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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Oct 11. 2022

이제 '그만' 하고 싶어요

번아웃 증후군

# 나 좀 내버려 둬


브르르르르


오전 여섯 시, 고요한 적막을 깨고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침대 끝에서 정직한 자세로 잠든 몸을 뒤척거리며 알람을 끈다. 감각이 민감한 아이가 진동소리에 뒤척거린다. 암막커튼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에 시선을 둔다. 은은한 새벽 불빛이 잠을 깨는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5-10분 정도가 지나면 스르륵 몸을 일으켜본다. 방문을 닫는 순간까지 감각을 예리하게 세운다. 문을 닫자마자 '휴~ ' 큰 숨을 내쉰다. 출근 준비 후 아이가 깨기 전까지 1시간 남짓 남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틈틈이 읽던 책을 꺼낸다.


다다다 다다- 끼익-


작은 몸집의 거인이 안방 문을 열고 나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들이다.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보고자 일찍 일어났는데 우리 아들마저 1시간 일찍 기상하다니 헛웃음이 나온다. 혼자만의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난다.




# 익숙하지만 불편하다


 얼마 전부터 일상생활에 실수가 잦다. 평소라면 일이 바쁠 때는 되려 몰입이 잘되었다. 시험 전날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암기가 잘 되는 것처럼 순간적인 집중력이 상승한다. 하지만 요즘은 달랐다. 마냥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 조금만 쉬고 싶다.'


 아무도 없는 집의 소파와 침대가 그립다. 일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의 한 번이라도 반나절만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그럴수록 할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고, 짜증이 났다. 내가 좋아서 목표로 한 것들 조차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종종 겪었던 일이라 익숙한 감각이다. 번아웃(Burn out) 증후군의 초기 증상이다. 이대로 버티면 일의 효율이 떨어지고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또한 신경이 과민해지고 정서조절의 어려움을 겪는다. 더불어 지독한 자기 검열의 늪에 빠지게 된다. 더 나아가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자주 느끼고, 의욕이 떨어져 무기력해진다.

그러니 일찍 알아차리고 잘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

 



# 어떻게 해볼까 


 네이버에서 번아웃 증후군 극복 방법을 검색해보았다. 운동과 건강한 식단, 숙면,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법이겠지만, 이런 '정답' 같은 이야기 말고 자신만의 방법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오늘은 내가 했던 방법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1. 자극을 줄인다 

 한마디로 '쉽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줄여본다. 스마트폰, 술, 자극적인 음식 같은 것들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여보았다. 출퇴근길에 유튜브를 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습관을 멈춰보았다. 귀에서 이어폰을 빼는 것이다. 그러면 주변에 시선이 간다. 버스와 승용차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되고, 높게 트인 가을 하늘을 만끽해볼 수도 있다. 버스 안에서와는 차이나는 아파트 단지 내 산책길에서의 시원한 공기를 즐겨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지인들과의 약속을 최소화했다.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보다는 개인적인 생활에 집중했다. 사회성 스위치를 꺼놓음으로써 에너지를 비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경험상 즉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활동만으로 일상을 채우다 보면 불만이 많아졌다. 더 빨리, 더 많은 욕구를 채우는 것에 익숙해졌다. 보이는 것에 민감해지고,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서히 채워질 때 이루어졌다. 독서, 운동, 건강한 음식, 실천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활동들이 재밌게 느껴지려면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활동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2. 반복하는 일상 패턴에 소소한 변화를 준다.

  버스를 하차할 때 목적지보다 두 정거장 전에 내려보았다. 10-15분 정도의 산책시간이 생긴다. 걷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낀다. 심박수가 빨라지면서 거칠어지는 호흡에 집중해본다.

'아 맞아, 나 살아있지.'

살아있음 앞에서는 어떤 고민도 작아진다. 이 숨이 멈추지 않았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기분이 든다. 늘 그런 마음이면 좋겠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 한번 더 느껴보곤 한다.

 늘 먹던 메뉴가 아닌 새로운 음식을 접해본다. 음식은 중요한 에너지 수단이다.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본다는 것은 에너지가 충만하고 여유로울 때나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가뜩이나 무기력한 번아웃 증후군 때 왜 이런 선택을 해보았을까? 그건 내가 '새로운 걸 해봐야지'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이런 시도가 충분히 유의미하다는 믿음이 있다.

 일상생활 동안 나의 뇌는 정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지. 그럼 저럴 땐 어떻게 하지?' 종일 정답을 찾아 헤매느라 지쳤다. 그럴 때는 당연하게 해온 습관들에 균열을 만드는 연습을 해본다. 결과가 후회스럽더라도 경험이 된다. 스스로 만든 틀에 갇히지 않도록 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3. 중요한 것과 더 중요한 것 리스트

 우선순위를 작성한다. 번아웃 증후군이 올 때는 판단력이 흐려지곤 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중요하게 느껴져서 정작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열심히 산다고 느껴지지만, 효율성이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야 말로 우선순위를 작성하기에 정말 좋은 시기이다. '그릿(GRIT)'의 저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세 가지 수준의 목표를 세우라고 제안한다. 삶을 통틀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최상위 목표로 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중간 목표로 적어보자. 그리고 중간 목표를 위해 실천할 것을 하위 목표로 세워보자.  

상위 목표일수록 그 자체가 목적이고, 하위 목표일수록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된다.('그릿 GRIT' 인용)

예를 들어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기상하는 것은 하위 목표이다. 일찍 일어난 이유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중간 목표가 있다. 왜 그런 시간을 가지는가? 일상을 재정비하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주도해 나가고자 하는 상위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연결하다 보면 내가 하고자 하는 하위 목표들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 정말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해야 하는 것 이전에 하지 말아야 할 것 리스트가 생기게 된다.





4. 나와 대화하기

이때야 말로 나와 친해질 기회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뭘 원하니?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너한테 뭘 해줄 수 있겠니?'


 몸이 쉬고 싶은 건지, 정신적으로 버거운 건지, 둘 다 인지 알 수 있으면 더 좋다. 하지만 처음에는 알기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산책하기, 혼자 있는 시간 갖기, 위로가 되는 음식 먹기, 작은 목표 세워서 하나씩 이루기, 늦잠 자기, 정리하기, 여행하기 등이 있었다.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양해를 구하고서라도 자신을 돌봐주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나에게 도움을 줄 만한 기회가 필요하다.

 번아웃 증후군 기간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빠르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무기력해질 때마다 스스로를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상황도 꿋꿋이 버텨내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약한 존재니까 이것보다 더한 것은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지금은 나약한 것이 아니라 똑똑한 것이라 생각한다. 번아웃 증후군의 증상을 맨탈이 약한 것이 아닌 '균형을 맞추라는 신호'라고 인식한다. '중요한 것보다 급한 것에 치중되고 있어. 얼른 알아차려! '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것을 미리 알아채니 얼마나 똑똑한 인간인가.


 변화는 불편하지만 개선점을 알려준다. 똑똑한 몸이 알아채는 신호를 간과하지 말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잘 다루어보자.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충만한 삶을 누릴 나와 우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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