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날개를 찾아서

초여름의 하늘을 이고 바다 향기 속을 달렸던 그들

by 최유나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나도 자전거 타기에 도전해 볼 걸 그랬다. 자전거 대신 노란 봉고차를 얻어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나와는 달리, 청록빛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길을 달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눈부심 그 자체였다. 그 자전거 행렬을 신(神)이 보았다면 분명 그들에게 축복을 내렸을 것이다. 봉고차에 앉아 편하게 가고 있는 나만 그 손길에서 제외된 것 같아 무척 서운하였다.






내가 소속된 성당 청년회에서 봄소풍을 떠났다. 목적지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아산만 부근의 공세리 성당이었다. 그날 행사 계획엔 공세리 성당을 출발하여 삽교천 방조제를 지나 함상공원에 이르는 바닷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일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릴 때는 자전거를 타 보았지만, 요즘에는 자전거를 타 본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이 있다면 성당 측에서 봉고차로 데려다준다고 약속되었기 때문이다.


공세리 성당에서의 미사와 점심식사가 끝난 후, 우리는 성당에 준비되어 있던 자전거를 한 대씩 빌렸다. 그런데 막상 자전거 안장에 앉고 보니, 자전거는 내가 감당하기에 조금 큰 듯했다. 굳이 애를 쓴다면 못 탈 것도 없었지만 내 자전거 실력이 영 미덥지가 않았다.


“이렇게 불안한 상태로 어떻게 먼 길을 간담?”


나는 겉으로는 아쉬운 척했지만 속으로는 차라리 잘 되었다 싶어 자전거 타기를 포기해 버렸다. 듣자 하니 질퍽한 논둑길도 달려야 한다는데,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목적지까지 편히 갈 수 있는 봉고차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 일행을 안내한 수녀님은 성당에서 공원까지 차로는 1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지만, 자전거로는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자전거가 서툰 우리 일행은 한 시간 정도는 달려야 할 것 같다고 일러주었다. 수녀님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현명한 판단을 한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


봉고차에 탄 사람은 나까지 세 명, 우리가 탄 차는 앞서 출발한 자전거 무리를 보기 좋게 앞질러버렸다.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예상대로 우리가 탄 봉고차는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느긋하게 바다를 감상하며 먼저 도착한 자의 여유를 부렸다. 벤치에 앉아 한참 동안 쉬고 있자니 그제야 멀리서 자전거 행렬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전거 일행들은 무척 힘들어 보였다. 여자 친구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끌며 걸어오고 있었고, 남자 친구들의 자전거 속도도 느려져 있었다. 그들은 온몸이 진흙투성이였다. 처음 들었던 대로 정말 논둑길을 힘들게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표정만큼은 환했다. 그들의 뿌듯한 표정을 보자, 웬일인지 주눅이 들면서 배까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질투의 감정이었다.


함상공원에서 오락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다시 공세리 성당으로 향했다. 아까처럼 나는 봉고차에 오르기만 하면 되었고, 자전거를 타고 온 이들은 자전거 페달을 또 밟아야만 했다. 올 때처럼 자전거를 탄 그들이 먼저 출발을 했고 내가 탄 봉고차는 한참 뒤에 공세리 성당을 향했다. 그때까지도 씁쓸했던 나는 기분도 달랠 겸 바깥 풍경이나 감상하려고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순간 나는 탄성을 질렀다. 스무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줄지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장관이었다.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그들의 옷자락은 숨겨놓았던 푸른 날개가 되어 허공에서 펄럭였다. 그러나 봉고차에 앉아 편히 가고 있는 나에겐 그 날개가 없었다. 내가 탄 봉고차는 이번에도 금방 그들을 앞질렀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처음 함상공원으로 향할 때와는 달리, 지친 그들은 돌아올 때 두 시간이나 걸리고 말았다. 역시 1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당연히 그들을 기다려야만 했다. 기다리는 동안 성당에 앉아 묵상도 하고, 성당 숲길을 걷기도 했다. 하지만 10여분 만에 도착한 나의 종착점과 2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그들의 종착점은 결국 같았다. 편의의 잣대로 따진다면야 먼저 도착한 내가 훨씬 합리적으로 시간을 사용한 것임에도 어쩐지 내 꼴이 낮잠을 자다가 거북이에게 지고만 토끼 같았다.


나는 대학을 3년 조기졸업으로 마쳤다. 매사에 쫓기듯 급했던 나는 욕심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조기졸업은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나는 하루 종일 학교 수업에 매달려야만 했다. 마치 수험생처럼 앞뒤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렇게 대학생활을 보낸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목표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나는, 대학 생활의 아름다움과 스스로의 가치를 깨달을 여유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전거를 탄 친구들이 행복하게 보였던 것은 과정의 시간들을 마음껏 즐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흙길을 달리는 동안 날개를 한껏 펼치고 하늘과 햇빛, 그리고 바닷바람과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봉고차에 스스로를 가둔 채 창밖 풍경만을 내다보았던 나는, 몸으로 부딪쳐 찾은 그들의 행복에 도저히 동참할 수 없었다. 초여름의 하늘을 이고 바다 향기 속을 달렸던 그들의 두 시간을 나의 10분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다시 공세리 성당에 가고 싶다. 이번에는 내 힘으로 힘껏 자전거 페달을 밟아 삽교천 방조제 위를 달려 볼 것이다. 그 길을 다시 달리면 소풍날 비껴갔던 축복의 손길이 나에게도 닿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젠 알겠다. 그날 친구들의 표정에서 얻었던 나의 깨달음, 그것 역시 신의 축복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