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식구

by 피카타임

휸에게 연락이 왔다. 해운대에 가서 하루 자고 오자고. 난 언제나처럼 "예스"라고 했고, 우린 늘 이런 식이었다. 동생이 계획을 세우면 내가 무조건 긍정의 대답을 내놓는.

휸이 결혼한 이후로, 나는 늘 동생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 부부의 스케줄에 방해가 될까 봐, 내가 먼저 나서서 어딜 다녀오자고 말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과 제부의 생각이 다를 때, 중간에 놓인 동생이 난처하거나 힘들게 될까 봐 저절로 조심스러워졌다.
결혼 전 동생과 나의 연애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종종 나와 있어 달라고, 나를 선택하라고 때를 썼다. 서운한 날도 많았다.
그런데 이젠 무조건 동생과 제부의 행복이 우선이 되었다. 둘이 사이좋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모처럼 1박 2일을 꽉 채워 휸과 둘이 있는 동안 사실 해운대의 풍경을 바라본 기억은 거의 없다. 바다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여느 사람들이 말하듯 "바다 보면서 스트레스 다 버리고 오자" 하고 가서는, 막상 바다를 바라본 시간은 채 5분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늘 연락을 하고 지내도, 이렇게 둘이서 같이 침대에 누워 잠에 드는 건 생각이 안 날 만큼 오래전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장르도 맥락도 순서도 아무것도 없었다. 재잘재잘 지저분한 이야기도, 야한 이야기도 막힘없이 해대다가 어떤 순간은 웃음을 멈추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런 휸의 모습은 시간이 깊어질수록 더 매력적이었다. 이렇게 난 날마다 휸에게 빠진다. 잠시 통화에도 그러는데, 하룻밤의 동침은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난 휸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면서도, 단둘이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아빠와 진탕 싸우고 집을 나올까 고민했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휸과 산책을 핑계 삼아 다른 동네 골목을 기웃대면서 끝없이 이게 실현 가능한 일인지를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외국의 경우 십 대 때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서 살기도 한다는 이야기. 어째서 그들은 그게 가능하고, 어째서 나는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되물으며 골목 산책이 끝이 났다.
만약 휸과 내가 단둘이 살게 된다면, 그건 이렇게 누군가와 인연을 끊는다는 뜻이었다. 그 옛날에는 아빠와, 지금은 각자의 배우자와.
휸을 사랑하지만, 둘이 살면 참 좋겠다는 말을 입 밖에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이유이다.

과거 어느 날, 나는 일생일대의 가장 이기적인 결정을 내렸다.
너와 아빠, 너에게 아빠를... 그렇게 둘만 살게 두고 난 결혼을 했다. 그건 어떻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두 번은 같은 선택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너와 아빠가 둘만 남겨졌던 그 시간 때문에 난 평생을 빚진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삶은 여러모로 아이러니했다. 사람이 사는 많은 방식들은 혼란을 통해서 재건되고 유지됐다.
나와 너의 이기적인 선택들로 아빠는 결국 혼자 남게 되었고, 그것은 떠난 이에게도 남은 이에게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혼란을 겪게 했다. 마치 우리 가족이 와해된 듯, 예전의 가족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 듯 아빠도 울고 우리도 울고. 하지만 그 덕에 지금의 우리는 셋에서 다섯으로 늘어났다.

"우리 가족은 여섯 명이예요."
어린 시절, 타인에게 가족을 소개할 때 항상 같은 말로 시작했다. 여섯이라는 숫자는 나의 정체성이었다. 이제 한 명만 더 있으면 다시 여섯이 되는 우리 가족.
나로 인해 가족이 더 늘어날 일은 없으니, 난 또 한 번 이기적인 선택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나의 선택이 아빠를 외롭게 하진 않을까 생각하는 일은, 그 옛날 아빠를 두고 떠났을 때처럼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
하지만 늘 그랬듯 삶 속에 우리 가족을 맡긴다. 어떤 인연이 채워져 다시금 완전한 여섯 명이 될까.
다시 여섯 명이 된다면 그 시간이 오래이기를 매일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다음번에는 아빠와 같이 와서 자고 가자고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해운대를 떠났다. 출렁이는 바다 앞에서 우리가 나누게 될 이야기를 생각해 본다.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우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버겁고도 행복한 시간일 게 분명하다. 겪지 않아도 훤하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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