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니야, 행복해야 해

연세대에 살던 길고양이

by 최유나

아침 등굣길이면 나는 학생회관 앞의 풀밭을 늘 기웃거렸다. 그곳에는 고양이, ‘학과니’의 집이 있기 때문이다. “학과니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면 학과니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야옹’ 하고 부드럽게 답을 했다. 낮에도 그 앞을 지날 때는 학과니의 집을 들여다봤다. 해가 높게 떠오르면 외부 출타로 바쁜 학과니였지만, 운이 좋은 날에는 풀밭 근처에 모로 누워있는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학관이가 보송보송한 배를 드러내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으면 나는 슬금슬금 그 근처로 갔다. 그것은 아무리 바빠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학과니는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는 고양이들과 달리,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았다. 내 손이 자신의 몸에 닿으면 기분이 좋다는 듯이 온몸을 쭉 펴고, 그 손길을 즐겼다. 어떨 때는 내 손을 잡겠다는 듯 앞발로 장난을 걸기도 했고, 내가 풀밭 앞에 쭈그려 앉아 자기를 쳐다만 보고 있으면 먼저 다가와 내 손에 이마와 볼을 부비기도 했다.

개는 긴 시간 동안 키워봤기 때문에 몸짓과 눈빛으로 녀석들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까만 눈을 빛내며 살랑살랑 꼬리를 치는 그 모습은 얼마나 귀여운가. 그러나 고양이는 개와 달리 뭔가 조심스러웠다. ‘고양이는 영물’이라는 어른들의 속설이 아마 내 무의식에도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인기척에도 눈치를 보며 후다닥 몸을 숨기는 아파트 단지의 길고양이의 모습 또한 그들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역시 고양이는 사람과는 친해질 수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학과니는 내가 알던 길고양이와는 달랐다. 야외 벤치에서 사람들 곁에 능청스레 앉아있는 모습은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학과니를 돌보는 교내 동아리가 있다는 말에 가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14년을 함께 했던 멍멍이 뚱이를 하늘나라로 보내자마자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된 학과니는 그렇게 내게 좋은 친구가 되었다.



몹시도 무더웠던 올해 여름. 나는 방학 동안 실습을 하느라 학교를 한 달 동안 가지 못한 채 정신없이 지냈다. 나 같은 사회복지학 전공 학생들은 방학 동안 복지 관련 기관에서 실무경험 과정을 꼭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학과니가 잘 지내고 있는지 가끔 생각이 났지만, 학우들의 사랑을 받으며 여름도 무탈하게 보내고 있겠거니 했다.


실습을 마치고 한 달여 만에 등교하던 날, 나는 오랜만에 학과니와 인사할 마음으로 녀석의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집에 없는 걸로 보아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외출 중인 듯했다. 몸을 돌려 두어 발자국을 떼자마자, 학과니의 얼굴이 크게 프린트되어 있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현수막에는 학과니가 7월 초 입양이 되었다는 글과 함께 학과니의 행복을 비는 말이 적혀 있었다.


길고양이었던 학과니가 입양되었다는 건 무척 좋은 소식이었다. 학과니는 그 무서웠던 더위를 길 위에서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이 너무나 시려왔다. 안도감과 서운함이 뒤섞인 묘한 감정은 정말 낯설었다. 길고양이 주제에 넉살이 넘치게 좋았던 녀석. 이렇게 입양이 되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괜히 학과니에게 마음을 썼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느 길고양이들을 대하듯 학과니를 무덤덤하게 보았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짠하진 않았을 텐데.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 ‘냥이’를 돌보고 있는 보경스님을 TV에서 보게 되었다. ‘냥이’ 역시 학과니와 같은 길고양이로, 큰절 주변에서 지내다가 활동반경을 넓혀 스님이 계시는 암자로 슬그머니 거처를 옮긴 녀석이다. 흔히 말하는, 길고양이가 ‘집사’를 선택한 경우였다. 냥이는 스님이 산책하면 그 뒤를 졸졸 쫓았고, 스님의 방 한 구석도 당연하다는 듯 차지하고 있었다. 스님은 그런 냥이를 위해 먹이 준비는 물론 털관리까지 매일 해주고 있었다. 프로그램 취재원이 스님에게 냥이를 돌보면서 느낀 감정을 묻자 스님은 의외의 한마디를 했다. 바로 ‘성가시다’라는 것이었다. 사랑스러우면 사랑스러운 대로, 냥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생기는 대로 성가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스님은 환하게 웃었다.


사실은 몇 해 전, 엄마의 부음을 엄마 주변의 이들에게 알릴 때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어떤 어른께 전화드렸을 때 그분은 예상치 못한 소식에 무척 슬퍼했다. 그러나 내 연락으로 인해 자신과 내가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인연은 결국 업이며 고통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내게 한 것이다. 오히려 엄마와 그분의 인연을 잘 정리해 드리려고 했던 전화인데,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분이 불교철학에 매우 심취해 계신다는 말을 엄마로부터 자주 들었던 기억도 있고, ‘무소유’라는 불교의 중요한 화두도 있으니 그저 불가에서는 새로운 인연을 맺는 그 자체를 저어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보경스님의 ‘성가신 것이 사랑’이란 그 역설적인 표현은 그랬던 내 가슴을 울렸다. 그것은 솔직하면서도 아름다운 말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부족함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때만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말이기도 했다. 애초에 인연은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있는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그저 불현듯 찾아온 인연은 잘 받아들이고, 떠나는 인연은 잘 보내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이리라.




현수막에 적혀있던 “사랑하는 학과니야, 행복해야 해.”라는 말을 떠올리면 나는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핑 돈다. 흔히 할 수 있는 쉽고 담백한 말이지만, 그동안 학과니를 열심히 돌보았던 학우들의 사랑이 음절마다 따뜻하게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능청스러운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지만, 학과니는 나에게 참 좋은 인연이었다.


아직도 학과니가 쓰던 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아마도 학교 캠퍼스의 다른 길고양이들이 곧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주인 없는 빈자리가 너무도 쓸쓸해 보여서 어서 다른 녀석들이 그 집에 와 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학과니에게 그랬듯, 눈을 맞추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함께 잘 지낼 것이다. 내 곁의 생명은 그 모두가 아름답고 귀한 것이니.




2018년 양주골문학회 1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