는 녀석이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손가락도 잘라버릴 수 있을 정도의 턱 힘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 정도쯤 되니까, 솥뚜껑만 봐도 깜짝 놀랄 정도가 되는 거겠지. 나에겐 안면마비가 그랬다. 손가락이 잘려 불구가 되는 것만큼 무서웠다. 고통도 비하지 못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밤새 그렇게 손으로 눈두덩이를 문지르고 문질렀다.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눈밑이 더욱 묵직해지는 게 영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렇게 불안에 떨며 잠이 들었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전날보다 눈밑이 묵직한 느낌은 더 강렬해졌다. 벌떡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엄청난 안도와 다른 종류의 실망감이 교차했다. 안면마비는 아니었다. 그런데 다래끼였다. 눈 밑의 얇은 피부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한 번도 다래끼를 앓아본 적은 없지만 보는 순간 알았다. 다래끼구나. 이것이 다래끼구나. 다래끼였는데 그렇게 밤새 손으로 문지르고 또 문질러 댔던 거구나. 이런 바보가 있나! 다래끼가 난 경우 손으로 만지면 안 된다는 주의를 받는다. 이미 세균 감염으로 염증이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2차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다래끼로 인해 의사를 찾든 약사를 찾든 그들은 모두 절대 간지럽거나 아프다고 해서 손으로 만져선 안된다고 주의를 준다. 그것은 경고에도 가깝다.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좋지 않은 결과를 예견하면서.



안면마비인 줄 지레 겁먹고 밤새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했던 나를 탓했다. 무지함을 탓하고 잊을만하면 어디든 사소하든 아니든 아픈 데가 생기는 이 몸을 탓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다 어느 순간은 다래끼 하나 난 거 가지고 참으로 가지가지 수선이구나, 하면서 그 예민한 유난스러움을 탓했다. 그렇게까지 탓을 하고 보니 더는 탓할 게 없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그날 밤, 다시 아픈 눈두덩이를 무의식적으로 만지려다 말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 손을 꾸욱 눌러 잡았다. 아픔을 자꾸 만진다고 해서 그것이 덜해지는 게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픔은 그냥 두어야 오히려 빨리 낫는다. 아니, 더 잘 낫는다. 탈없이 단단히 아물 수가 있다. 딱지가 앉은자리를 가렵다고 해서 보기 싫다고 해서 뜯어내면 다시 피가 나고 오히려 흉이 지고 마는 것처럼. 그저 스스로 새살이 돋아나게 두어야 하는 것이다. 간지럽고 또는 고통스러운 그 다래끼를 생전 처음 겪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모든 아픔들은 그냥 두어야 잘 아무는 구나. 아니, 그냥 두어도 아무는 구나. 설사 아물지 않는 것 같다 하여도 결국은 나도 모르는 사이 아물고 마는구나.



아픔 때문에 아파야 하는 순간들도 다 지나가는구나. 그렇게 지나가는 순간을 놓아주어야만 결국 내가 살아가는 거구나, 하고.



살아가려면 손을 놓아야 한다. 만지려고 하지 말고 그냥 놓아야 한다. 별것 아닌 다래끼여서 다행이었다. 안면마비였으면 절대 이런 생각 하지 못했겠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니, 또 이 삶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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