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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Sep 21. 2022

왜 엄마만 설거지해?

여자인 게 죄인가요




 며느리가 되고 난 후 명절 전날 하는 의식(?)이 있다. 조상님에게 남아선호 사상, 가부장적 문화 같은 것을 만들어내서 남자 여자 나누어 차별했냐며 따지다가 한 가지 다짐을 하며 잠에 든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결혼 이후 명절엔 한 번도 빠짐없이 시댁에 먼저 방문했다. 시부모님은 일하는 며느리를 배려(?)해주시는 덕분에 고생스럽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그저 부엌에서 서성이며 보조를 하고 설거지 몇 번 하면 되었다. 음식 한다고 고생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같이 식사대접받은 남편을 생각하면 여자로 태어난 게 죄인가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얼마 전 추석 때 일이다.

식사를 마치자 아이가 윷놀이를 하자며 팔을 잡아끌었다. 아이의 손을 떼어놓으며 말했다.

"엄마 설거지하고 같이 하자. 아빠랑 먼저 하고 있어."

아이는 '싫어 싫어' 하며 투정 부리듯 소파에 우당탕 드러누웠다.

"왜 엄마만 설거지해?"

6살 아이의 순수한 물음에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답이 없자 아이는 더 크게 외쳤다.


"왜 맨날 엄마만 설거지하냐고!"


 흥미로운 순간이다. 시아버님은 시선을 회피했고, 남편은 고개를 떨군 채 연신 머리만 긁적거리고 있었다.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법도 한데 8년 차의 낭창한 며느리인 나는 크게 웃음이 나온다.

"푸하하~ 엄마도 몰라! 아빠 여기에서 설거지하는 거 한 번도 못 봤다!"

그릇을 정리하시던 시어머님이 장난스럽게 한마디 하신다.

"나는? 할머니는 왜 맨날 설거지해야 해?"

시아버님의 젓가락이 반찬을 집어 드는 속도가 빨라진다.

"할머니는 집주인이잖아!"

아이가 맞받아친다. 겉으론 웃으며 속으로는'잘한다 잘한다! 우리 똘똘이!' 하면서 특급 호응을 날렸다. 아이의 원초적인 질문에 두 남자는 고개를 떨구었고, 두 여자는 통쾌하게 속마음을 털어내 본다.




 우리 부부는 결혼의 시작부터 남녀 구분이 없었다. '남자=경제력, 여자=내조'라는 기존의 선입견을 벗어나고 싶었다. 남편에게 집을 장만해오라고 한 적도, 고가의 가방을 사달라고 한 적도, 돈을 많이 벌어오라고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 남녀 역할이 구분되어있는 시댁 분위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시댁을 다녀오기만 하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다. 연애 시절 자기만 믿으라며 큰소리치던 남편은 시부모님의 다그침에는 우물쭈물 진땀만 빼고 있었다. 시부모님만 만나고 오면 며칠 동안 우울감이 느껴졌다. 남편에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며 고백한 적도 있었다. 어느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고, 나부터 바뀌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더 나은 해결방안이 될 것 같았다.




#여자인 게 죄인가요


 나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을까? 며느리의 의무를 강요받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며느리는 사위와 동일하게 자녀의 배우자이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기대하는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아버님은 시댁 가족 중에서도 언어를 강하게(?) 쓰기로 유명하셨다. "며느리 나와서 밥 차려."라고 한다던지, 호칭을 "야"라고 하는 등 , '나를 무시하시는 건가?' 싶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물론 며느리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고, 가족 모두에게 비슷하게 대하셨다.)  부모 세대의 '남자, 여자의 역할 고정'이 당시 나에게는 '여자라서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차근차근 해부를 해보자.




# 어머니, 아버지 그건 편견이에요


외향적인 성격에 자기표현의 욕구가 강했던 나는 어릴 적 주변으로부터 '여자애가 나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반대로 순한 기질이었던 친오빠는 어른들에게 '남자가 힘이 없다.' '제 구실 못한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남자는 이성적이고 책임감이 강해야 하고, 여자는 고분고분하고 의존적일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이다. 타고난 개인의 기질이 무시당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면서 편견이 상처가 되었다. 그랬던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과거의 상처들이 함께 건드려지며 분노로 느껴지는 건 아닐까.




# 얘들아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야


대한민국 부모세대들이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걸까?

나는 현재 지방의 어느 시장 근처에 자리한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위치 특성상 대부분의 환자들은 60대 이상이다. 이곳에서는 종종 "살림은 어떻게 하고 여기에 나와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남편과 반반 나누어서 하죠."라고 설명하지만, 관념의 차이를 말 한마디로 이해시키기엔 부족한 듯하다. 그분들이 모두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할까? 전혀 아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실까? 그 세대가 나고 자란 시대적인 배경을 생각해보았다.

1990년대 이전 사회적 배경을 보면 당시엔 가족의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였을 것이다. 의식주 해결을 위해서 가족이 하나가 되어 맡은 역할에 책임이 부여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 인간의 개성과 고유성을 살피기보다는 인간을 단순화시켜 분류시킴으로써 더 생산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성별 또는 태어난 순서의 기준으로 임무가 결정되면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해야 할 몫이 정해진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바로 우리 가족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인식되었을 수도 있겠다. 부모세대에겐 책임감이 곧 가족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면 행복한지에 대해 찾아보는 경험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그러한 관념으로 삶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분들의 헌신에 감사함을 표한다. 하지만 현재는 다르다. 앞으로 우리와 자손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변화된 세상에 맞추어 '잘'사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이다.




# 그래서, 시부모님 변하셨나요?


 부모님이 변하기 전에 나의 관점이 변했다. 은근한 며느리 역할 강요가 사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을 하자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가늠이 되었다. 단순히 피해자라고 생각할 때는 불편함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부모님들의 진심을 보려고 하자 나의 태도가 달라졌다. 갈등 상황에서 불평불만을 하기 이전에 부모님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기 위해 살펴보게 되었다. 부모 세대를 이해해보려 한 노력이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감정이 들 때도 있고, 답답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감정이 들 때는 내가 왜 그것이 불편한지 생각해보면서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8년 차인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제일 많이 달라진 건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와 반응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저희가 잘 살길 원하시는 거죠. 그 마음 알아요. 하지만 저희는 이렇게 생각해요."

즉, '가족을 위해 애쓰시는 거 다 알아요. 하지만 그 방법은 우리에게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표현법이다. 방법은 불편하지만, 부모님의 의도가 감사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어른들 말씀에 고분고분하게 따라주길 바랬을 시부모님의 입장에선 며느리의 그런 반응이 달가울 리 없었다. 지금은 시부모님이 변화하기보다는 이런 며느리에게 적응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제는 의무를 강요당하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그 마음이 통했을까, 명절 당일 시어머님이 아들(나의 남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아들, 식구들 커피 한잔씩 타봐."


쭈뼛대며 부엌으로 향하는 남편을 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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