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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Oct 10. 2019

혼자 있고 싶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_커피 한 잔, 그저 한 잔



올해 결혼 4년 차가 된 내 친구 쏭(별명이다)은 1남 1녀를 두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엄마라는 말을 듣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다던 그녀는 이제 엄마라는 말이 조금 지겹다고 한다. 첫 아이가 이제 4살, 둘째가 3살이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끔 쏭네 집에 놀러 가는데(정말 놀러 간다. 애들을 봐주는 게 아니라 애들이 나랑 놀아주는 정도) 갈 때마다 담양의 대나무가 놀랄 정도로 사람다워지는 아이들을 보면 감개무량할 정도다. 애들이란 정말 빨리 크는구나. 좀 있으면 이모, 이모 하면서 따라다니려나. 헤어지기 싫다고 울면 어쩌지, 나도 같이 울 거 같은데. 그런 속없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그냥 쏭이랑 수다도 떨 겸, 애들이랑 술래잡기하며 일주일치 운동도 한꺼번에 할 겸 놀러 갔었다(3살짜리 아이와 술래잡기를 하려면 꽤나 각오가 필요하다). 그리고 곧 추석이 다가오니 그전에 얼굴을 볼 요량이었다. 이제 결혼한 친구들은 전처럼 자유롭지 못하니까. 추석이나 설이 오면 또 간간이 시댁, 친정의 제사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잠수를 타게 되니까 말이다.



그에 비해 나는 명절에서 자유롭다. 아니, 오히려 아웃사이더를 자청한다. 사실 더는 못 버티게 되었다는 말이 정답일 것이다. 혈연을 핑계로 걱정이랍시고 던지는 무례한 질문과 잔소리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명절이 되면 홀로 집을 지키거나, 되도록 집에서 먼 곳으로 떠난다. 혼자 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와 함께.



이번에도 아마 그렇게 되겠지 했다. 게다가 혼자일 거라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쏭은 한숨을 쉬었다. 그게 나를 안쓰럽게 여기는 한숨인가, 생각하는데 쏭이 말했다.



나도 혼자 있고 싶다.

아, 그러냐.

어. 간절하게.



우린 잠시 말이 없었다. 뭐랄까,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는데 나에게 남편과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쏭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밖에서 타인으로 볼 때는 온전하고 무결해 보이는 그 사랑 속에서도 쏭은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이 든다니. 그 마음이 알 것도 같고, 그러면서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복잡했다.



그렇다고 내가 결혼이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그저 행복에 대한 로망이 있을 뿐이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일구고 아이들을 키우는 쏭이 행복해 보이니까(사회적으로 지극히 상식적인 삶이기도 하고) 그 남들이 말하는 상식적인 삶이, 남들 다 거치는 인생의 과정이 간혹 부러운 거지 결혼 자체를 하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이 했던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그 진부한 말이 떠올랐다. 인생사는 참으로 다양한데 그 다양함 속에서도 근시안적인 행불행과 원시안적인 행불행이 또 따로인 모양이다. 아마 이번 추석에 나는 홀로 시간을 보내면서 쏭이 생각날 것 같다. 혈연 또는 혈연이 아닌 사람들로 둘러싸여 웃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되뇔 그녀를.



아니, 어쩌면 쏭의 고뇌는 온전히 4살, 3살인 두 아이 때문일지도. 아이들과 단 30분 술래잡기를 했는데도 문득 격렬하게 혼자 있고 싶어 지는 기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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