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선생님은 지금도 웃고 계신다

- 정호경 선생님을 기리며 -

by 최유나


어머니는 원로 수필가 선생님을 인터뷰해야 한다며 나도 함께 가자고 하셨다. 인터뷰 내용을 녹음하고 현장 사진을 남기기에 혼자서는 벅차다는 이유였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며 현지조사를 다녔던 내게, 그 정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인사동의 한 식당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정호경 선생님을 처음 뵈었다. “이귀복 수필가의 딸, 최유나라고 합니다.”라고 인사드리자, 선생님은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셨다. 2010년, 하늘이 맑은 가을날이었다.



어머니가 정호경 선생님 인터뷰를 한 것은 “2010년 겨울호 에세이문학”에 실릴 “작가초대석” 코너를 위해서였다. 에세이문학 편집부 선생님들도 함께 했던 현장의 분위기는 참 따뜻했고 즐거웠다. 내 카메라 속에는 활짝 웃고 있는 정호경 선생님과 어머니의 모습이 가득했다.


사진 파일을 에세이문학 편집부와 정호경 선생님께 보내드리고 나서 얼마 뒤, 선생님이 뜻밖의 연락을 하셨다. 인터뷰 때 찍었던 사진 중 독사진 하나를 크게 인화하여 보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평소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 거의 없는데, 이번 사진은 활짝 웃고 있어서 매우 마음에 든다는 말씀이었다. 용도를 알면 더 알맞게 인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여쭈었더니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씀하셨다. 본인의 영정 사진으로 갖고 싶다고 말이다.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매우 놀랐다. 노년기에 접어드신 것은 맞지만 여전히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단정한 액자에 선생님의 독사진을 잘 담아 보내드렸다. 선생님은 사진을 받아 서재에 잘 걸어두었다며 고마워하셨다. 마지막을 준비하신다는 것에 조금 숙연해졌지만, 그래도 내 사진이 그만큼 마음에 드셨다는 것에 기쁘기도 했다.


그 후 나는 선생님이 운영하셨던 인터넷 카페인 ‘정호경의 수필마을’에 어머니를 따라 가입했다. 회원들이 신작을 올리면 선생님은 격려의 댓글을 달아주셨고,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회원들을 유쾌하게 하셨다. 선생님은 카페 회원들을 당신이 계시는 여수로 초대하기도 하셨다. 여수 바다를 배경으로 여행 코스를 짜 놓으셨고, 푸짐한 해산물이 가득한 식사를 준비하셨다. 선생님의 따뜻함과 잔잔한 여수 바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어머니가 병환 끝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선생님께 어떻게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드려야 할지, 나는 고민했다. 그러다 집안 어른께 소식을 전하듯 담담히 상황을 말씀드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전화기 너머의 선생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정호경의 수필마을’에도 어머니의 부고 소식이 올라갔다. 여수 풍경을 배경으로 선생님과 우리 모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 가득한 그곳에서 어머니의 부고 소식 글을 보니, 어찌할 수 없는 서러움이 몰려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수필에 대한 마음을 잡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나의 수필 선생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머니 때문에 수필을 썼던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가 없는 세상에서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한 나에게 선생님은 “글을 써야 수필가다”라는 말씀을 만날 때마다 해 주셨다. 선생님의 그 말씀은 나의 흔들리던 생각을 다시 붙들어주었다. 수필을 쓴다는 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자, 어머니의 유산을 딸로서 계승하는 것임을 선생님 말씀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코로나 시절을 지나면서 선생님을 직접 뵙는 것이 어려웠지만, 메일을 드리거나 카페에 글을 남길 때마다 선생님은 댓글을 달아주며 고마워하셨다. 그러다가 선생님의 입퇴원 소식에 가슴 한켠 불안을 품고 있던 어느 날, 따님으로부터 선생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급히 찾은 선생님의 빈소에는 15년 전, 인사동에서 내가 찍어드린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 선생님은 여전히 환한 웃음으로 나를 반기셨고, 나는 그 앞에서 울고 말았다.


정호경 선생님은 언제나 진솔하고 유머가 넘치셨다. 손녀뻘인 나에게도 존댓말을 잊지 않으셨고 고맙다는 말씀을 말끝마다 붙이셨다. 사람들을 아꼈고, 사랑하셨다. 빈소에서 따님과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나를 결혼시켜야 한다”며 내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는 말씀에 나는 눈물 속에서도 크게 웃고 말았다. 나를 향한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여수의 오동도와 여수대교, 몽돌해변에는 선생님이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만 같다. 그리고 언젠가 선생님을 뵈었던 동네 식당에도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앉아 계실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나도 선생님처럼 진솔하고 유쾌하게, 그리고 깊이 사유하며 글을 써 가고 싶다. ‘글을 써야 진정한 작가’라는 그 말씀을 잊지 않는 것, 그것만이 선생님께 받은 사랑을 진심으로 갚는 길일 테니까.



2025년 겨울호 <에세이21>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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