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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Oct 13. 2019

내리사랑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_커피 한 잔, 다 함께 한 잔씩



아직 조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6개월쯤 전일까.



결혼한 동생 부부의 아이이고 여자아이라고 해서, 사실 조금 설레었다. 예쁘겠지, 귀엽겠지. 아, 나오기만 해 봐라. 원 없이 예뻐해 줄 테다. 정말 원 없이 물고 빨고 예뻐해야지. 나조차도 이런 마음인데 동생과 올케는 그 마음이 어땠을지. 동생은 벌써부터 아이의 유치원 등하교 스타일까지 정해두고 옷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동생의 취향을 다시 한번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런 공주풍의 엔틱 한 취향이었다니, 놀랐다. 그건 올케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동생이 보여주는 인터넷 쇼핑몰의 옷들을 보며 한없이 고개를 젓는다. 나도 고개를 젓고, 멀리서 엄마도 고개를 젓는데 동생은 꿋꿋하다. 그래 곧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데 저 정도 꿋꿋함은 있어야 이 험한 세상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헤쳐나갈 수 있겠지. 절레절레 저었던 고개를 끄덕끄덕 끄덕였다. 그럼 그렇고 말고.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건가.



하지만 취향을 떠나서 이제 곧 태어날 아이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옷을 입고 있는 모델인 아이가 대략 4,5살은 되어 보였다. 취향이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을 건너뛴 게 문제였다. 시간이 지나면 유행도 변하고 미리 사놓은 옷은 장롱 속의 어둠 속에 묻혀 외로움에 곰팡이나 좀과 친구를 먹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동생은 꿋꿋했다. 새삼 올케가 용케 결혼을 해줬구나, 싶었다. 저런 녀석이지만 잘 부탁해요, 올케. 이러니 내 눈에 올케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있나.



엄마도 그런 동생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곤 한참을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곧 우리에게 핸드폰 화면을 불쑥 내밀었다. 이거 봐, 이거 좋아하겠지? 하면서.



우리는 엄마가 내민 핸드폰 화면을 보기 위해 옹기종기 모였다. 그리고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서로를 보았다. 유치원생은 되어야 타고 놀 수 있을 유아용 미끄럼틀이었다. 순간 미끄럼틀의 구불구불한 곡선을 타고 꺄르르 웃는 조카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전에 겨우 고개를 들고 방긋 웃는 게 먼저였고, 흥건하게 침을 흘리며 뒤집기를 하거나, 뒤뚱거리며 첫걸음을 떼는 게 먼저였다. 아니, 우선 낳기라도 하는 게 가장 먼저다.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웃음을 터뜨렸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유아용 미끄럼틀이라니. 잠시 어이가 없어 웃는데, 동생이 역시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누나, 봤지. 내가 이러니 엄마 아들이지.

어, 그래. 그러네.



정말 이런 식으로 실감할 줄은 나도 몰랐지만. 나와 동생은 서로를 보며 닮은 듯 안 닮은 듯한 얼굴 주름을 만들어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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