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

by 피카타임

이번 달 일정표에 모임이 하나 있다.
학창 시절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그 학년만의 특징이 있었듯, 나이에도 나이마다 특징이 있었다.
지금 내 나이는 그랬다. 거추장스러운 게 많아지는 나이.
특히 '모임'에 있어서. 모임이란 모임마다 다 앉아 있던 내가 이제는 가급적 모임을 만들지도 참석하지도 않으려고 발버둥이다.
그럼에도 지키고자 노력하는 모임이 몇 개 있다. 가족 간의 모임을 제외하면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이번 달 일정표에 있는 모임이다.

이젠 오래전이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하기 전, 여러 가지 문제들을 예상해 봤다.
외로움, 부부 관계의 변화, 늙어서 오갈 데 없는 신세,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하지만 막상 그럴 결심을 하고 살아보니 첫 번째 난관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결혼 첫해부터 십 년이 지날 즈음까지, 사람들을 만나면 거의 똑같은 인사가 지겹도록 이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은 미간에 깊은 주름부터 만들고는 "아이고" 하며 다가온다. 그리고 한국인의 예의, 그 정 많은 제스처.
한 손으로는 팔을 잡고 한 손으로는 등짝을 때리면서, "왜 애기를 안 낳는데?"가 불쑥 첫인사다. 몇 달 만에 만났든, 몇 년 만에 만났든 상관없었다.
그럴 때마다 대답이 난감했다. 그들을 잡고 이렇고 저렇다 긴 설명을 할 수 없으니 때론 미소로 대신하고, 때론 "그냥요..." 하고 말다 보면 얼마나 이해받지 못할 사람이 되는지.
시간이 더 지나자, 그중에 더 친분이 없던 사람들은 아예 눈빛과 목례로만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들에게 난 말 걸기 불편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그렇게 살았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 앞에 서면 어떻게 다가갈지 몰라 어색할 때가 많으니... 그들에게는 내가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시선들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임 부부'라는 오해가 붙었다.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이유들은 다 불임을 감추기 위한 핑계로 해석되곤 했다. 처음 만난 이와 신상 정보를 주고받다가 "아이는요?"라는 질문에 "없어요."란 대답을 하면 사람들은 당황을 하며 정중히 사과부터 해온다. "정말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느 날, 그와 대화를 나누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대답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이 유무에 대한 질문에 나는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반면, 그는 "인연이 안 닿네요."라고 대답한단다. 내가 정색을 하며 이유를 물었더니, "어차피 안 갖는다 해도 못 갖는다로 보는데, 그냥 귀찮아서." 한다.
그런 그의 대답에는 또 다른 부작용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불임 치료에 좋다는 정보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진실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가진 정보가 중요할 뿐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적당히 알고 지내는 지인들과의 만남은 피곤하고 귀찮기만 했다. 그럼에도 이번 달 일정표에 표시된 저 모임만큼은 꼭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누군가 대체 어떤 모임이냐, 멤버가 어쩌다 그렇게 됐냐 물으면 나는 한결같이 이렇게 답한다.
"소중한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그 '소중한 사람들'은 날 있는 그대로 봐주느냐 하면, 그들 역시 아니다. 그들에겐 오히려 한 번쯤은 진지하게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를 물어봐주길 바랐으나, 그들은 나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그것은 또 다른 불편함이었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모든 고백에는 타이밍이란 게 있다. 이젠 내 얘기를 꺼내는 게 뜬금없는 일이 되었다. 그 또한 나를 왜곡해서 바라보는 시선이란 걸 안다. 그래서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마음 한켠에 그늘이 지곤 했다.

이런 다양한 시선 속에 살아온 긴 시간 동안, 깨달은 게 한 가지 있다.
'이해받고 싶어 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나는 이해받을 수 없다.
이해받지 못해 평생 서운함과 응어리를 안고 살아야 하는 대신,
내가 그들의 시선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 편이 모두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이다.
보편적인 길을 택하지 않았으니, 불편한 시선이 생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시선이 이번 차례에는 내게 닿았을 뿐이다.

머리로 이해된 일이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는 때로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저 모임이 여전히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모임'일 수 있는 건, 내가 한때는 서운했던 그들의 시선을 머리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이해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해심이 그 모임뿐 아니라, 세상으로 좀 더 확장되길 날마다 내게 당부한다.
"나는 나예요. 타인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아요." 나는 그런 사람은 못 된다. 타인의 시선도 중요하고, 더불어 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니 아쉬운 쪽이 우물을 팔 수밖에.
내 마음은 항상 머리보다 늦었으니 마음에는 더 많은 시간을 준다. 나의 이해가 차곡히 쌓이다 보면 상대방의 진심 어린 이해도 얹혀질 날이 오겠지...

그러고는 어느덧 16년의 시간이 흘렀다.
놀라운 건, 세월 따라 내 마음도 변해간다는 사실이었다. 예전에는 타인과 나에게 서로의 이해를 바랐지만, 이제는 중요도에서 밀려난 주제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선택한 내 삶을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게다가 신기하게 중요했던 많은 일들이 옅어지고, 잊혀졌다.

사람은 결국 서로를 잊었다. 오랜만에 옛 친구와 안부를 묻다가, 잊고 있던 다른 친구의 이름이 불현듯 떠올랐다. 우린 늘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 바람에 귀가 후 야단도 자주 맞게 했던 그런 친구를 그동안 나는 완전히 잊고 살았다.

사랑도 잊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의 죽음을 상상하며 숨 막혀 울던 날들. 할머니 없는 세상이 오면 나 역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할머니를 날마다 떠올리지도 않으면서.

기쁨도 잊었다. 과거 어느 기간 '해결하지 못한 일'이 계속 내 삶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 일만 해결된다면 나는 무엇이 되어도 행복할 것 같았는데... 해방의 기쁨에 하루 잠시 울먹인 게 전부였다. 예상과 달리 또 다른 문제 앞에 여전히 마음씀이 분주했다.

미운일 조차 잊었다.
원수를 갚자 했던 사람이 있었다. 다행인지 일상은 그 미운일만 생각하며 살도록 날 두지 않았다.
그렇게 원수를 갚지 못한 채 시간은 자꾸 흘렀고 이제 와서 원수를 갚는다면 내가 가해자가 될 판이었다.


행성의 공전 궤도를 나타낸 선을 보고 있자면 용광로의 소용돌이 같다. 한 바퀴 두 바퀴 돌며 감정도 기억도 그 속에 다 휘저어 버린다.
과거의 서운했던 그 시선들도 내게서 옅어지고, 나도 그들에게 더 이상 뚜렷한 존재가 아니다.
잊는다는 건 슬픔만 주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한 발 한 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용광로의 소용돌이 속에 나는 다시 많은 것을 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올해의 봄꽃이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무언가가 또 멀어졌고, 또 다가왔다.
이번 달 '소중한 사람들'의 모임은 유독 더 맛있는 집에 데려가야지. 그 모임에서 내가 부여받은 막중한 역할, 열심히 맛집 목록 검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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