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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수영장

by 최유나

나는 미사 중 영성체 후, 늘 하는 기도가 있다. 내 삶의 목표를 향해 굳건히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기도이다. 길게 산 것은 아니지만, 삶이라는 것은 내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마치 그것 자체에 의지가 있는 것처럼, 인생이라는 물결 속에서 나는 그 흐름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경험을 몇 번 한 후에,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한 힘든 일을 겪은 후에는, 그 일에 갖는 의미와 그 후의 삶을 어떻게 다시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을 해 왔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뜻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청하는 기도는 나로서는 너무나 절실하면서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날도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영성체 후 용기를 청하는 마음을 하느님께 보여드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면의 내 목소리가 너무나 틀에 박힌 듯, 공허하게 느껴졌다. 기계적으로 반복하던 기도가 스스로도 지루하고 메마르게 느껴지며 멈춰버리던 찰나, 내 의지와 상관없는 뜻밖의 기도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느님, 제가 고비 하나를 넘겼어요. 학위 과정 중 늘 내년의 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불안하고 걱정했는데, 이렇게 모든 것이 잘 끝났어요. 당신이 함께 해 주셨으니까. 정말 꿈 같지 않나요? 다 하느님, 당신 덕분이에요!”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는 수영장 풍경이 펼쳐졌다. 내가 물 안에서 천천히 팔을 저으며 수영을 하고 있었고, 수영장을 커다란 양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었다. 그분은 내가 담겨있는 수영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고 계셨다. 물의 감촉은 포근했고 부드러웠다. 나는 그 품 안에 있었고 그분은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사 중 머릿속에 펼쳐진 그림은 더욱 감미로운 은총이었다. 그 광경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하느님의 동의이자 허락이기도 했으며, 끝까지 나를 격려하고 지켜주겠다는 의미로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채 3분도 되지 않았을 그 짧은 시간을 나는 마치 한 시간은 넘는 것처럼 푹 젖어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고 미사가 진행되는 성당 안으로 돌아왔다.

내가 그동안 용기를 청했던 기도가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루틴처럼 반복되는 그 기도를 위해 나는 마음보다는 머리를 굴렸으며, 결국 완전한 기도로 나아가지 못하는 장애물이 되었던 것 같다. 의식적으로 청하는 것보다 그분이 내게 주는 사랑과 신뢰 안에 온전히 잠기는 것, 그것이 기도라는 것을 그날 미사 중에 느낄 수 있었다. 청하지 않아도, 그분은 이미 알고 계시며 늘 선으로 나를 이끌어주시기 때문에.

하느님이 언제나 나의 수영장을 보호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나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그러나 열심히 헤엄쳐 나갈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참 애쓰며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다정한 위로를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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