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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타임 Jan 17. 2024

봄, 원동역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떤 봄 꽃들은 유독 일찍 핀다.

자주 가는 공원입구에 목련이 2주 전부터 꽃망울을 맺고 있다.  1월 말쯤 되면 그 옆 홍매화도 어김없이 꽃을 피울 것이다. 매년 그랬다.

그리고 이때쯤 나의 봄타령도 시작된다.

사람들은 아니라고, 아직 겨울이 멀었다고,  한파가 두세 번 더 지나가야 봄이 올 거라 나를 말리지만

사실 공기에는 벌써 봄냄새가 나고 있단 말이다.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난 원동에 가고 싶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냐 물으면 한마디로 소개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음.. 생활력 강한 소녀?라고 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봄 딸기가 한창 익을 때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기차를 탔었다. 30분쯤 걸리는 원동역에 봄 나들이를 간 셈이다. 기차는 멀리 사는 친척집에 갈 때나 타는 건데  두어 코스 정도 기차를 타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이벤트였다.
막상 원동역에 도착해 내리면  딸기도, 유원지도 없었다. 그곳에 있는 건 덩그러니 조용한 시골마을, 그리고 봄.
정확히 엄마와 우린 원동역옆에 조용한 마을을 그냥 걸었다.  그런 그 시간이 우린 들뜨고 즐거웠다.
그래서겠지... 봄만 되면 원동역에 그렇게 가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그날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전에 봄 냄새가 숨으로 훅 들어오면 저절로 원동역이 떠오르고 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원동역은 지금도 가깝다.  원동에는 매해 순매원에서 매화축제를 하고, 원동 어느 마을에는 친한 친구의  할머니집이 있고, 밀양댐 드라이브를 가려면 원동 쪽으로 해서 가야 하니 어른이 된 이후로 원동역 근처를 여러 번 지나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늘 매년 봄 마음속에 옛사랑처럼 떠오르는 원동역과 기차역 옆의 우리가 걸었던 그 마을은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오늘도 난 기억 속에서 엄마가 그 길을 어린 두 딸과 걸었다는 게 아름답고도 슬프다.
아빠여도, 혹여 숨겨둔 애인이래도, 아님 늘 엄마를 좋아했던  엄마의 친구어도... 좋았을 텐데 왜 놀이공원도 아닌 그곳을 어린 두 딸과 함께 걸었을까.  
그래서 엄마는 소녀였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매년 봄 이유도 없이 마음이 두둥실 떠서 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날의 우리 셋의 뒷모습. 난 볼 수 없었던 그 모습이 항상 나에겐 베스트컷이다.  
사진명은  <봄, 엄마와 두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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