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공연장의 조명들이 일제히 꺼진다. 큰 공간이 암흑으로 변하자 관객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많은 여성들의 날카로운 함성은 초보관객인 나를 당혹게 한다. 방금 전까지 얌전하게만 보이던 20대 여성들과 중년 여인들도 이렇게 소리 지르는구나. 그럼 나도 관객이니 이들처럼 ‘악!’ 하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것인가?
잠시 고민하는 순간 전주(前奏)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객석에서 더 강렬한 외침이 터져 나온다. 이윽고 점차 환해지는 무대 위로 그가 보인다. 아, 신승훈이다!
나는 가수 신승훈의 오랜 팬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를 좋아했고 사춘기 때는 그가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또 그의 신곡이 500원짜리 악보로 발매되면 피아노로 쳐보기도 했다. 흥이 나는 날이면, 피아노를 치면서 그의 노래를 큰 소리로 불러 젖혔다.
나는 신승훈 노래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학생인 내게 음악은 유일한 오락이었다. 음반 수집에도 꽤나 몰두해서 클래식, 재즈, 영화 OST 등의 음반들을 사 모았다. 그뿐 아니라 가요 음반도 한몫을 차지했다. 서태지, 이승환, 김동률 그리고 심지어 부모님 세대의 가수인 양희은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신승훈 음반은 한 장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모범생이었다. 아니, 모범생이라는 말보다 비아냥 조가 섞인 ‘범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단정하지 않게 보이는 것을 못 견디어했고 누구든지 나를 모범생으로 평가하길 바랐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당연히 자신에게 많은 통제를 가해야만 했다. 그때까지 ‘대중가수’인 신승훈의 음반을 사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대중가요는 클래식이나 재즈보다 낮은 수준의 음악이며, 나 같이 ‘고상하고 단정한’ 학생은 그런 음악은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클래식을 즐겨 듣는 자신을 몹시도 자랑스러워했으며 다른 이들에 그런 내 취향을 은근히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몇 곡의 노래들은 늘 귀에서 맴돌았다. 점심시간에 교내 방송을 통해 흘러나온 김동률과 이승환, 그리고 친구들이 흥얼거리던 서태지의 노래는 내 마음에도 파고들었다. 결국 나는 몇 장의 가요 음반을 구입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신승훈의 음반만은 선뜻 구입할 수 없었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신승훈이었기 때문에 그의 앨범은 더더욱 사지 않았다. 신승훈의 음반을 산다는 것은 내가 그의 ‘팬’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괴성’과 ‘일탈’로 상징되는 ‘광팬(狂fan)’의 범주에 내가 속한다는 것은 정말 싫었다. 신승훈의 음반을 외면한 것은, 속으로 그를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그의 ‘팬’ 임을 애써 부인하려 했던 나의 자구책이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그의 음반을 구입했다. 대학생이 되어도 학생 티를 벗지 못한 나는 무척 긴장하며 음반가게에 들렀다. 그리고는 쑥스러운 목소리로 신승훈 신보(新譜)를 달라고 말하자 음반가게 주인은 무심한 얼굴로 음반을 내어주었다.
음반을 무사히 샀으니 신승훈의 콘서트를 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콘서트는 내게 너무나 낯설었다.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를 공연 전부터 한 목소리로 부르고 있는 관객들도 놀라웠지만,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신승훈이 막 등장하려는 순간이었다. 관객들은 약속된 그들만의 의식인 듯, 야광봉을 높이 쳐들고 그를 기다렸다. 관객들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주인공인 가수가 무대에 나타나자, 그들은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움직임에도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푸른 야광봉 불빛들은 어둠 속에서 가수의 손짓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팬들의 일사불란함은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그들의 위세에 기가 질린 나는 동작이 틀릴세라 열심히 야광봉을 움직여댔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머리는 복잡했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소리를 함께 질러야 되나?’라는 갈등에서부터 ‘콘서트의 이러한 분위기는 전공 시간에 배웠던 종교 인류학 이론과도 딱 맞아떨어지는데….’라는 생각까지.
그러나 곧 마음을 비워버렸다. ‘기왕 공연을 즐기러 온 바에야 복잡한 생각은 접어두고, 나도 함께 놀아보자’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윽고 공연이 절정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콘서트에 흠뻑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신승훈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으며 처음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고함도 함께 질렀다. 그렇게 세 시간 여의 콘서트를 즐기고 나니 사춘기 시절부터 나를 묶고 있던 ‘범생이 사슬’이 툭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후련한 마음이 되어 콘서트 장을 빠져나왔다. 콘서트 장에 가보니, 이것은 정말 신나는 놀이였다. 내가 콘서트 장에서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나를 흉 볼 사람은 없었고, 스스로 죄책감을 가질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욕구를 끊임없이 억제하고 감시했던 것이다. 그것은 결국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은 완전한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원하는지, 또한 그로 인해 행복할 수 있는지의 문제였다. 내 삶의 주체는 ‘나’ 여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도 신승훈의 콘서트는 열릴 것이다. 티켓 예매가 시작되면, 나는 가장 먼저 티켓을 예매할 테다. 그리고 나도 다른 관객들 틈에서 소리 지르고 야광봉을 흔들면서 콘서트를 즐길 생각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억눌러 왔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인정하는 일이며,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