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뜬금없는 말이었다. ‘아무래도’라는 표현으로 보아서는, 오랫동안 고민을 한 모양이다. 우리는 20년 지기이지만, 나는 친구의 그런 속마음을 전혀 몰랐다. 이 아이는 종교에 별 관심이 없었고, 나도 성당 행을 권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녀석은 신(神)의 부르심이라도 받은 것처럼 자못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래. 이번 주 미사에 같이 가서, 분위기가 네 마음에 드는지 구경이나 해봐.”
“응. 나 데리고 가줘. 그리고 세례 받을 때 대모(代母)라는 게 필요하다면서? 네가 내 대모 해 주면 되겠다. 유나 대모님.”
능글맞은 얼굴로 친구는 말을 이었다. 얘가 진짜 계시라도 받았나, 갑자기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든 찰나, 가슴이 묵직하게 아려왔다. 너, 방금 대모라고 그랬니?
몇 년 전의 겨울이었다. 나는 성당의 대녀(代女)와 만날 약속으로 한창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대녀가 죽었다는 연락이었다. 곧 만나기로 한, 바로 그 아이였던 것이다. 내 심장은 얼어붙는 듯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성탄절에 못 만나서,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저녁 미사 같이 보기로 했는데. 우리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대녀의 빈소로 가는 길은 슬프지도 않았다. 성탄절을 갓 지난 길 위에는 흰 눈이 눈부셨고, 연말의 설렘이 포근하게 거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어지러운 발자국을 내며 하얀 눈 길 위를 잰걸음으로 걸었다.
빈소에 놓인 사진은 어딘지 낯설었다. 내가 아는 그 아이가 맞나, 잘못된 연락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고 의문이 들 때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구석에 넋을 잃고 앉아있는 여인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대녀의 모친이었다. 슬프게도 이곳은 대녀의 빈소가 맞았다.
“어머님, 혹시 기억하실까요. 따님 세례식 때 뵈었는데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알아보고 끝내 오열을 했다.
“좋은 대모님 만났다고 그렇게 기뻐했는데…. 대모님, 우리 착하고 예쁜 딸 천국에 갔을까요?”
그제야 울음이 왈칵 터졌다. 그리고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와 나는 겨우 5개월 전, 이 아이의 세례식에서 처음 만났다. 세례식은 모든 것이 성스럽고 평화로웠으며, 머리 위로는 신(神)의 손길이 꽃잎이 되어 흩날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이다. 이토록 잔인한 일이. 나는 그를 끌어안고 흐느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흔히 말하는 돌연사인 듯했다. 새로 입사한 회사의 일이 바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스물여섯 살. 젊고 건강했다. 그리고 그 또래들이 그러하듯, 친구들과 연말의 즐거움을 한창 느끼고 있던 터라 했다. 그런데 그 청량한 젊음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혹시 나 때문인가. 대모가 되기 부족한 나의 깜냥을 신은 이토록 무서운 방법으로 알려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사실은 내가 먼저 제안했었다. 내가 너의 대모가 되겠노라고. 그게 이 끔찍한 일의 시작인 것 같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성당의 청년회에서였다. 나는 청년 성서공부 소그룹의 봉사자였고, 아이는 그룹의 모둠원이었다. 늘씬한 몸매에 하얗고 동그란 얼굴이 참으로 예뻤다. 보통은 성당에 익숙해진 이들이 청년회 활동을 하기 마련인데, 이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성당의 모든 것이 처음이라고 했고,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 공부도 병행 중이라고 했다. 교리 공부도 바쁠 테니 청년 모임은 세례 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넌지시 말해봤지만, 그 아이는 단호했다. 다 하고 싶고, 다 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다짐처럼 아이는 모든 것을 해 냈다.
세례식이 다가오던 어느 날, 대모 해줄 이를 구했냐는 내 질문에 아이는 아직 찾지 못했다 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괜찮다면 내가 네 대모가 되어주고 싶은데 어떠니. 그러나 그 아이를 위함이 아니라, 사실은 내 욕심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누군가의 대모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따라줄 대녀가 있었으면 했다. 저 예쁘고 착한 아이가 내 대녀가 된다면 더욱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묘한 명예욕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얄팍한 허영심. 그러나 그 아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언니가 해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그 아이는 많은 것을 나와 함께 하고 싶어 했다. 전공을 살린 새로운 직장에 입사했다며 연락이 왔었고, 남자 친구가 생긴 것도 언니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만나질 못했으니, 우리 보자며 제안을 한 것도 그 아이였다.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건 겨우 몇 달, 꿈같은 시간으로 끝나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친구의 대모가 될 수 없었다. 첫 대녀를 그렇게 떠나보냈으니, 씻을 수 없는 저주가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쫓아다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의 대모가 된다면, 그 저주는 새로운 대녀에게까지 옮아갈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미신 같은 생각’이라며 신부님들께 혼났지만, 나는 도저히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갓 세례를 받은 아이가 갑작스레 떠나간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모는 ‘어머니 격’이니, 친구보다는 주변의 아는 어른들 중에서 적임자를 찾는 것이 좋을 거라는 이유로 친구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그러나 녀석은 어떤 말이든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천주교 신자인 친척들이 있지만, 누구는 집이 멀고, 누구는 70대의 할머니이며, 또 다른 누구는 성당을 쉬고 있으니 무조건 내가 자신의 대모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얘가 원래 이렇게 고집이 셌던가. 이건 20년 동안 처음 보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모든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친구도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라 믿었다. 아니 어쩌면 그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나를 포기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씩 웃더니 한마디 했다.
“난 안 죽을게. 그러면 되잖아.”
아, 녀석은 정말 신의 계시라도 받은 것인가.
친구의 세례식이 다가왔고, 나는 친구에게 하얀 미사포를 선물했다. 녀석은 세례식 때 이 미사포를 쓰고 삶의 새로운 시간을 맞이할 터이고, 나는 뒤의 대부모 석에 앉아 친구의 소중한 순간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세례식은 나에게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미신 같은 죄의식으로부터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하는 시간, 그리고 그것의 소중한 출발점이 될 터이니.
세상을 떠난 아이의 미니 홈피에는 배경음악이 여전히 흥겹다. 그리고 사진 속의 아이는 늘 그랬듯 상큼한 웃음으로 나를 반긴다. 마치 “언니, 다 괜찮을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을 거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