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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Sep 03. 2019

한 달의 휴가, 쉬어도 될까요?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_커피 한 잔, 보다는 향이 좋은 홍차로



5년쯤 전에 안면마비가 온 적이 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실제로 왼쪽 얼굴에만 감각이 사라졌는데, 그 감각은 몇 번이나 실감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 묘하게 실망스럽고 또 절망스러운 것이었다. 웃을 때 한쪽만 입꼬리가 들리지 않는 내 얼굴은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사춘기 청소년 같았다. 물을 마시거나 양치할 때 입 안에 머금은 물이 턱 밑으로 줄줄 새어나갈 때의 내 얼굴은 오래 산 노인 같기도 했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때 난 이 병이 영영 고쳐지지 않을까 봐,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고행을 견디는 심정이었다.



그런 고행을 혼자서는 견디기 힘들어 병원을 찾았다. 혹시, 설마, 하는 마음으로 간 병원에서는 안면마비 진단을 받았고, 그 날부터 근 한 달을 매일매일 병원에 다녀야 했다. 한방병원이었기에 매일 얼굴과 손끝, 발끝에 침을 맞았다. 쓰디쓴 한약도 먹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도 변화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분명한 원인을 모르겠다. 그때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하나도 받아들일 수가 않았다.



당시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지도 않았고, 몸이 그다지 허약한 체질도 아니라 몸에 무리가 갈만한 일이 생기는 일도 없었다. 마비가 오기 전날, 조금 춥게 잤던 것? 기억나는 거라면 그것뿐인데. 의사는 그런 건 물어보지 않았다. 설마 풍을 맞았다, 하는 것처럼 찬 데서 자서 입이 돌아간 것은 아닐 테고. 대체 원인이 뭐였을까.



한 달을 부지런히 불안과 싸우며 병원에 다닌 결과, 어느 날 갑자기 정말 갑자기 마비가 풀렸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굴 근육에 힘을 주면 입이 다물어졌다. 눈꺼풀이 알아서 스르르 감겼다. 얼굴 한쪽에만 딱딱한 껍질을 두른 것 같은 그 이상한 감각도 사라졌다. 갑자기 말이다.



그 한 달 동안 정해진 시간에 병원에 다니면서 침을 맞고 약을 먹고, 동시에 밥을 챙겨 먹고,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잤다. 일을 쉬면서 하루 종일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날도 있었고,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 그저 시간을 소비하며 보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인생을, 시간을 낭비한다는 게 이런 건가. 나쁘지 않은데?



치료를 받으면서 의사는 나에게 거의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일도 쉬고 항상 몸과 정신을 이완시킨 채 흐물흐물하게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허가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니, 거부해야 할 이유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밥벌이의 걱정마저도 말이다. 당장의 밥벌이 때문에 안면마비가 치유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후회스러울만한 일도 없을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라고 말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몸이 중요하지.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실천했다. 안면마비라는 병중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정말 휴양 같은 한 달이었다.



가끔, 아주 가끔, 정신이 견딜 수 없이 조각조각날 때, 가슴이 메말라 갈라질 때, 몸이 아파 휘청일 때 안면마비에 걸린 채 보냈던 그 한 달을 떠올린다. 다시 안 걸리나? 이쯤 되면 걸릴 만 한데, 나 스트레스 엄청난데 왜 지금은 괜찮지? 이런 실없는,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후회할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이제 어른이고 누구의 허락 없이 스스로의 삶을 꾸릴 수 있을만한 연차의 사람이면서도 쉬는 것에 대해, 시간을 낭비하고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고자 할 때는 누군가의 허락을 구하고 싶어 한다. 역시 불안하기 때문이겠지. 언젠가 끝날 게 분명한 이 삶 속에서 끝나지 않는 삶을 살 것처럼 아등바등 사는 게 익숙하고 당연해서. 어차피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삶이라면 할 수 없겠다.



당장은 맛있는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며 뜨거운 김을 후 불며 당장의 근심이라도 후, 하고 잠깐이라도 털어내 봐야지. 공중으로 흩어지는 커피의 하얀 김처럼 걱정과 불안도 가볍게 날아가는 오후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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