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이의 앞다리에는 굵은 주삿바늘이 꽂혔고, 뉴스에서나 들어보던 ‘프로포폴’과 심장을 멈추게 한다는 주사약이 녀석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미 의식도, 기력도 없이 혀를 내 빼물고 축 쳐져있던 녀석은 자신의 핏줄로 스며들어가는 주사약이 느껴지는 듯 온몸을 두어 번 움찔거렸다. 그것으로 뚱이의 14년 삶은 끝이 났다. 긴 고민의 시간을 보내며 결정한 녀석의 안락사였지만, 존재의 생명을 거두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염증으로 잔뜩 부풀어있던 뚱이의 배는 호흡이 멈추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홀쭉해졌다.
뚱이와의 이별이 이렇게 금방 올 줄은 몰랐다. 14년을 사는 동안 병치레 한번 없었고 그저 건강하게 펄떡펄떡 잘만 뛰어다니던 녀석이었다. 개의 평균수명이 10년 조금 넘는다 해도 뚱이는 시골집 마당에 어울리는 튼튼한 잡종견이니 15년, 아니 20년은 충분히 나와 함께 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답답한 생각이었다. 개는 덩치가 클수록 노화가 빨리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난여름, 뚱이는 하루 종일 바닥에 엎드려만 있었다. 추우나 더우나 사람 곁에 있고 싶어서 방문이 열리기만 하면 쏜살같이 들어오던 녀석이,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아무리 제 이름을 불러도 꼼짝하지 않았다. 작년 여름은 유별나게 더웠고, 사람보다 개는 체온이 더 높다고 하니 그저 날씨 탓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노쇠의 시작이었다.
개도 늙어갔다. 뚱이의 이마에 빼곡하던 황금색 털 사이로 흰 털이 드문드문 보이고, 나중에는 흰 수염마저 돋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 첫 흰 머리카락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당황했다. 뚱이의 노쇠는 결국 눈에까지 이르러, 이 늙은 개는 세상을 떠나기 전 6, 7개월 동안 시력을 잃은 채로 살았다. 함께 하던 생명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가 세상을 떠날 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온몸으로 그 과정에 맞서야 했다.
걷기도 싫어하는 녀석을 둘러메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지나가는 사람들은 강아지가 무척이나 귀엽다며 말을 건넸다. 까맣고 동그란 눈에 살짝 쳐진 두 귀를 하고, 내 어깨 위로 앞발을 가지런히 얹은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고마운 말에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치료만 받으면, 건강해진 뚱이를 안고 그 길을 다시 걸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의사는 뚱이의 상태가 무척 심각하다며, 지금까지 집에서 큰일 없이 지낸 것이 기적이라는 말을 했다. 일단 2, 3일 입원을 하고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지만, 인간도 뚱이도 모두 자연에서 온 것. 늙음과 죽음을 되돌릴 수 있는 권한은 피조물인 우리에게 결국은 없었다.
아직 우리집 곳곳에는 뚱이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뚱이가 쓰던 밥그릇도, 녀석의 사진도 그대로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그대로 그 자리에 두었다. 혼자 남겨진 병원에서 고통 때문에 찢어질 듯 비명을 지르다가도 내 손이 자신의 몸에 닿는 순간, 소리를 속으로 삼키던 뚱이. 그랬던 녀석의 흔적들을 금방 치워버리는 것은 뚱이와 함께한 시간을 가볍게 여기는 기분이었다. 뚱이가 있든 없든 이곳은 뚱이의 집이었다.
개를 또 키우고 싶은가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나는 그렇다고 말한다.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짐짓 놀라며, 병들어 죽을 때를 지켜보는 과정이 너무 힘들지 않으냐고 다시 묻는다. 하지만 그것들의 죽음을 생각하기에 앞서 항상 곁에서 고물거리는 그 모습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게다가 늙음과 죽음은 그 어느 존재라도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나 역시 언젠간 늙고 병들어 죽을 피조물인 이상, 다른 것들의 늙음과 죽음을 외면할 권리는 없다. 그것은 오롯이 받아들여야 할 생명의 속성. 신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나’라고 말했듯이, 생명에게 있어 죽음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그것들을 품어 안고 함께 가는 것이 마땅하다.
저 하늘나라에는 지금까지 나와 했던 존재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어렸을 적 키웠던 금붕어, 아침이면 짹짹 지저귀었던 카나리아와 잉꼬새. 그리고 아직도 우리집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뚱이, 그리고 그것들 한가운데에 있을 엄마까지. 나와 같이 보냈던 시간이 그들에게 행복이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지금 함께하지 못해 서러운 마음 정도는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날 테니까.
내 손길이 아픈 뚱이에게 위로가 되었듯, 뚱이의 다정한 눈과 보드라운 털, 그리고 포근하던 체온은 나에게 영원한 위로이다.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뚱이가 그 맑은 눈망울을 빛내며 여전히 뛰어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