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냄새와 순대

by 피카타임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하냐… 이럴 때가 글이 편한 순간이다.

수요일 늦은 밤, 퇴근하려는데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너무나 당당하게.

"순대 대기할게요~"

상황에 맞지 않고ㅡ 누구든 야식 얘기를 먼저 꺼내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우린 요즘 철통 같은 야식 금지령을 선포한 상태였다.
어법에 맞지 않는ㅡ 순대를 대기시키는 것도 아니고, 순대가 대기하고 있을게요도 아니고… 만약 저기에 순대에게 존칭까지 써서 '대기하실게요'라고 했다면 난 분명 참지 못했을 거다.

"못 살아, 진짜."
평소답지 않게 나도 잔소리 없이 짧은 답을 보냈다.
그러고 퇴근하는 길.

계절이 되기 한 발짝 앞서 공기에 다음 계절의 향이 먼저 도착하곤 했다.
나는 그 향을 맡고는 어떤 날은 가슴이 벅차 낮은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콧날이 시큰거리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한없이 우울해지기도 했는데, 과거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때 이 모든 계절성 감정 기복은 모두 후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짝 열어둔 차창으로 훅 하고 봄의 향이 쏟아져 들어와 차 안을 가득 채운다. 계절의 첫 향을 맡는 순간은 늘 사람 마음을 놀라게 한다.
순간이었다. 행복이 분명했다. 봄 향과 함께 울컥하는 행복이 내 안에 밀려들었다.
봄밤이라니. 순대를 시켜놓고 기다리는 그라니. 혹은 그와 함께 날 기다리고 있는 순대라니.

분명 주차를 하고 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차 안보다 더 진한 봄 향이 공기에 가득할 것이다.
도착한 집의 온도는 걸어온 봄밤의 공기보다 따뜻할 것이다.
그와 퍼질러 앉아 순대를 먹으며 보는 tv는 가볍디가벼울 것이다.
내가 곧 누리게 될 그 모든 평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대단한 부자였다면 오히려 순대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겠지, 내가 지독히 가난했다면 그래도 순대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겠지.
다이어트가 날 막지 않는 이상 언제든 맛있어 죽는 순대 나부랭이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삶이 감사했다.

이 모든 게 내가 운전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이유인데, 만약 누군가가 멀쩡히 운전하다 왜 그러는지 묻는다면 아…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되냐… 이러니 글이 낫다. 그래서 글이 더 좋은 날이다.

이렇듯 우리 부부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순간들이 종종 있다.
"둘이 자주, 아니 가끔 술은 마시니?"
"술? 아니, 우린 술 안 마셔."
"그럼 둘이 여행을 자주 가?"
"음… 이제는 별로 어디 가고 그러지 않는데."
"그럼 둘이 같이 하는 취미는 있어?"
"아니, 각자 좋아하는 일은 있어도 같이 취미 생활을 하지는 않아."

친구 세 명이 조개탕 앞에 앉았다. 물을수록 그들은 난감해졌고, 대답을 할수록 나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 뻔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는 내가 무안할까 봐 뭐라도 답이 나올 때까지 물을 기세였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는 결국 "무슨 재미로 사냐?"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부연 설명 없이 "그러게, 그래도 같이 재밌는 게 있어." 하고 나도 따라 웃는다.

나의 단골 미용실은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미용실을 찾을 때마다 그들의 새로운 취미가 생겨 있었다. 바이크를 타기도 했고, 헬스를 하거나 자전거, 골프였다가 와인, 그리고 캠핑이기도 한 그들의 취미는 늘 서로가 서로에게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사이좋은 부부의 전형적인 표본이랄까.
그 부부는 내가 가면 자세하게 그간의 취미 활동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내게 항상 권면한다. 부부가 함께 취미를 가져야 인생이 훨씬 즐겁다고.

가까운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 부부 사이가 단조로울까 걱정했다. 아이도, 재미도 없이 무료히 살다가 쓸쓸한 최후를 맞을까 걱정했다. 사람들의 그런 걱정 앞에 난 특별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냥 늘 미소를 띠며 "예…" 혹은 "그러게요…" 하고 애매한 대답을 한다.
단조로움이 무료함은 아니다. 쓸쓸함은 더욱 아니고.
그들의 질문 속에는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난 속으로만 말한다. 내 방식대로 재밌게 살고 있다고. 당신의 방식대로 살지 않을 뿐이라고.

사람은 사람으로 울타리를 치고 산다. 하루 일과가 유독 긴 날이 있다. 어떤 만남들은 지칠 대로 지치게도 했다. 그렇게 나를 소진해 버린 끝은 연어처럼 나의 울타리로 회귀한다.
그곳에서 하루 종일 감추려 애써 왔던 나의 부족함을 마구 풀어헤치고, 세상의 모든 반대자들을 향해 거침없는 독설을 날리며, 타인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농담을 한참 지껄여 대면 드디어 가식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 순간, 비로소 그날의 고됨이 녹아내린다.
그와 같이 보는 유튜브 채널 앞 따끈한 순대 3인분과 함께.

이런 건 안 끼워 주는 건가.
둘이서 이보다 더 재밌는 시간이 없는데도 말이다.
다음엔 우리가 뭐로 보일지 고민하지 말고, 누군가 다시 우리의 공동 취미를 물어준다면 조심스럽게 얘기해 봐야겠다.
"혹시… 같이 유튜브 보며 순대 먹기는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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