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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Nov 02. 2022

나에게 친절해야 하는 이유

착한 아이 증후군

# 너는 좋은 사람이야


 학창 시절 친구들은 나를 '재밌고 착한 친구'라고 말해주었다. 당시에는 반에서 '저 친구 웃기다'하는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며 익살스러운 장난을 치곤 했다. 하지만 충돌을 피하는 성격 덕분에 누군가와 다툰 일이 없었다.

  딱히 '사춘기'로써의 특징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간혹 어머니와 마찰이 있었지만 주로 불편한 내색 없이 협조적인 편이었다. 부모님은 "우리 애들은 딱히 원하는 것도 없고 순했어."라는 말을 하시곤 했다. 내가 정말 순한 아이였을까?


 커 갈수록 사회생활 최대 목표는 '평균'이 되는 것이었다. 성적도 중간, 취향도 대중적인 것, 헤어스타일과 코디도 그 시대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스타일로.  그것이 내 취향이고, 성격이라고 믿고 있었다. 모두가 "YES"하는 것에 "저는 사실 NO예요"라고 하는 것은 반역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결국엔 "네 좋아요." 하며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 후 후회한 적이 많았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는'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대충 얼버무렸을 것이다. 타인의 요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자신의 욕구에는 무디게 응했다. 그것이 '미덕'이라고 자기 위로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표현하지 않음'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착한 사람'이미지가 나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어느 순간부터는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였다. 외모에서부터 행동, 표정, 직업에 대한 선택까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지 고려되었다. 사소한 부정적 피드백도 민감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직장 상사들에게 '친절하고 열심히 하는 직원' 정도의 좋은 평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리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것이 힘들었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직원들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하던 직장, 자급난으로 월급을 주지 않던 직장, 어느 날 갑자기 부도가 난 직장 등 예기치 못하게 상황이 급변했다. 그렇다 해도 같은 조건에서 근무하고 있는 다른 직원들에 비해 나는 더 큰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는 나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주변 환경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만들어 나갈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얼마나 애쓰는지, 타인이 원하는 대로 하고 있는데 왜 상황은 더욱 어려워만 지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자기 연민할  뿐이었다.


타인의 요구에 민감해질수록 나를 막 대했다.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 못난이 취급하며 움츠러들었다.

'내가 유리 멘털인 건가.'

스스로를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라고 판단했다. 누군가에게 약한 모습을 들키는 게 두려워 자신 있는 척, 쿨한 척 가면을 쓸 데도 있었다. 그런 속마음을 숨기려 할수록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는 게 어려워졌다. 이런 못난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뭐 그렇게 까지 심각하게 힘들어했을까 싶지만, 당시의 나는 그랬다.





# 착한 아이 증후군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 시간들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었다. 부정적인 정서나 감정들을 숨기고 타인의 말에 무조건 순응하면서 착한 아이가 되려고 하는 경향을 의미하는 용어라고 한다.(그런 패턴을 갖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여기선 굳이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비슷한 증상을 겪은 동지(?)들은 공감하겠지만, 내가 그런 성격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혹은 이렇게 까지 애쓰고 있는데 또 어떤 노력을 하라는 건지 억울해서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그 자체를 인정해버리는 것이 어려워 부정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스스로를 배려하지 않고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은 때론 원망의 마음 낳는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면서 여러 '가해자'들을 만든다. 이러한 패턴이 고착화되면 자기 연민에 빠져 상대의 사소한 언행에도 과한 의미를 부여한다. 결국에는 '나는 약자'라는 무의식이 자리 잡으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데 필요한 자기 확신을 가질 기회가 적어진다. 타인의 요구에만 반응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 나에게 친절해지는 방법


 1. 나에게 친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소중히 대하는 것이 이기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을 귀하게 대접할 때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약간의 죄책감마저 든다. 그러나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을 다루는 방법대로 타인을 대우한다.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알아야 상대를 존중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2. 거절이 어려울 때 :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 때를 상상하면 어떤 감정이 드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미움받을 까 봐,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드는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가?

자신을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포지셔닝하면서 얻게 되는 이익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해보자. 자신에게만은 솔직하게 답해보자. 그런 감정이 드는 자신이 수치스러워 대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것만은 기억하자. 인간은 대체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수용하느냐 회피하느냐에 따라 스스로 삶을 주도해 나가며 살지,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지가 결정되는 열쇠를 쥐게 된다.


3. 실수는 실수일 뿐이라고 생각하자. 스스로 내편이 되어야 한다. 나의 사소한 실수로 세상이 무너지지 않으며 실수한다고 해서 미움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실수하면 절대 안 돼!'보다는 '실수 안 하면 좋지. 그러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정도로 바꾸려고 노력해보자. 나의 실수에 여유로워져야 타인의 실수에도 너그럽게 대처할 수 있다.


4. 나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자. 자신의 단점은 줄줄이 떠오르지만, 장점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생은 내가 '나'라는 캐릭터를 데리고 사는 게임이다. 태어나자마자 나의 몸과 영혼을 부여받았다. 내가 받은 캐릭터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할수록 게임의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하는데 전략을 짜기가 매우 쉬워진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강점과 약점을 생각날 때마다 기록해보자. 처음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도 괜찮다. ( ( 예) 오늘 입은 옷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양말을 신었다, 설거지 후 그릇 정리를 잘한다 등) 여러 번 기록하다 보면 불현듯 다른 강점이 지속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5.  오늘부터 당장 나를 사랑하자. 내가 나의 부모가 된 것처럼 대해보자. 자고 일어나면 '우리 oo이 잘 잤어?' 하고 인사해보자. 양치하면서 마주한 거울 속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신청해보자.  스스로 못난이처럼 느껴질 때는 혼잣말을 해보자. '괜찮아. 귀여운 녀석! 할 수 있어! ' 처음에는 다소 오글거리겠지만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 무의식적인 반응이 된다. 제일 이상해 보이지만 놀랍게도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이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친절을 택할 때

  사실 우리는 기질적으로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고민이 될 것이다. 그럴 때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보자. 나는 그럴 때마다 솔직해지는 시간을 가진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라면 내려놓자. 하지만 기꺼이 내가 할 수 있고, 해야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 '

인간은 타인에게 '기여'했을 때 더 많은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당신에게도 행운이 찾아왔다


  착한 아이 증후군의 패턴을 갖게 된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성장과정에서 수없이 불안한 환경에 자주 노출되었거나, 혹은 태어나자마자 타인을 배려하도록 책임과 의무가 강요되었을 수도 있다. 어린아이일수록 양육자와 주변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하지만 약한 존재였던 아이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어른이다.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미성숙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면 스스로 알아채고 '내면 속의 그 아이'를 키워주길 바란다. 당신의 인생은 오직 당신에 의해서만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결혼을 하던 시기에 나에게 큰 운이 찾아왔다. 독서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 혼자 고민하던 것을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지혜를 얻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스스로 삶을 관조하는 능력이 키워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이런 상황에는 어떤 반응을 하는지, 그런 반응이 생기게 된 원인은 무엇인지 깊이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읽었다면 당신에게도 그런 행운이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행운으로 바꾸는 것 또한 당신의 선택이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어 삶이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무척 행복하겠다.






*'착한 아이 증후군'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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