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미 Oct 07. 2019

공기도 삶도 헐겁게 쥐어야 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_커피 한 잔, 에 핫초코 한 잔



내 기억으로 처음 여자 친구만으로 이루어진 무리에 속하게 되어서 배운 놀이는 공기놀이였던 것 같다. 온전히 여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일정한 규칙을 따르는 놀이를 공유한 것 말이다. 게다가 그 안에서 이기고, 지는 승패가 꽤나 중요했다. 손놀림이 부드러워 공기를 잘하는 아이는 대개 인기가 많았다. 쉬는 시간에 누군가가 공기를 꺼내기만 하면 어디든 불려 다녀야 했으니까, 인기라면 인기가 아니겠는가.



공기놀이는 엄지손톱만 한 둥근 플라스틱 공 다섯 개를 가지고 하는 게임이다. 공 하나를 던지고 바닥에 있는 다른 공을 집어 올리고 또 던지고. 마치 저글링을 하는 모양새다. 특유의 점수 따는 방법이 있는데('꺾기'이다) 그 점수를 많이 따는 사람이 이긴다. 대개는 개인전이지만 때에 따라 편을 먹고 단체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중간에 공을 놓치거나 바닥에 있는 공을 잡다가 다른 공을 건드리거나 하면 ‘죽는다’. 다음 사람에게 차례를 넘겨야 하는 것이다. 실수 없이 계속해서 점수를 올리는 사람의 독주가 이어지기도 한다. 종종 어른들은 집중력을 키우기 좋은 놀이라고도 말했다. 신기하게도 집중력을 기를 수 있다고 하면 놀이라고 할지라도 어른들은 너그러워진다. 그래, 집중력이 좋아지면 공부도 더 잘하겠지 하면서.



공기놀이를 배웠던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보니까 나는 여자아이들 무리에 속해있었고 공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느꼈던 긴장감만은 선명하다. 잘하고 싶었다. 정말 너무너무 잘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꼭 공 하나를 놓치거나 건드렸다. 그게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공을 놓치는 내가 싫었다. 그래서 항상 더욱 손 안의 공을 꽉 쥐었다. 놓치지 않으려고 공의 둥글면서도 모난 감촉을 붙들고 그것에만 집중했다.



왜 갑자기 공기놀이 타령이냐면, 얼마 전 혼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서 공기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린 둘 다 비슷한 실력이었고 오히려 공을 놓치면 서로를 보며 깔깔거리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둘 다 진지해졌다. 승부욕 때문이라기보단 집중했다는 게 더 가까웠다. 손이 날듯이 움직였다. 리듬을 타는 것도 같았고 손목이 가볍게 춤을 추는 것도 같았다. 술기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막힘없이 공을 던지고 줍고 하다가 깨달았다. 나의 손이 아주 헐겁게 쥐어져 있음을.



헐겁게 쥐어진 손 안에서 작은 공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한번 허공에 던졌던 공은 손으로 들어가고 바닥에서 주웠던 공이 다시 허공으로 던져진다. 같은 공을 고집해서 계속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 헐겁게 쥔 손 안에서 그들이 알아서 자리를 찾아갔고 허공으로 날고 다시 손으로 들어왔다.



그때 알았다. 아,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단단하게 쥐는 게 아니라 헐겁게 풀어 쥐었어야 했던 거구나.



놓치고 싶지 않은 게 있으면 단단히 붙잡으라고 항상 들었다. 그래야 놓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막상 그렇게 틀어쥐고 있으면 오히려 불안했다. 조금만 힘을 빼면 놓칠까 봐. 그게 무서워서 또 더욱 힘을 주고 그러다 보면 손에 쥐가 나고 팔이 저리고 그게 무리가 되어 몸 전체가 아프고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그거 하나 놓치는 게 실패는 아닌데. 그저 또 다음 차례를 기다리면 되는 것을. 계속 하나의 공만을 손에 쥐고 게임을 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구점에 들러 공깃돌을 샀다. 손에 익혀둬야지. 그래서 다음에 또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가지고 가야지. 그리고 또 이겨야지. 헐겁게 쥐는 법을 알았으니, 더 잘할 수 있겠지. 공깃돌을 쥐고 잠시 그런 짓궂은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화해, 기다리고 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