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기록 : 자기 검열
<2024년 11월 심리상담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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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진단 이후로 시작한 심리 상담은 매주 1회, 화상 통화로 진행되었다. 그날은 다이어리 첫 장에 기록해 놓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상담사: "선생님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으세요?"
나:"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적었어요."
상담사:"기본에 충실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나:"일이나 인간관계에서 화려한 기술보다 기본적인 것을 지키는 사람이고 싶어서요."
나도 모르게 자만심이 생기려 할 때 스스로를 다그치던 말이었다. 겉보기에 화려한 것보다 내면이 따뜻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상담사:"선생님은 되고 싶은 모습에서도 자기 검열이 보여요.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맞아요.. 스스로를 잘 못 믿는 것 같아요. "
자기 검열.
자기 검열은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자신의 표현이나 사상을 스스로 검열하는 행위라고 한다.(출처*네이버)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는 마치 나를 설명하는 단어처럼 친숙하게 느껴졌었다.
어릴 적부터 써온 다이어리의 앞장에는 '항상 반성하기'와 같은 항목이 끼어 있곤 했다. 우연히 그것을 본 지인이 의문을 제기하기 전까진 누구나 그렇게 사는 줄 알았었다. 자신의 단점을 파악하면서, 그것을 수정해 가면서.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상담사:"자기 검열은 마치 내가 나를 감시하는 것과 같아요. 스스로 감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나요?"
나:"음... 안 좋은 행동을 할 것 같아요."
상담사:"안 좋은 행동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나요?"
나:"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나 상처를 줄 것 같아요."
상담사:"......"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대화에서 잠깐의 공백이 생겼다. 상담사님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상담사:"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콧잔등이 찡.. 해져요. 그런 마음은 미취학 아동 시기에 만들어지거든요. 아주 어릴 때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핵폭탄처럼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 예쁘게 나를 포장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어린아이가 얼마나 애를 썼을까요.. 마음이 아파요. 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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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일기장에 상담내용을 기록하면서 곰곰이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상담사님의 말씀대로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언젠가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와 같은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무의식은 아주 어린 미취학 아동기에 형성된다는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태아기 때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낙태가 될 뻔했었다.
몇 년 후 이혼하는 과정에서 우리 남매는 부모님에게 버려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감정기복이 심한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나는, 어머니가 자녀를 짐스럽게 여기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했다.
이런 사실을 기반으로 보았을 때, 어린아이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부모님도 나를 싫어하는데, 사람들도 날 미워하게 될 거야.'와 같은 근거 없는 신념이 생겨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었다. 나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어서.
오랜 기간 자기 검열, 자기혐오에 갇혔던 이유는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늘 긴장이 되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점을 찾아내고 고쳐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실은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애쓰던 어린아이의 무의식에서 생겨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니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상담 이후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나와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부족해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어린아이 때 만들어진 잘못된 신념이 바뀔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을 당연하게 느낄 때까지.
앞으로도 꾸준히 나에게 알려주고 싶다.
얼마나 걸릴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