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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Mar 12. 2019

믹스 커피 한 잔, 취향인데요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_커피 한 잔, 진하게 믹스 두 봉지



처음 믹스커피를 마셔본 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처음 야간 자율학습을 하게 되었을 때, 매점 자판기에서 처음으로 믹스커피를 뽑아 마셨다. 그전까지는 엄마가 허락하지 않았고, 나는 커피보다는 우유에 네스퀵을 타 먹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불만은 없었다.

 


그때도 굳이 믹스커피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프림만으로 만드는 우유를 더 좋아했기에 그걸 먹고 싶었는데 친구들 중 그걸 먹으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약속한 듯 프림 커피라고 적힌 버튼을 눌렀다. 나는 할 수 없이 대세를 따라야 했다.



처음 한 모금을 마셨을 때 입에 감기는 끈적한 단맛과 탁 터지는 쓴 맛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도 커피는 믹스지,라고 은연중에 생각해버리고 마는 건. 아마 그래 서겠지, 첫인상이 무섭다는 게.



나는 사실 낯가림이 있는 편인데 이게 복불복으로 작용한다. 어떤 경우엔 낯가림을 많이, 오래 하고 어떤 경우엔 전혀 낯가림이 없다. 아마 상대에게 받은 첫인상에 좌우되는 모양인데 어떤 인상을 받았을 때는 괜찮고, 아니고 하는지 정확한 방향은 나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종종 처음 이 놀라운 기호식품을 접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어쩐지 커피가 더 감칠맛이 난다. 커피를 더 맛있게 먹으려고 그 순간을 떠올리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간혹 커피믹스를 마시는 나는 싸구려 입맛 취급당하거나, 나이 든 사람 취급을 당한다. 겉으로는 웃어넘기지만 속으로는 조금 속상하다. 그저 기호식품일 뿐이다. 개인적은 서사가 있든, 추억이 있든 결국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그런 기호식품일 뿐인데. 왜 믹스 커피 한 잔을 좋아하는 것에도 싸구려 입맛이다, 아니다. 세련되지 못했다, 아니다. 등을 따지는 걸까.



스타벅스에서 시럽 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여자와 맥심 커피믹스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여자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 기호의 차이다. 그 외에 다른 부정적인 혹은 긍정적인 서사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말하다 보니 역시 나는 쿨한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당연하지, 쿨한 척하며 상처가 나는 내 감정을 혼자 부둥켜안고 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낯가림은 상대가 나의 기호를 얼마나 부드럽게 인정하느냐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저는 믹스커피를 좋아해요,라고 했을 때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이후 나의 태도가 결정되는지도.



믹스커피가 아니라 그 어떤 다른 취향이라도 마찬가지다. 그 취향에 어떤 불필요한 사족을 다는 그 순간 오히려 그 사람의 인상이 결정된다. 상대의 취향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심어진 첫인상이란 건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내가 커피는 역시 믹스커피지,라고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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