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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Aug 22. 2019

설탕 꽈배기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_커피 한 잔, 디저트엔 아메리카노



어릴 때 부모님은 맞벌이였다. 우리 가족의 아침은 구성원이 동시에 출근과 등교를 하면서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울컥 뱉어내듯이 집이 우리를 동시에 뱉어냈다. 그래서 반항할 생각을 못했다. 정신없이 바쁜 아침이었고,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아침에 필요한 것은 전날 저녁에 모두 챙겨두어야 했다. 나는 꼬박꼬박 다음날을 위한 새로운 가방을 꾸렸지만 동생은 옆에서 함께 가방을 꾸릴 때도, 그냥 그대로 아침을 맞기도 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엄마한테도 한 대 맞았다.



젊은 아빠, 엄마와 어린 나와 동생은 바쁘고 정신없는 한 시절을 함께 보냈다. 가끔 그때가 생각나는데, 간혹 한없이 한가롭고 혼자일 때 그렇다. 그 작은 집에서 그렇게 매일을 전쟁처럼 살았다는 게 꼭 전생처럼 느껴지는 그런 때. 그리고 모든 맞벌이 엄마들이 그렇듯이 나의 엄마도 남모를 죄책감을 가졌던 모양이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한다는 그런 죄책감. 그 시절 아빠들은 모르는 척하는 쌍방과실을 엄마들이 홀로 짊어지는 왜곡된 앙금들.



엄마에게 그 앙금을 덜 수 있는 최소한의 처방이 요리였다. 어릴 때는 밥반찬을 사 먹는 집이 별로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패스트푸드나 다양한 종류의 과자, 간식들이 쏟아져 나올 때였다. 학교 옆에 줄 지어 붙어있는 작은 문방구 앞에는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유혹적인 간식을 팔았다. 지금은 불량식품이라고 폄하하지만 당시엔 그만한 먹거리가 없었다. 10대 초중반 아이들에게 문구점 앞은 20, 30대가 먹자골목을 앞에 두었을 때의 감상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참을 수 없는 유혹도 뿌리치는 게 엄마의 간식이었다. 사실 객관적으로는 사 먹는 게 더 맛있었을지 모른다. 지금 와서는 기억 속에서 화려하게 포토샵 효과를 넣은 것처럼 먹음직스럽게 빛나던 엄마표 간식들이 과연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이었을까, 싶지만 굳이 확인해볼 생각은 없다.



이미 오랜 가사활동에 지친 엄마는 더는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본인이 싫다는데 한 번만 해줘, 하고 간청할 정도도 아니다. 이미 맛있는 먹거리는 많으니까. 엄마표 간식에서 내가 원하는 건 단순히 미각을 깨울만한 미식이 아니다. 추억이다. 사실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원하는 건 뭐든 먹고 마실 수 있다. 물론 그만한 돈이 넉넉하게 있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가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밀가루 꽈배기를 보면 불쑥 생각이 난다. 엄마의 수제간식이. 기억하는 예전 어느 때는 3개에 천 원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하나에 500원에 팔기도 하고, 간혹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먹자골목 같은 경우엔 하나에 천 원에도 파는 걸 보았다.



밀가루에 이스트를 섞은 반죽을 적당량 떼어 숙성하고 길쭉하게 늘인다. 고양이의 꼬리처럼 길쭉한 반죽의 양끝을 잡고 갈래 머리처럼 땋아 내려주면 얼추 꽈배기 모양이 나오는데 어릴 때 엄마와 함께 반죽을 만들 때면 항상 꼬아놓은 꽈배기가 풀려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백종원 대표가 음식점 자영업자들에게 장사 설루션을 제공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인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그 꽈배기가 나왔었다. 풀리지 않는 꽈배기를 만드는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정말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튀기는 과정에서 그냥 끝이 붙는다고 생각했는데).



놀라는 동시에 조금 반가웠다. 게다가 꽈배기 전문점이라니, 꽈배기라는 말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구수한 맛이 있다. 이름부터가 도저히 세련된 간식의 그 어떤 느낌이 아니다. 옛날 간식들에는 신기하게도 그런 이름들이 붙는다. 꽈배기, 쫀드기(혹은 쫀디기), 눈깔사탕, 뽑기 등등. 그리고 다시금 이 신기한 옛날 간식들을 찾아 입에 물면 특유의 감칠맛과 설탕이 들어갔음을 호소하는 당찬 단맛이 추억으로 바뀌어 감성을 자극한다.



아, 그러니까 그 꽈배기 전문점 얘기로 돌아가서 꽈배기 전문점 사장님은 손이 느려서 하루에 만들 꽈배기의 양이 너무 적다는 게 문제였는데 방송을 지켜본 바 정말 손이 느리긴 했다. 내가 해도 저 정도는 아니겠다, 그런 자신감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시도해봤던 거다. 쓸데없이.



나의 제안에 엄마는 흔쾌히 응했다. 일단 거기부터 예상을 빗나갔다. 거절할 줄 알았는데 그래서 부담 없이 해볼까? 했던 건데. 그렇게 쉽게 해 보자, 할 줄이야. 나는 아직도 엄마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사람을 안다는 건 이렇게나 어렵다.



그래도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반죽은 순조로웠고 엄마와 나는 오랜만에 즐거웠다. 왜냐하면 반죽으로 꽈배기 모양을 만들어가면서 나는 열몇 살이 엄마는 서른몇 살의 그 어느 때에 와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래서 아이들과 반죽 놀이 같은 걸 하는 걸까, 나중에 조카랑도 해봐야지, 하는 근미래 설계도 하면서 꽈배기 반죽을 다 하고 나니 엄마와 나는 조금 난감해졌다.



이제 기름에 튀겨야 하는데,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정석대로 냄비에 기름을 부어 튀기느냐, 에어 프라이기를 쓰느냐. 에어 프라이기를 쓰면 기름이 없어도 간편하게 튀김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기름에 튀기는 건 굉장히 번거롭다. 일단 뜨거운 기름이 사람에게 튀기도 하므로 위험하고 다 쓴 후 처리도 번거롭다. 그래서 주방용 기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에어 프라이기를 만든 모양인데, 그럼에도 이게 기름에 튀긴 것의 맛을 따라오진 못한다. 하지만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나의 기질은 대물림받은 것이라 우린 에어 프라이기를 쓰는 걸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실패. 게다가 배신감까지. 엄마가 생각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이서 나에게 배신감까지 맛보게 한 것이다. 아니, 그럴 줄 알았으면 노,라고 해주셨어야죠, 어머니.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밀가루는 맛있다. 이건 불변의 진리이므로(세상의 모든 하얀 가루가 끊을 수 없는 중독의 속성을 지닌 것처럼) 당연했다. 하지만 내가 원한 맛이 아니었다. 손으로 누르기만 해도 진득하게 기름이 배어 나오고 그 기름 향과 밀가루의 향이 섞여 입안에서 바삭하게 씹힐 때 진정한 추억 소환이 일어나는데 실패했다. 에어 프라이기에 튀긴 꽈배기는 최화정이 어떤 방송에서 했던 말을 빌리자면 오일리~하진 않은데, 모이스춰~해. 정도였다. 모이스춰~를 원한 게 아니었으므로 실패다.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은 이루었지만 여기서 내가 원한 촉촉은 오일 리 한 촉촉이다. 아, 속상해서 눈가가 촉촉(......).



엄마는 추억을 빙자하며 건강에 좋지도 않은 걸 찾아 먹겠다는 내가 한심했던 모양이지만 조금 측은하기도 했는지 천 원짜리 몇 장을 지갑에서 꺼냈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사 먹고 와. 그러니까 제가 원하는 게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어머니.



사실 추억은 왜곡되고 과장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나도 알고 있다. 정말 기억 속의 그런 맛이었다면 나는 매일 꽈배기를 해달라고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졌겠지. 하지만 가끔씩 부모님이 없는 집을 지키며 동생과 숨바꼭질을 하는 나에게 일종의 보상처럼 주어지던 그 꽈배기 간식을 한 번도 조른 적은 없었다. 맛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해주기 위해서는 엄마가 어떤 희생을 하는지. 시간도 돈도 풍족하지 않을 때는 아무리 사소한 것도 모두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다. 내가 항상 친구들과의 놀이시간을 포기하고 동생과 숨바꼭질을 했던 것도 일종의 희생이었으므로.



게다가 사실은 꽈배기보다는 그걸 만드는 동안 엄마 옆에서 조잘댈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그런 고로 일단 맛은 아니어도 과정은 괜찮았다는 게 위안이 됐달까. 그러니 이번에는 미각까지 충족시켜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엄마가 준 천 원짜리를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재래시장이 가까워서 다행이다, 하는데 불쑥 어떤 깨달음이 스쳤다. 아, 뭐가 문제였는지 알겠다. 음식은 원래 남이 해주는 게 제일 맛있다. 그게 문제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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