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싸개 수건

40여 년 전 어린 나를 감쌌던 수건

by 최유나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공기에 이불을 바꿀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솜이불을 꺼내고 여름내 쓰던 삼베 요를 어디다 두면 좋을지 이불장 안 자리를 살폈다. 그러다 아주 재미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얇은 이불만큼 큰 수건들이었다. 하나는 큼지막하게 알록달록한 나비 무늬가 있는 것이었고, 다른 것에는 네 귀퉁이에 귀여운 곰인형이 그려져 있었다. 낯설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그것들을 한참을 들여다보다 이것들이 무엇인지 기억해냈다. 내가 아주 작은 아기였을 때 나를 꽁꽁 쌌던 속싸개들이었다.



“아버지, 이거 나 아기 때 쓰던 거 맞죠?”


“응, 그래 너 아기 때 쓰던 것들이다.”



엄마는 어찌나 곱게 그것들을 간직했던지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색 하나 바래지 않고 뽀송뽀송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우리집에는 내가 쓰던 물건들이 많다. 아기 때 썼던 모자, 배냇저고리, 유치원 시절 머리에 꽂았던 꽃모양 핀도 있다. 엄마는 내가 썼던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나의 일부분인 것처럼 하나도 버리지 않고 깔끔하게 보관했다. 그리고 늘 말했다. 네가 아이를 낳으면 네 자식에게 ‘이거 다 너희 엄마가 썼던 거다’ 하면서 줄 것이라고. 엄마가 아기 때 쓰던 걸 그 자식이 쓴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하고 말이다.



나는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정말 의미있는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나의 아이가 한 세대 전의 물건을 물려받는 것에 기뻐할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 요 몇 달 전, 우리 엄마보다 더 한 사람을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채널인 “멜과 진돗개 봉순”에 게시된 영상에서였다. 그 채널의 주인인 ‘멜’과 그의 남편은 국제커플로, 얼마 전 귀여운 딸을 얻었다. 그 소식에 네덜란드인 시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30여 년 전에 쓰던 장난감이며, 책, 모자, 옷, 심지어 나무로 만들어진 아기 의자까지도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보냈다.


꼼꼼히 포장된 물건들을 꺼내어 행복한 표정으로 요람을 조립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말했던 ‘의미’가 저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들은 30년이 넘은 물건이었지만, 낡은 것이 아니었다. 값비싼 새 물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랑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스며들어 있었다. 아빠가 쓰던 요람에 잠들어있는 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나는 안타깝게도 엄마가 늘 꿈꿨던 그 소망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다. 나에게는 내 물건을 받아 쓸 자녀가 없으며, 내가 썼던 물건을 내 자녀에게 줄 엄마도 없기 때문이다. 속싸개 수건의 예쁜 나비 무늬를 보고 있자니, 3대가 같이할 미래를 꿈꾸며 이야기하던 엄마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우울해지고 말았다. 그 커다란 수건들은 분명 내 것이었지만, 지금도 내 것이 맞는지 고민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줄 사람도, 받을 사람도 없는 이것들을 어찌하면 좋을까.



결국 나는 의자 커버로 수건을 쓰기로 했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나로서는 가장 실용적이고 뜻깊게 쓰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지만, 한 살이었던 ‘나’도 마흔 살이 넘은 ‘나’도 결국엔 모두 ‘나’이니, 원래 내가 쓰던 물건을 지금의 내가 쓰는 것도 나쁠 건 없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이 무거워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고, 나는 그것에 못 미치는 것 같아 도망가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중년의 내가 이 아무것도 아닌 수건에서 평온함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엄마와, 여든에 가까운 아버지가 40년 전 이 수건으로 어린 나를 감싸며 사랑으로 돌보았다는 것에 묘한 안도감과 따스함이 느껴졌다. 원래 내 것이었으니 내가 다시 쓰겠다는 말에 아버지는 허허 웃으셨다.




삶은 끊이지 않은 어려움을 버티고 헤쳐나가는 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리가 휘청거릴 때마다 그동안 내가 받았던 사랑을 새삼 떠올리고 그 힘으로 다시 새 걸음을 내딛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 40년 전의 나비수건을 깐 의자 위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40년 묵은 수건에 스며있는 뜨듯한 사랑을 거름으로 삼아, 다시 힘을 내어본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님의 사랑이 켜켜이 쌓인 그것 자체이니까.






<2021년 겨울호 에세이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