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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Mar 04. 2024

홍시와 김치

   버스 창 너머로 보이는 광화문 우체국 입구에는 ‘EMS 일본 및 미국행 김치 접수’라고 적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김장철인 11월 말과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사실 요즘에는 외국에서도 김치를 구할 수 있다. 외국에 김치를 보내는 송료나 김치를 포장하는 품에 비하면 오히려 현지에서 사 먹는 것이 더 이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비행기로 김치를 보내는 것은 핏줄의 녹록지 않은 외국 생활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나도 바다를 건너온 김치를 받아먹은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은 김치를 그리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 일본 유학 시절, 부모님은 몇 겹으로 포장된 김치 꾸러미를 자주 보내셨다. 마치 자신들의 사명인 듯 말이다. 나도 의무처럼 받은 김치를 정말 열심히 먹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일본에서 오히려 더 김치를 많이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김치를 보낼 때마다 운송 중 김치 봉지가 터지지 않을까 항상 염려했다. 그러다 마침내 좋은 방법을 찾아냈는데, 바로 14kg짜리 ‘업소용 고추장’의 철제 상자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직장 근처 단골 식당에서 그 철제 상자를 몇 개 얻어오셨고, 부모님은 그 상자 안에 김치를 넣어 나에게 보내셨다. 아버지가 철제 상자를 구해왔다며 기뻐하던 엄마의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방학이 가까워지면 엄마는 한국에 올 때 ‘김치용 철제 상자’를 꼭 챙기라고 신신당부했고, 나는 철제 상자에 학교 앞 슈퍼에서 파는 슈크림 빵을 가득 채워서 한국으로 향했다. 엄마가 그 빵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 집에 돌아온 철제 상자는 다시 김치를 품고 일본으로 보내졌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현수막에는 유학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던 10년 전 내 모습과, 딸내미를 위해 김치에 사랑을 담아 보낸 부모님의 마음이 어른거렸다. 그것은 슬픔도 아닌, 그렇다고 기쁨도 아닌, 뭔지 모를 가슴 아픔과 뭉클함이었다. 


   나에게는 김치 같은 음식이 또 하나가 있다. 바로 홍시이다. 어느 해 겨울 방학을 맞아 한국의 집에 왔을 때 냉동실에는 깔끔하게 손질되어 비닐봉지에 하나씩 담겨있는 홍시가 가득했다. 그해 가을, 홍시가 무척 맛있어서 나를 위해 부모님이 얼려둔 것이다. 그러나 홍시를 맛보며 평안한 방학을 보내고 일본으로 다시 가려 했던 그때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겨울 방학을 마지막으로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시력 저하와 약간의 우울감을 겪었던 엄마의 상태는 ‘노화’ 때문이 아니라 ‘교모세포종’이라는 뇌종양의 증상이라는 것을 방학 동안 알게 되었다. 나는 유학을 지속할지에 대해 며칠 심각하게 고민했고, 결국 공부를 중단하기로 했다. 엄마의 병은 악성도가 가장 높은 암이었으며 나는 외동이었다. 부모님의 유일한 자식으로서 환자인 엄마를 잘 돌보는 것이 나에게는 공부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자퇴 수속을 위해 학교 사무실에 국제전화를 했던 날, 나는 결국 흐느꼈고 교직원은 울지 말라며 나를 달래주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심장이 아득히 떨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하는 동안, 홍시를 두어 개나 먹었을까. 홍시 꾸러미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냉동실을 차지하고 있었고, 여러 해가 흐른 뒤에야 남은 홍시를 작정하고 겨우 버렸다. 냉장고는 산 사람을 위한 음식이 있을 곳이지, 그리움과 추억을 담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먹기까지 몇 년이 걸린 셈이었다. 사실 버리는 순간까지도 고민했다. 홍시의 모습을 띤 엄마의 사랑이 버려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일본에서 먹었던 김치와 얼려진 홍시는 시인 김종길의 표현처럼 ‘여전히 내 붉은 혈액 속에 녹아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힘들었던 오랜 시간을 무사히 견뎌내고, 내일의 목표를 담담히 꿈꾸고 있는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건 내 힘이 아니라 김치와 홍시에 담겨있던 부모님의 사랑 덕분이었다. 난 그런 의미에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앞으로의 삶이 쉽고 안락하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괜찮다. 나에게는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가슴 따뜻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라면 어떤 상황에도 자신을 끝까지 붙들고 ‘내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추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진한 향기를 풍기며 날 격려하고 어루만져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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