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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Oct 20. 2022

육아의 본질

 # 표정이 왜 저래?


 아이가 세 살 되던 해부터이다. 유튜브에 채널을 만들어 영상을 업로드했다. 편집할 때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다. 당시엔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주로 육아와 관련된 콘텐츠를 많이 찍었다. 그 영상을 볼 때마다 항상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이와 있는 함께 있을 때 나의 모습이다. 웃고 있지만 매우 지쳐 보인다. 아이가 매일 보는 엄마의 표정이 저렇다고 상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표정이 왜 저렇지? '


 나에게 육아는 어렵다. 품이 넓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항상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길 기대하면서 책과 영상을 찾아본다. 노력하고 있음을 위안삼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냈다.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하면서 우연히 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육아할 때 많이 지치는 거 같아. 아이가 어릴 때는 목소리톤을 억지로 올리고 연기했었거든. 지금은 내가 봐도 힘이 없어 보여."


친구는 뜻밖의 을 했다.


"그게 너라면, 너만의 육아법 있지 않을까?"

"나만의 육아?"

"응. 기본적으로 아이한테 꼭 해줘야 되는 부분은 챙기고, 나머지는 너만의 방법이 있을 것 같아."


 나만의 육아법이라, 신박한 개념이다. 그동안 부모로서 더 잘하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정보를 찾아다녔다. 가능하다면 더 좋은 비법을 따르고 싶었다. 더 나아지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지금 잘하고 있는 것보다 부족한 점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 있는 시간이 마냥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 이럴 땐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대화를 할 때도, 아이의 요구에 반응할 때도 생각이 많았다. 고민이 많아질수록 마음이 지쳤다. 때로는 아이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영혼이 허공을 떠돌았다. 6살 귀염둥이의 깔깔 거리는 웃음과 초롱초롱한 눈빛을 마주하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심지어 오늘 할 일 (To do list)에 '눈 마주치기, 꽉 안아주기, 스킨십'을 기록하기도 했다. 의식적으로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 마치 숙제처럼.

 육아가 버거운 이유를 과거에서 찾아다녔다. 나의 부모님과의 애착관계가 안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상처 치유에 관해서 많은 부분을 인지한 지금도 비슷한 패턴으로 아이를 대하고 있다는 것이 의문스러웠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 상처를 어루만져야 아이와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


오랜 고민에 힌트를 얻은 기분이다. 그동안 했던 시도도 훌륭한 노력이었지만 방법론에 치우쳐 본질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진 않았을까.  

'본질적인 육아만 지킨다면 나머지는 나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다고? 정말?'

상상만 해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 육아의 본질은 무엇일까


 여느 때처럼 퇴근길 버스에서 유튜브를 켰다. 메인 화면에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님의 세바시 강연 영상이 보였다.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였다.

'본질 육아 라니, 내가 찾던 주제였는데..'


끌어당김의 법칙일까. 유튜브 알고리즘은 가끔 놀랄 만큼 정교하게 관심사를 찾아준다. 영상을 재생시킨 후 이어폰을 양쪽 귀에 꽂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줏빛 가을 노을이 수고한 하루에 위로를 건넨다. 귓가엔 지나영 교수님의 에너지 있는 목소리가 꽂힌다.


"자식은 잘 키우려고 낳는 게 아니에요. "

'???'

"사랑하려고 낳는 거예요."

"아!!"


 육성으로 탄성이 나왔다. 연신 '와.. 맞네 맞아' 하며 허탈한 웃음이 났다. 며칠 동안 머릿속에 품고 있던 그것이다. 그저 아이를 사랑하면 되는 거였는데 잘 키우기 위해서 애썼다. '좀 더', '잘'이라는 요구에 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육아를 공부했는지 자문해보았다. 결국엔 아이가 좀 더 자존감 있게, 스스로에게 만족하면서 살길 원했었다. 그것 또한 아이가 아닌 내가 부족하다고 여겼던 부분 아니던가.

'그저 사랑하면 채워질 것을 방법을 찾느라 육아를 즐기지 못했구나.'


육아 관련 정보를 얻어서 개선시킬 점을 공부하는 것은 훌륭한 자세이다. 그런 태도를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행동 여부를 떠나서 내가 육아를 부담스럽게 느낀다면 과연 우리 가족이 행복할까? 엄마가 본인과 함께 있는 시간을 불편해한다고 느낀 아이는 무의식에 어떤 것들로 채워질까?




# 역시 나는 운이 좋다


"고마워. 네 덕분에 좋은 영감을 얻었어."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진심이었다. 이런 친구가 있는 내가 얼마나 행운아 인가.


"내가 준 것 같지만, 네가 가지고 있는 거였어. 내가 한 말에 느끼고 얻어가는 건 네가 한 일이야."


이 친구.. 멋있다. 하나 같이 맞는 말이야. "넌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말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너의 방법대로 대로 해.'라는 메시지에는 응원과 지지가 가득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홀씨가 되어 날아와 나에게 뿌리내렸다. 민들레처럼 활짝 꽃을 피웠다. 홀씨를 건넨 친구의 진심에 감사하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꽃을 피울 양질의 땅을 만들어낸 나도 기특하다.


잠들기 전 아이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다가 불현듯 노래가 떠올라 흥얼거렸다.

"당신은 ~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OO ~ "

말없이 조용히 눈만 껌뻑이던 아이가 품에 파고들면서 속삭인다.

"엄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역시 나는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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