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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Oct 22. 2019

무섭지 않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 글

커피 한 잔, 에스프레소도 무섭지 않다?



머리를 잘랐다. 별 거 없는 날이었다. 그냥 아침에 눈을 뜨고 처음 거울을 보며 내 얼굴을 마주한 순간, 아, 머리 잘라야겠다, 하고 생각한 게 전부였다. 머리는 자주 자르는 편이고 몇 년째 귀밑에 겨우 닿는 짧은 머리를 유지해왔기에 사실 그런 상념이나 선택은 내게 흔하고 별 거 아닌 일이었다.



항상 가는 동네 미용실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뭐 하실 거예요? 하는 물음에 머리 자르려고요, 했다. 웃는 낯의 원장님은 오실 줄 알았어요. 암요, 그럴 때가 되었죠, 하고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짧은 머리는 조금만 자라도 덥수룩해 보인다. 짧은 주제에 자라나는 걸 덥수룩함으로 티를 내니 무시하기가 힘들다. 알아보지 못하기도 아마 힘들겠지.



나는 가운을 걸치고 얌전히 안내해주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 의자에 앉는 순간, 불쑥 회색의 가운을 뒤집어쓴 채 목 위만 오롯이 솟아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내 모습을 전신 거울로 확인하는 그 순간, 어떤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 평소처럼 잘라드리면 되죠? 하고 묻는 원장님의 여상한 질문에 반기를 드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말했다.



아뇨! 짧게요! 완전 짧게 잘라주세요!



원장님의 동글동글한 눈이 더 동그래졌다. 사람의 눈이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데 내 눈은 왜 이렇게 확장하다 말았을까. 억울하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원장님은 빤히 나를 보더니 무언가 결심을 한 듯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프로정신을 보여주어 나는 조금 감동하고 말았다.



한 번 해보죠! 원하는 스타일 있으세요?



아니, 그렇게까지 비장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나는 멎쩍어질 뻔했으나 기다렸다는 듯 스마트폰의 검색 화면을 보여주었다. 언젠가 이렇게 머리를 자르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면서 초록창에 검색해보던 여자 짧은 숏컷 머리의 이미지 화면이었다. 갑작스러운 충동이었다고 하지만 역시 나는 오늘을 벼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한 줌의 용기는 없으니 그저 충동으로 원하는 것을 저지르는 그런 날을. 충동이 없다면 겁이 많은 사람은 어떻게 욕망을 이루며 살 수 있었을까. 다행이었다. 충동에 지는 날이 찾아와서.



아무튼 그렇게 내민 스마트폰 화면에는 귓바퀴와 뒷목이 시원하게 드러난 숏커트머리의 여자가 떠올라 있었다. 원장님은 꽤나 면밀하게 화면을 이리저리 살폈다. 친절하게도 화면의 주인공인 숏컷의 여자는 정면, 측면, 뒷모습까지 모리 모양을 꽤나 다각도로 사진 찍어 블로그에 포스팅해 놓았다. 음, 정말 짧네요. 투블럭이군요. 원장님이 나에게 인지 자기 스스로에게 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딱히 대꾸할 말이 없어 얌전히 기다렸다. 가슴이 조금 뛰었다.



곧 커트가 시작되었다. 숭덩숭덩, 사각사각, 위이잉- 드르르륵- 하면서 나의 머리카락들이 내 몸과의 연결고리를 잃은 채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무섭지 않으세요?



투블럭 컷은 위쪽의 머리는 남기고 구레나룻 근처와 뒷목 쪽의 안쪽 머리를 두피와 가깝게 아주 짧게 자른다. 나의 옆머리를 숭덩 3센티 정도만 남기고 자르고 나서 원장님이 그렇게 물었다. 무섭지 않냐고. 내심 손끝으로 겨우 잡을 수 있을 만큼만 남기고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떨어질 때 철렁했기에 살짝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놀랐어요. 원장님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서 덧붙였다.



그런데 괜찮아요.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 나는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물어야 했지만 원장님에게는 충분한 대답이었는지 더 묻지 않고 가위질이 계속되었다. 사각사각 망설임 없는 가위질을 보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머릿속에 떠도는 상념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나는 사실 무서운 게 많은 사람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모든 일이 무서웠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모든 일이 무서웠다. 세상에서 홀로 실패한 자가 되어 떠돌게 될까 봐 무서웠고, 그래서 잠을 설치는 날도 많았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들처럼 볼품없이 버려지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그게 다 어때서. 버려지는 머리카락이 있다면 두피를 뚫고 다시 자라날 머리카락도 있는 법인데. 내가 어느 쪽에 있든 그것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그래, 무서울 게 뭐가 있어. 망설일 건 또 뭐야. 어차피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는데 세상에 선택한다고 그걸로 끝인 일은 또 뭐가 있다고. 겁먹지 말자. 그리고 생각보다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홀로 짧아져가는 머리를 보며 그런 생각들을 했다.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다. 그렇게 나에게 인지 원장님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대답을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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