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미 Oct 05. 2019

전화해, 기다리고 있어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_커피 한 잔, 말고 이런 날은 왠지 뱅쇼



결혼해서 집을 나간 동생은 가끔 뜬금없이 전화를 한다. 정말 뜬금없이, 게다가 안부를 묻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을 말을 다다다 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퇴근하는 중이었는데, 그냥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고. 그러면서 회사 이야기며, 올케와의 자잘하고 사소한 일상들을 줄줄이 풀어놓았다. 나는 항상 그렇듯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들었다. 간혹 정말 재밌어서 하하하, 크게 웃고 나도 그런 일 있었다며, 나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불쑥 동생이 그랬다. 예전에는 누나가 무서웠다고.



나는 조금 놀랐다. 내 생각에 나는 무서운 누나였던 적이 없었다. 누군가와 다투거나 싸우는 일도 없는 편이고 가족과도 마찬가지였다. 크게 미치도록 좋은 일이 많지 않은 반면 크게 미치도록 싫은 일도 없다 보니 나의 하루는 거의 대부분 무던하다. 그 무던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동생은 나의 어떤 면을 무섭다고 느낀 걸까. 딱히 싫은 소리를 했던 기억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때린 적이라도 있었나, 어릴 적에.



내가 너 때린 적 있니? 하고 묻자, 오히려 동생이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는 반응이었다. 자기가 얌전히 맞았을 리도 없다며. 그건 그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동생이 말했다.



누나는 그랬어. 한번 돌아서면 가차 없는 거 한없이 너그럽게 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서버리는 사람인 거지. 그리고 돌아서면 정말 가차 없으니까. 그런 점이 무서웠어. 어느 선에서 그렇게 가차 없이 돌아설지 모르니까 조심하게 되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놓는 일에도 그렇게 가차 없을까 봐. 그게 항상 불안했어.



뜨끔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진지해져서 당황했던 것도 같다. 잠시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동생이 좀 더 설명할 필요를 느꼈는지 말을 골라가며 천천히 말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내가 누나한테 막 성질부린 적 있었어. 어릴 적에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그때 누나는 내가 하는 말을 다 듣고 뭐라 뭐라 대꾸를 했었는데, 화는 안 내더라고. 그런데 그게 나는 더 화가 나는 거야. 그래서 더 대거리를 했었지. 결국 누나한테 심한 말을 했었어. 욕 비슷한.



기억난다. 동생에게 처음 욕지거리를 들었었다. 어려서 그랬을 것이다. 어휘력이 부족하니까, 더더욱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어 결국 그런 상스러운 말이 나왔으리라. 그렇다고 괘씸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땐 나도 어렸고. 사실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마음 언저리에 걸쳐져 있었다. 개구진 구석은 있어도 순한 동생이었다. 강아지처럼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게 귀찮았지만 동시에 귀여웠다. 그런데 그런 녀석에게 욕지거리를 듣다니. 다시 생각하니 또 괘씸했다.



그랬는데. 그때부터 누나가 딱 입을 다무는 거야. 그러고는 삼일 동안 나랑 단 한마디도 안 했어.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할 때까지 진짜 그대로 평생 남처럼 지낼 것처럼. 나 그때 진짜 무서웠다. 누나가 그대로 나를 벽 바깥으로 밀어낸 느낌이었어. 사과했을 때도 그래, 알았어. 하는 게 끝이었어. 그리고 처음이니까,라고 덧붙이는데 그럼 두 번째는?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 깨달았지. 와, 이 사람한테는 한 번 눈밖에 나면 끝이겠다. 진짜 끝이겠다. 그리고 누나 내가 전화하기 전에는 절대 먼저 전화 안 하는 거 알아?



마지막은 조금 원망이 섞여 있었다. 이야기 끝에 이런 말을 할 줄이야. 한 방 먹었다. 나는 멋쩍게 하하, 웃었다. 동생은 어이구 웃기는. 하면서 따라 웃었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누나 힘들었을 때, 있었잖아. 티 안 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다 티 나거든. 그때도 불안했어. 저러다 큰 일어나는 거 아닌가. 원래 조용한 사람이 한 번 잘 못되면 크게 잘못된다고 그러니까. 저렇게 말 안 하고 있다가 정말 갑자기 가차 없이 ……뭐, 그러는 건 아닌가.



동생이 무슨 말을 삼켰는지 짐작이 되었다. 그랬구나. 알고 있었구나. 나는 애써 쑤욱 심장이 자빠진 것 같은 기분을 삼켰다. 나는 평범하게 살았다. 평범하게 이런저런 고비들을 맞았고 그것을 넘고 더러는 넘어지고 구르고 상처가 나고 아물기를 기다리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추스르고 살아갈 날을 재보고, 그러다 지치고 그럼에도 아침이 되면 또 눈을 뜨고, 간혹 그게 끔찍해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그런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만 그랬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날들을 버티면서 혹은 그렇지 않은 단 하루를 버팀목 삼아 살아간다고 여겼다.



동생은 나의 그런 버티는 나날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남이 기억하는 그 날들을 다시 들으려니 조금 민망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음이 헤실헤실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꽉 조여 뭉쳐져 있던 그 날들의 응어리가 미지근한 물에 담가져 힘을 잃고 풀어지는 것 같았다.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하지만 동생은 그런 내 기분마저 감지하는 것 같았다.



말을 해. 말을. 그래서 내가 전화하잖아, 굳이. 나도 뭐 항상 할 말이 있는 건 아니라고.



응. 그래. 전화할게.



동생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안도였는지, 답답함의 토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대답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그러라고! 전화하라고! 동생은 그렇게 우렁차게 말하곤 조금 더 왜 하는지 알 수 없는 가벼운 이야기들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감정이란 건 절대 공유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내가 네가 아니고 네가 내가 아닌 이상 내가 느끼는 그 감정을 너는 알 수없고, 네가 느끼는 그 감정도 나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입해 네가 느끼는 그것을 예상할 순 있다고. 그래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를 이해한다. 혹은 공감한다고. 나는 항상 내가 느끼는 것만큼만 남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의 속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당연한 게 아닌가.



하지만 동생의 이야기를 들은 후 중요한 건 감정을 얼마나 비슷하게 공유하느냐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어쩔 수가 없다. 중요한 건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였다. 아픔을 나눌 수 없고, 그 슬픔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화해.


그렇게 말해주는 것. 너의 그 마음을 말로 토해낼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그걸 다시 홀로 삼키는 게 아니라 맘껏 게워낼 수 있게 전화하라고 말하는 것. 내가 그 모든 말을 들을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고 말해주는 것. 그보다 더 든든한 말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동생과의 통화 후 무척이나 든든했다. 당분간은 무서울 게 없을 것도 같았다. 물론 나라는 약해빠진 인간은 이 든든함도 금세 잊게 될 테지만. 그래도 또다시 삶이 버거워지는 순간이 왔을 때 그때는 홀로 삼키는 게 아니라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전화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나 자신을 외롭지 않게 만들었다. 아마 누구나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의 전화를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단지 용기가 없어서 전화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정말이지, 어린 시절 들은 욕 한마디로 묵혀있던 괘씸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래, 진짜 용서해줄게. 너는 모르겠지만 나의 진짜 무서운 점은 뒤끝이 아주 길다는 사실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핑계 대지 않을 핑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