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이

함께 한 시간은 차곡차곡 모여, 다시 나를 만들어낸다

by 최유나

뚱이의 눈은 분명 이상해 보였다. 눈동자는 내 손가락의 움직임을 그럭저럭 쫓고 있었지만, 휑하니 초점 없는 눈빛이 평상시의 똘똘한 녀석 답지 않았다. 나이 든 개에게는 백내장이 흔하다 하던데, 백내장 증상인가.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밤새 개의 백내장에 대해 인터넷을 뒤졌고, 다음날 뚱이와 함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나는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알 수 있었다. 뚱이 눈의 상태가 상당히 심각해졌다는 것을. 뚱이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고, 벽으로 돌진했으며, 길 위의 돌부리를 피하지 못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증세가 급속히 진행된 것 같았다. 뚱이의 낯선 모습에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밤새도록 설마 하며 가슴을 졸였는데. 뚱이가 시력을 잃게 되리라곤 이 녀석과 함께 했던 13년 동안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의사는 뚱이의 눈을 진찰하더니 동공이 빛에 반응하지 않는다며, 눈을 전문으로 보는 다른 동물병원을 소개해줬다. 새로 간 병원에서 들은 뚱이의 병은 ‘급성 후천성 망막 변성증’이라는 복잡하고도 낯선 이름이었다. 주로 노견에서 나타나는 병이지만, 구체적인 발병의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현재로서는 없어서, 처방해 줄 약도 주사도 없다고 했다. 이제야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는 병. 잃은 시력을 되찾기는 어렵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리고 말을 덧붙이며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뚱이는 다행이에요. 열세 살이잖아요. 일곱 살짜리들도 이 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눈이 안 보이는 상태로 10년은 살아야 하는 건데, 개나 주인이나 막막하죠. 개들은 후각과 청각이 무척 뛰어나기 때문에 곧 적응해요. 뚱이는 진돗개 피가 흐르고 있으니 더 금방 적응할 겁니다. 진돗개는 똑똑하잖아요.”



그래, 우리 뚱이는 참으로 똑똑하지. 내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뚱이는 그날 저녁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장난감 공을 갖고 와서는 놀아달라고 졸라댔다. 공을 던져주면 킁킁거리며 냄새로 공을 찾아 다시 물고 왔다. 예전 같이 뛰어다니지는 못했지만, 정확하게 공을 찾아오는 것은 변치 않았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뚱이는 주인인 나보다 ‘적응과 생존’이라는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먼저 내딛고 있었다.




뚱이와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 며칠 후, 나는 몇 년 간 쓰던 휴대폰을 새것으로 바꿨다. 그리고 이전의 기계에 저장해놨던 여러 추억거리를 새 기계로 옮겼다. 내 휴대폰에는 뚱이의 사진과 동영상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다. 사진 속의 뚱이는 간식을 달라 조르고 있었고, 베란다 밖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영상 안에서는 움직이는 공을 쫓아 달리고,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겠다고 사방으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뚱이와 함께 한 일상을 그저 재미 삼아 찍은 것뿐인데, 그것들은 지금 나에게 보물과도 같았다. 이제 뚱이는 저렇게 펄쩍펄쩍 뛰고 달릴 수 없으리라. 사람의 늙음에서 느끼는 허무함과는 또 다른, 이 낯선 슬픔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나는 난감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사진도 발견했다. 사진 속에는 아주 작았던 아기뚱이와 엄마가 있었다. 엄마 다리 위에 배를 보이고 누워서 잠에 빠져 있는 뚱이와 그런 녀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엄마. 내가 한창 수동 필름 카메라에 빠져 있을 때, 정말 운 좋게도 잡아낸 장면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사진을 멀뚱히 바라봤다. 그때는 엄마도 내 곁에 있었고, 뚱이도 지금과는 달리 앞을 볼 수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빼앗기는 것 같아 나는 무언가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뚱이와 함께 한 13년 동안 우리 가족은 참 많은 일을 겪어왔다. 좋은 일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뚱이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 것은,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였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더 이상 슬퍼할 힘도 없이 집에 돌아왔던 내게, 뚱이는 슬며시 다가와 제 엉덩이를 들이대고 내 곁에 앉았다. 그때 녀석이 내게 나누어 주었던 보송한 털과 따뜻한 체온에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허생원이 늙은 나귀를 쓰다듬으며 메밀꽃밭을 지나 봉평 장터를 돌아다녔던 것처럼, 나는 뚱이의 보드라운 털을 비비며 2, 30대의 시간을 지내왔다. 그런데 이제는 앞 못 보는 이 녀석을 내가 살뜰히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 슬프기만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뚱이의 이야기를 하면 어떤 이는 참으로 안타까워했고, 어떤 이는 개가 늙으면 그런 경우도 종종 있노라며 담담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큰 소리로 하하하 웃는 사람도 있었다. ‘개’ 일뿐인 존재에 내 태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뚱이는 내게 단순한 ‘개’가 아닌 13년을 나와 함께한 ‘생명’이다. 생명은 그 존재만으로 또 다른 생명에게 위로를 주고 희망을 준다. 더욱이 그것과 함께 내 삶의 하루하루를 엮어나갔다면, 그 존재가 사람이든 개이든, 아니 풀밭에 넘쳐나는 잡초일지라도 그 자체가 보물인 것이다. 그렇게 함께 한 따뜻한 일상은 차곡차곡 쌓여 다시 ‘나’라는 인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태준은 자신의 수필에서 파초를 기어코 팔지 않으려 했던 것이리라. 그에게 있어 파초는 차마 5원 따위와는 맞바꿀 수 없는, 자신의 마음에 서늘한 비를 뿌려주는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뚱이는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두어 달 동안 배앓이를 한 적이 있다. 뚱이의 예민한 성격을 알던 수의사는, 환경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나이 들고 앞을 보지 못하는 뚱이가 자신의 상황에 낙담하지도 우울해하지도 않기를 바랄 뿐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큰 소리로 왕왕 짖고, 간식을 달라 조르고, 가끔씩 내게 엉덩이를 들이대며 녀석의 포근함을 나눠주는 것이면 충분하다. 나의 일상이 뚱이의 일상이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녀석과 나는 늘 함께 할 테니.





2016년 그린 에세이 9,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