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주에 휴가가 있다. 예전을 생각하니 휴가를 앞둔 주말은 휴가의 시작과 같은 느낌이어야 했다.
평소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보지 못하고 미뤄뒀던 시리즈 물을 보거나 오래 알고 지낸 친한 친구에게 연락해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그러면서 모처럼 부담 없을 월, 화를 가벼이 여기며 좀 즐거워야 하는데
그런 기분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그건 그냥 기억에만 존재하는 기분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외출을 하지 않겠다 결심까지 했지만 창밖의 무성한 나뭇잎과 함께 매미 소리가 우와와왕 몰려오자 순간 보이지 않는 돔에 갇힌 느낌이다. 집에 커피가 없는 지 오래다. 그 어떤 종류의 커피도 없이 지낸다.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고 거실 한가득 싸다 만 짐을 펼쳐두고는 밖으로 나왔다.
여름이었다.
순간 해운대로 달려가 볼까 하다 그만둔다. 낭만을 기대하고 갔다가 못 볼 꼴을 많이 보게 될 시즌이다.
집 앞에 작은 카페에 앉아 플랫화이트와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창밖을 바라본다.
여름은 도시가 매력적이다. 이 계절은 섹시한 향을 풍기는 유쾌한 성격의 남자 같다.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들고는 훌쩍 떠나버려도 그 이별이 마음을 짓누르지 않는 사람, 함께 한 순간을 기분 좋게 추억하며 언젠가 살다 보면 또 만날 날이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에 설렐 수 있는 그런 몇 안 되는 좋은 사람 같다.
덥다... 내뱉는 순간에도 이 계절이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상기한다. 그렇게 더위에 대한 불평을 멈춤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계절의 추위를 실컷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낮부터 폭우를 조심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계속 오더니 저녁이 깊어지자 엄청난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난 비를 구경했다.
'구경'은... 내가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나는 완전히 안전함을 느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의 폭우는 모두에게 '구경'이나 할 만한 일이길 바란다.
남은 8월의 날들을 스물아홉 가지의 맛있는 코스요리처럼 한날한날 예의를 갖춰 받아 들고 즐겁게 음미하고서 잘 삼켜 둬야겠다. 그렇게 얻은 양분으로 그다음 계절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휴가를 위한 짐을 챙긴다. 그리고 추가된 휴가 계획.
휴가를 떠나기 전 잠을 많이 자 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