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미 Jul 09. 2019

문득 그 아침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_커피 한 잔, 아침을 깨우는 핸드드립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문득 아,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살갗이 끈적하게 젖고 두피 속에서 홧홧한 열기가 느껴지는 그런 아침. 지난 토요일쯤이 그런 아침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생각했다. 여름이 시작되었구나. 그런데 웬걸, 보란 듯이 오늘 아침은 선선하다. 서늘하게 바스락거리며 살갗에 닿는 바람이 불었다. 나는 그 바람이 좋아서 한참이나 일어나지 않은 채 천장을 보았다. 그렇게 천장을 보며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그 어떤 많은 생각을 한 것도 같았다. 그러다 불쑥 괴롭다, 고 느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사람을 좋아하고, 잘 어울리고, 또 그들에게 의지하고 싶어 한다. 관계 속에서 내가 가장 괴로울 때는 상대는 나를 의지하는데, 정작 나는 그렇게 하지 못 할 때다. 상대가 좋음에도 아니 그 좋음 때문에 내가 단단하게 의지되고 싶어서. 만약 그렇지 못하면 나의 쓸모가 사라져 버릴까 봐. 누군가에게 무용한 인간이 된다는 것, 나는 그것이 가장 괴롭다.




그래서 항상 강하고 단단하고 밝고 사려 깊고 주도적인 나를 연기한다. 상대의 눈밖으로 벗어나기만 하면 나약하기 그지없으면서 그 모든 것을 감추고 관계 속에서 나를 채찍질한다. 약한 소리 하지 마. 징징대지 마. 그러면 널 싫어할 거야. 널 싫어하게 되면 그걸 견딜 수 있겠어? 넌 그 사람이 좋잖아. 그러니까 잘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그 안에서 어떤 만족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이런 아침, 매우 쾌적하고 아무런 불편이 느껴지지 않아서 오히려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아침에 문득 괴로워진다. 아무 데도 아픈 데가 없는데 아픈 것 같은. 그럴 때에 조금만 자신에게 침잠하다 보면 알게 된다. 마음이 아프다는 걸.




그렇게 아픈 아침이었다. 날씨는 쾌청하게 좋은데, 바람은 가을의 낙엽처럼 예쁘게 바스락거리는데 어쩐지 숨도 못 쉬게 괴로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런 아침.




덧, 내가 나 자신에게 무용할 일은 없으니 스스로에게 조금 더 집중하면 좋을 텐데. 사람 속에서 살아가는 슬픈 동물인지라 그게 참 어렵다.



2019/07/09 AM 09:01










매거진의 이전글 아플수록 그냥 두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